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이좋게 지내기

아마도 그것은 영원한 나의 숙제

by 복주 엄마

아기 낳은 후 너무 너무 자주 싸우다가 서로의 노력으로 근 1년 정도 사이가 많이 좋아졌는데 저의 방법 공유해 봅니다.


1. 남편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말, 행동 늘림

- 남편이 퇴근하고 왔을 때마다 엄청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고 안아주고 뽀뽀해줌

- 자기 전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오늘도 고마웠다고 말함(특별히 고마울 만한 행동이 있는 날에는 그 행동까지 집어서 얘기하면서)

- 미리 샌드위치 많이 만들어놓고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작은 우유팩 하나랑 같이 종이백에 넣어서 보내고 출근할 때 꼭 배웅함

(남편에게 애정표현을 늘릴수록 남편도 제게 더 잘보이려 하고 관대해지더라고요)


2. 비난 대신 문제해결에 집중하기

- 남편이 뭔가 잘못했을 때 비난 대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대안을 제시하고 타협점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3. 내 잘못을 인정하기

- 용감하고 정직하게 나의 실수나 과오에 직면하고 작은 일도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4. 상대방으로 인해 내 기분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 남편이 쓸 데 없는 일로 예민하게 짜증내거나 나를 화나게 만드는 뭔가를 했을 때에도 남편으로 인해 내 기분이 좌우되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사실 가장 어려웠는데요.. 도닦는 심정으로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나의 기분을 좌우할 수는 없다, 나의 기분은 나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4번이 되어야 2번이 가능합니다.


5. 비난보다는 격려와 칭찬으로 배우자를 교정하기

남편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어떤 행동을 하게 하고 싶을 때에는 그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비난보다는 그 행동을 했을 때 칭찬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6.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며 의사소통 하기

남편의 입장에서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는 말을 한 후에 내 입장을 전하는 것이 숙달되도록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7. 갈등이 산불로 번지기 전에 불씨 끄기

남편이 어떤 불편함이나 짜증을 내비치면 즉시 사과와 행동수정을 약속하며 더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사이가 좋아지고나니 삶의 질과 저의 행복도도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노력에 따라 부부관계도 많이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위 글은 내가 3년 전에 커뮤니티에 썼던 글이다. 출산 후 반복되던 불화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은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믿었다. 가장 가깝지만 동시에 가장 적나라한 인간관계의 장인 '부부관계'라는 이 전쟁터에서 나는 한때 평화를 일구어낸 승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을 환한 미소와 포옹으로 맞이하고, 잠들기 전 "오늘도 고마웠다"며 사소한 행동까지 짚어 말해주던 다정함. 새벽 출근길 남편의 손에 쥐여주던 샌드위치와 우유 한 팩. 그 애정 표현의 양에 비례해 남편은 내게 관대해졌고, 1년 넘게 멈춰있던 부부관계의 온기도 되살아났다. 비난 대신 대안을 제시하고, 나의 실수를 먼저 인정하며, 갈등이 산불이 되기 전에 사과로 불씨를 끄던 그 시절, 나는 관계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싸우고 있다.


왜 우리는 다시 돌아올까.


그토록 단단했던 나의 7가지 수칙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예민해진 남편이 던지는 날 선 말투, 짜증 섞인 거절.

그 찰나의 ‘말’이 화살이 되어 날아오는 순간,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회귀한다.
“나라고 불만이 없는 줄 알아?”라는 말이 튀어나가는 그 순간, 내가 샌드위치를 만들며 쌓아 올린 공든 탑은 순식간에 먼지가 된다.

여기서 나는 인간관계의 서글픈 통찰 하나를 마주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다는 사실.


나는 관계를 좋게 만드는 법을 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상처받는 그 순간에도 그걸 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기대라는 이름의 덫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했던 노력은 순수한 사랑이기만 했을까.


나는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이런 기대를 심어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당신도 성숙하게 반응해야 해.”
“내가 이렇게 참았으니, 당신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해.”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시작한 노력이
어느 순간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작은 짜증도 배신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싸움은 문제 때문이 아니라,
‘왜 내 노력을 몰라주냐’는 서운함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키지 못했던 4번


내가 썼던 수칙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4번이었다.

“남편으로 인해 내 기분이 좌우되지 않게 하기.”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문장이다.
타인의 무례함이나 미성숙함이 내 평온을 깨뜨리게 두는 순간, 나는 내 행복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건네주게 된다.


“나의 기분은 나만이 결정한다.”
그 다짐은 참으라는 주문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주 잊는다.
피곤하고,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체력이 바닥나 있을 때면
나는 다시 상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린다.


가사와 육아라는 현실의 무게가 인내심을 갉아먹을 때,
관계를 무너뜨리는 건 일의 양이 아니라 ‘말의 온도’라는 사실도 알면서.


짜증 섞인 말투는 존재를 깎아내린다.
그 말 앞에서 나는 방어적으로 변하고,
방어는 곧 공격이 된다.


싸움에서 내가 얻는 것


이 싸움에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찰나의 분풀이.
잠깐의 우월감.
“나도 할 말은 했다”는 위안.


하지만 그 대가로 잃는 것은
내가 소중히 여기던 삶의 질과 평온이다.


나는 이기고 싶은 게 아니라,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는 여러 번 말했다.

“나 힘들어.”

그때마다 돌아온 말은 비슷했다.
“나도 힘들어.”
“내가 더 힘들어.”


그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도 분명 힘들다.
출근하고, 책임지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경쟁을 시작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누가 더 힘든가’를 겨루는 자리에 서 있게 된다.


내 고백은 위로를 구하는 말이었는데,
대화는 비교가 되고
비교는 곧 방어가 된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힘들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말해도 돌아오는 것이 ‘공감’이 아니라 ‘맞대응’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피로는 안으로 쌓이고, 쌓인 감정은 날카로운 문장으로 새어 나온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누가 더 힘드냐”가 아니라 “그냥 잠깐 내 편이 되어줘.”였는데.

그걸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싸움의 시작이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공감을 받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상대가 나를 충분히 이해해주지 않아도
내 감정이 부정당했다고 느껴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관계의 성숙은 상대가 완벽하게 공감해주는 상태가 아니라,

공감이 오지 않는 순간에도 내 감정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는 힘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나는 여전히 연습 중이다. 상대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쳐도 내가 느끼는 피로와 서운함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 연습.

그리고 누가 더 힘드냐를 겨루는 대신, 각자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차분히 인정하는 연습.


우리는 아마 또 싸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힘듦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존재까지 사라지는 선택은 하지 않으려 한다.


관계는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관계를 지키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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