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거리가 되지 못한 자

by Knulp

2025년 봄, 벚꽃이 이쁘게 피던 4월 초 엄마를 밴쿠버에 초대했다.

보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비도 꽤 와서 돌아다니기 힘들었지만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다. 엄마와 둘이서 여행 안 가봤던 남자들이여 밴쿠버에 와서 엄마를 초대하라! 신기하게도 누나는 엄마와 둘이서 여행 간 적이 있다. 남자들이 문제인 건가.


엄마는 토요일에 밴쿠버에 도착했고, 그날 저녁과 일요일은 짐정리와 근처 산책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 와이프는 일하고 아들은 학교 가고 엄마와 나는 Granville Island 구경을 갔다. Granville Island는 밴쿠버에 있는 작은 여의도 공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크루아상 맛집에서 빵을 사고 퍼블릭 마켓 구경하면서 점심할 것들을 사서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컬리지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취업 준비하다가 취업이 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취업 준비는 그만하기로 했다고. 초등학생인 아들과 집안일에 집중하고 Rover 앱을 통해 개 돌봄 서비스를 부업으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제는 취업이 안돼서 초초한 마음이나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평온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oo야, 엄마는 그래도 아들이 캐나다에서 회사 다니고 있다고 알고 있을게."라고 하셨다.

나는 순간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취업 안 한다니까?"

"알아, 그래도 나는 회사 다니고 있다고 할 거야."

"누구한테? 큰 이모한테?"

"응,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나 친척들한테도."


순간 열이 뻗쳤다.

'내가 취업을 안 한다고 하는데 왜 엄마가 난리야'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집은 잘 사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 가족처럼 반지하에 살았다.

기택 집은 그래도 집 안에 화장실은 있었으니 우리 집보다는 나았으려나... 그리고 그 반지하 집에서 살기 전에는 이모네 2층 주택의 1층에서 살았었다. 그러고 보니 거기도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많이도 싸우셨다.

그 힘든 삶 속에서 엄마의 보람은 유명한 대학을 나와서 이름 있는 로펌에 취직한 딸과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이었다. 친척이나 동네사람들이 자식들을 칭찬하면, 애들이 잘나서 그렇지라고 하지만 슬그머니 그래도 내가 애들 책들은 내가 굶는 한이 있어도 꼭 사줬어라고 한마디를 얹으셨던 어머니였다.

어릴 적 집에 엄마 아빠는 일하러 가고 누나는 공부한다고 나가고 집에 혼자 있을 때 "이야기 한국사", "한국 문학 전집", "세계 문학 전집"들을 읽었으니 어머니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이야기 한국사를 제일 좋아했다. 조선 시대 전까지만 몇 번씩 읽었지만 조선 시대부터는 흥미가 확 떨어져서 다시 처음부터 다시 읽곤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엄마의 7명의 형제자매 중에서 엄마의 바로 아래 남동생이 제일 성공하여 공장을 세웠었고, 내 사촌들이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명절마다 친척 모임을 가질 때도 엄마는 그 삼촌에게 언제나 당당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의 삶의 결과물이자 방패가 되어있었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단지 당신의 고통과 눈물로 만들어진 진주를 조그만 더 움켜쥐고 싶을 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뺏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럼 들키지 않게 잘 말해"

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 자로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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