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걷는 시간 - Nell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아침 아들 학교 데려다주는 길.
"아빠 주말에는 Laser Tag 하러 가고 싶어요."
아들이 말했다.
그래 한번 생각해 볼게 라며 가격을 검색해 본다.
2 게임에 30달러. 가족 3명이 모두 가면 100달러는 족히 나올 듯하다.
"너무 비싼데, 여기는 생일날 가는 건 어때?"
그러자 아들은
"You are so cheap!"이라며 짜증을 낸다.
이 한 마디에 긁혀 버렸다.
"아빠는 구두쇠야"라고 한국말로 들었으면 긁히지 않았을까?
cheap이란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싸구려"라는 단어로 변해 가슴을 찌른다.
회사를 그만두고 밴쿠버에 와서 컬리지를 졸업한 지도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와이프가 취직해서 수입 자체는 한국에서 둘이 벌던 때랑 비슷하고 여기서 그렇게 많이 소비를 하지도 않아서 절실하게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상황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가끔씩 내가 쓰는 돈이 마치 빚처럼 느껴졌다.
회사를 다니던 한국 상황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날 오후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을 조금 일찍 나섰다.
점점 줄어드는 가을을 느끼며 밴쿠버 오기 전의 삶을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추기 위해 와이프는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고, 나는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 저녁을 되도록이면 집에서 먹으려고 노렸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저녁을 회사에서 먹고 아이의 잠들기 전의 모습이라도 보려고 부랴부랴 퇴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결국엔 상황이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매일 저녁 학교 농구장에서 같이 놓구하고 난 뒤에 보는 노을. 하교 길에 재잘거리는 학교 이야기들 듣기. 늘 이기던 체스에서 아이가 처음 이기던 순간. 이 전 상황이었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사소한 순간들이 길가의 낙엽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다.
결국 주말에 온 가족이 Laser Tag를 하려 갔다. 인사이드 아웃의 Joy를 닮은 노오란 기억의 구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