N잡러의 시대라고 쓰고, 불안의 시대라고 읽는다
우리는 이른바 ‘N잡러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수식어를 슬쩍 들춰보면 그 속엔 ‘불안의 시대’라는 민낯이 숨어 있다. 근로자의 약 72%가 부업을 고려하고, 40%에 육박하는 이들이 이미 실행 중이라는 통계.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일의 형태가 변했다는 신호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한 가지 삶만으로는 도저히 안심할 수 없는 불안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증거일까.
지난번 워킹맘과 전업주부의 삶을 비교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썼을 때, 예상보다 뜨거운 공감을 얻었던 지점이 있었다. 바로 전업주부의 ‘자유시간’에 대한 역설이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뒤 찾아오는 고요한 거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데 나만 이 거실 구석에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공포. 아이는 매일 눈에 띄게 자라는데 나는 그저 소모되고만 있다는 위기감. 그 막막함을 견딜 수 없어 엄마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부업을 찾는다. 그것은 돈을 넘어선, 존재를 확인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사실 내 삶에서도 ‘부업’이라는 단어는 꽤 오래전부터 중요한 화두였다.
전업주부로 살던 시간에도, 다시 일터로 돌아온 지금도 부업은 늘 마음 한편에 유령처럼 머물러 있다.
공무원이라는 틀 안에서 정해진 시스템을 따르고, 내 노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정된 수입을 받는 삶.
그 안정이 나를 먹여 살리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쓸모’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내가 정말 대체 불가능한 사람인지,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2021년에 나와 같은 해에 아이를 낳은 가까운 지인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부업을 시작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시작한 지 2년 만에 어느새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되었고, 이제는 억대 연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그녀가 어느날 내게 "언니, 나 이번 달에만 2천만 원 벌었어!"라고 자랑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근황을 전할 때, 마음이 조용히 안쪽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축하해주고 싶었고, 실제로 축하의 말도 건넸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한없이 작게 접어 넣고 있었다.
나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배우고, 필요하다는 AI 툴도 결제해가며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봤다. 반응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수백 명의 구독자가 생기고 좋아요 몇 개, 댓글 몇 줄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반응들은 기대를 이어가기엔 너무 작았고, 멈추기엔 또 애매한, 그런 자리에서 나를 붙잡고 있었다.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했다.
주식 관련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나름대로 종목을 골라 투자를 해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시도했던 여러 항목들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수익을 안겨준 시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수익은
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불안과 함께였다.
떨어지는 숫자를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고,
사려다 말았던 종목이 오를 때면 괜히 나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이미 떨어지고 있는 걸 알면서도 손을 대고는
‘떨어지는 칼날’에 피가 나기도 했다.
돈은 벌 수 있었지만,
그 돈을 지켜보는 마음은 늘 평온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수익보다도 불안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도 썼다.
하루 종일 A4 몇십 페이지를 붙잡고, 몇 달에 걸쳐 한 편을 완성했다.
공모전에 제출하고 나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서, 한 번도 이름이 불린 적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다시 도전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 사실이 결과보다 더 나를 괴롭혔다.
재능의 한계를 마주하는 일은, 아이에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모순을 견디는 고역이었다.
무엇보다 물리적인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엄마의 시간은 늘 잘게 쪼개진다.
집안일과 아이의 부름, 직장 업무 사이에서 시간은 툭툭 끊겨 나간다. 그 파편 같은 시간들로 당장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시간을 실패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나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언젠가 경제적 자유를 이루어 내 아이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며, 동시에 내가 상상한 세계를 타인과 공유하며 느낄 그 짜릿한 희열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는 것, 직장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작은 꿈에 도전하는 것. 이 모든 겹겹의 층이 쌓여 우리의 오늘을 만든다.
우리가 부업을 찾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안정된 울타리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우리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은 존재들이다.
끊임없는 도전은 지독한 피로와 소진을 부르고, 날카로운 자기비판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더 나은 나와 삶을 꿈꾸는 인간의 숭고한 갈망이 담겨 있다. 그 꿈은 때로 아이의 웃음에 의해 잠시 잊히고, 때로 실패의 쓴맛으로 돌아오며 우리 삶의 무게를 단단하게 만든다.
오늘도 부업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면, 그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잊지 말자.
부업은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성적표가 아니라, 삶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당당히 헤쳐 나가겠다는 당신만의 가장 뜨거운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