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활동가 유현대
인간이 자신의 어릴 때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는 시기는 대략 5세 정도 지난 때라고 한다. 대략 5~6세 정도가 되면 개인에게 ‘자아’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다. 그 와중에 아이가 떼를 쓰기도 하고 고집을 막 부리기도 해서 부모님의 처지에서는 가장 곤혹스러운 육아시기를 맞이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물론 어릴 적에 이렇게 말썽을 부린 당사자는 나이가 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리발을 내밀겠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부끄러워서 ‘이불 킥’을 예사로 하고 싶은 충동이 들겠지). 그렇다면, 과연 그 시기 아이의 자아 속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까? 여기 한 작가가 다소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지어낸 이야기가 있다. 바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작가 모리스 센댁(Maurice Sendak)이 지은 <괴물들이 사는 세상(Where the Wild Things Are)>이다.
지은이 모리스 센댁은 1928년 뉴욕 출생으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경제 대공황을 겪고 나치의 홀로코스트 소식을 들으면서 유달리 악몽을 많이 꾸는 등 어린 시절부터 극도로 병약하고 예민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장 그의 어머니 역시 여느 이민자가 겪는 고된 삶을 살아서 그런지 어린 모리스에게 그다지 다정하지도 않았고 폭언을 예사로 퍼붓는 일이 많았었다. 그로 인해 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상력이 생겨났다고 작가 스스로 회고한 바 있다. 그가 쓴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어떤 면에서 보면 작가 스스로 어릴 때 겪었던 경험을 특유의 창의력으로 풀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맥스(Max)’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다. 집에서는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늑대 옷을 입고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온갖 말썽을 다 부린다. 참다못한 엄마는 맥스에게 “괴물 딱지야(wild thing)!”라는 폭언을 퍼붓는다(실은 ‘이 막돼먹은 녀석아!’라는 뜻이긴 하다). 맥스도 순간 오기가 생겼는지 엄마에게 “확 잡아먹어 버릴 거다(I’ll EAT YOU UP)!”라고 응수한다. 엄마는 이에 대한 벌칙으로 아들을 방안에 가둬놓고 밥도 굶겨버린다(요즘 이렇게 하면 아동학대로 취급되기 딱 좋겠지만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서구권에서 아주 흔했던 처벌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맥스는 방 안에서 드디어 자신만의 세계로 길을 떠난다. 자신의 이름을 딴 ‘맥스 호’라는 배를 타고 1년 후 도착한 곳은 온갖 흉측한 모습의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였다. 그 괴물들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맥스를 위협했지만, 오히려 맥스는 그 괴물들을 “가만있어(Be still)!” 한마디로 제압한다. 맥스는 그 나라의 왕이 된다. 괴물들에게 한바탕 왁자지껄 놀아보라고 명령한다. 그러고는 같이 진탕 놀자 판을 벌인다. 그러다 싫증이 났는지 인제 그만 놀자고 하면서 괴물들에게 저녁밥도 굶기고는 자라고 명령한다. 문득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러자 맥스는 그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맥스는 왕 노릇을 포기하고 다시 맥스 호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안 돌아오면 확 잡아먹어 버리겠다고 애원과 협박이 섞인 채 울부짖는 괴물들을 뒤로하고 말이다. 또다시 1년의 항해를 거쳐 다시 현
실 세계인 자기 방으로 돌아온 맥스는 엄마가 방금 차려주신 따뜻한 저녁 식사를 보게 된다.
5~6살 정도 아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비춰본다면 이 이야기는 그 또래 아이들의 틀에 박힌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주인공이고, 왕이고 황제다. 자기 멋대로 행동해도 누구 하나 꾸중하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그 나라는 최고의 나라다. 하지만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왕인 나는 멋대로 해도 백성인 괴물들은 무조건 자기 말 들어야 한다. 진탕 놀자고 하면 놀아야 하고 가만있으라면 무조건 가만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서 엄마가 자기에게 했던 행동을 이제 괴물들에게 한다. 괴물들을 만만한 어린아이로 취급한다. 명색이 왕인데 백성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않는다. 이제 왕 노릇도 지겨워져 떠나는 맥스에게 괴물들이 맥스가 엄마에게 했던 ‘확 잡아먹어 버릴 거다’라는 폭언을 쏟는다. 전형적인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이다.
성인으로 자란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철없던 유년 시절이 있다. 자아라는 것이 생기고 나서 부모란 존재는 늘 나를 닦달하고 구속하려 드는 걸림돌일 뿐이다. 나는 초콜릿이랑 사탕이랑 단 음식만 먹고 싶은데 부모는 몸에 좋다면서 늘 맛도 없는 푸성귀 반찬 먹으라고 일장연설만 늘어놓는다. 나는 그저 음악만 듣고 게임만 하고 싶은데 부모는 빨리 공부하라고 으름장만 놓는다. 나는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부모는 사사건건 내 인생에 태클만 건다. 부모가 미워지는 때가 점점 많아진다. 이것이 우리네 유년 시절의 모습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책임감과 이해관계라는 새로운 걸림돌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자유를 누릴 기회를 또 박탈당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아이의 삶이나 어른의 삶이나 사실상 큰 차이도 없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도피하고 싶다. 그래서 아이든 어른이든 나만의 판타지를 꾸민다. 내가 왕이고 황제인 세상, 내 맘대로 놀고 즐겨도 그 누구의 개입도 간섭도 없는 세상 말이다. 거기서 내가 왕처럼 모두에게 떠받들어진다면 더더욱 좋겠다. 그 판타지는 온라인 게임이거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각종 소셜 미디어거나 그 외 여러 가상공간 등등이라 하겠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나만의 세상에서 더없는 행복감이 생겨난다.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우리네 인생은 얼마나 황망하고 고달플까?
맥스가 자유를 갈망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식사가 그립다는 감정이 남아있듯이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의 성정을 무의식 중에 다 갖고 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인생 자체는 힘들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말이다. 그래서 이 고달픈 인생을 돌아보고 잠시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내가 맘대로 왕 노릇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책임감과 이해관계라는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서로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환대와 휴식이 있는 곳이 있어야겠다. 나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 모두 그림책 수업을 듣고 물만골을 거닐면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 맥스가 느꼈던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되, 이 물만골이란 공간이 그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인생에 있어 재충전과 활력을 가져다주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곳에서 느낀 행복감이 맑은 물처럼 흘러넘쳐서 모두에게 골고루 퍼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닐까?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 세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