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결말 욥기 42장

인문학연구소공감

욥기 서두에서 사단은 말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그러나 이제 욥은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사탄과 내기에서 하나님이 이겼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희망이 이겼다. 사람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존재임을 욥은 보여준다.

지금 욥은 하나님의 압도적 권위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고백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

욥은 얼마나 하나님 보기를 원했는가?

(욥 19:26-27)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는구나』


그는 자기의 억울한 인생을 알아주고 보살펴 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이 알아주길 바랐다. 죽은 이후 백골이 진토가 된 이후에라도 넋으로라도 하나님을 보길 원했다. 그러나 이제 이승에서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과 생생한 관계에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믿음의 최고 경지다. 이제 욥은 인간 편에 선 인간적인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 편에 서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이제는 거꾸로 욥이 수난받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준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으로서 욥은 하나님을 본다.


왜 자신이 그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지 까닭을 발견치 못하여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믿을 줄 알게 된다. 운명을 수용하는 법을 알았다고나 할까.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욥의 회개는 무엇인가? 친구들이 그토록 회개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세상의 죄는 자기의 죄가 아니지만, 자신의 죄가 묻어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죄가 세상의 죄 속에 녹아있다. 세상 돌아가는 구조악을 자신도 같이 돌리지 않는가. 그처럼 자신의 죄의 깊이를 생각할 때 욥은 할 말이 없다. 자신의 죄 때문에 그런 불행을 당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생각할 때 자신이 당한 불행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회개의 핵심은, 죄보다는 죄스러움 죄송함에 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을 가깝게 느낀다,. 하나님 은총 앞에서 느끼는 죄스러움이다. 규범을 어긴 죄가 아니라, 멋지게 살지 못해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났던 것에 대한 회개이다.


욥이 친구들의 죄를 속죄하는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면 그의 기도를 들어주어 친구들을 하나님이 용서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하나님에 대해 잘못 말한 친구들의 죄를 대속하는 것 같지만, 좀 더 큰 문제를 볼 수 있다.

의인의 고난은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속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욥의 고난은 의인으로 고난으로 부각된다. 욥은 엄청난 수난을 겪고 있지만, 세상의 죄를 속하는 엄청난 권한이 주어진다. 세상에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느냐 아니냐는 욥에게 달렸다.


누가 감히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욥도 자신의 죄의 깊이를 깨달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비해 욥은 여전히 의인이다. 세상은 의인들 때문에 꾸려져 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수난이 많다. 세상의 악에 저항하느라고 수난을 받는 의인도 있고, 까닭 없이 불행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의인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세상을 살린다. 세상의 냉혹한 대접 앞에서 자기를 지키기도 힘든 고난을 당한 의인들에게서 용서의 장이 열린다. 자기를 학대하거나 비웃던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속죄의 기도가 세상을 살린다. 무심한 세상을 살리는 것은, 수난받는 의인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용서의 기도다. 의인 욥의 깊은 불행은 깊은 용서를 잉태했다. 고난의 신비여.(참조 양명수, 『욥이 말하다』, 분도출판사)


욥은 이제 단순한 의인이 아니다. 까닭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확인되었다. 까닭 없이 불행을 당한 자가 깊은 절망의 굴을 통과하여 까닭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무관하게, 세상스런 축복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닌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섬기는 것이지, 그분이 내게 남다른 축복을 주기 때문에 섬기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욥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졌다. 죽는 자가 사는 것이다. 버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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