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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Feb 05. 2022

회식

워킹맘의 저녁시간

워킹맘과 회식은 일부러 꼬아서 연결하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로 엉킨 실타래다. 아무리 쿨한 여자라도, 아이를 가족 누군가에게 맡긴 채, 일의 일부라는 명분으로 참석한 술자리에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있긴 어렵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자리라면 자유부인의 쾌재를 외치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자리라면 더욱 괴롭다. 그건 남자라도 그렇겠지.

나는 회식을 좋아한다. 야쿠자처럼 20명씩 쪼로록 앉아 돌아가며 건배사를 외치는 빡센 회식 말고. 그저 친한 회사 사람들끼리 일 끝나고 삼삼오오 앉아 낮보다 조금 더 친해지는 시간 말이다. 사람 사이에 오가는 웃음과 말, 공기가 좋아서다. 맛있는 음식과 술도 좋다. 그것이 일의 연장이든 전략적 네트워크 수단이든, 어쨌거나 어스름한 저녁에 모여 오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이야기와 정을 나는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들 별 수 있나. 아이들을 챙겨 집에 가야 하는 워킹맘은 또 그저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거다. 각자 자기에게 더 중요한 삶의 방식을 매 순간 선택하는 게 우리 인생이니까.

지난 몇 달 간, 회식같은 건 생각도 안하고 살았다. 오미크론이 극성이고 날도 너무 추우니 먼저 누굴 불러내 저녁을 먹자고 하기도, 굳이 누가 오라고 해도 가기 싫은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기분이 묘해지는 때가 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또는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나만 빼고' 회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때, 그리고 회식을 한다는 사실조차 금시초문인데 밑도끝도 없이 '넌 왜 안가냐'는 질문을 받을 때다. 회식을 좋아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야한다는 상황적인 제약도 물론 답답하지만, 그보다 더 부대끼는 건 그런 내 상황을 미리 헤아려 친절하게 제외(?)시켜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마워해야 하는가, 화를 내야 하는가 헷갈릴 때다. 왜 안 가냐고? 안 불렀으니까. 왜 안 불렀을까? 글쎄, 막내라서? 여자라서? 어차피 애들 때문에 안 될 테니까? 내가 그 동안 뭐 실수한 게 있나..? 인원 제한 때문인가? 나 빼고 몇 명이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왠지 내가 초라해져 고민은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간단하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나를 부르기가 불편했던 거다. 나이도 제일 어리고, 혼자 여자인데다, 오라고 하면 가족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수고를 감행해야 할 게 뻔한데, 굳이? 싶었을 거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 정도를 불사하고라도 반드시 불러야 할 만큼 친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중요한 자리도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도 막상 오라고 해도 고민이다. 이 코로나 시국에 남편이나 엄마에게 SOS 쳐 가며 '반드시' 가야 할만큼 중요한 자리인지 판단해야 하니까.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가족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불러주신 분께 거절을 해야 한다. 어쨌거나 불편한 일이다. 사실 안 불렀다고 서운할 일도, 막 고마울 일도 아니다. 친한 사람들과 편하게 모이는 저녁자리, 거기서 나는 이미 불편한 존재인거다. 나 자신도, 그들에게도. 

인생이 좀 심플하면 좋겠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는 거다.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자리면 부를거고, 그렇지 않으면 안 부를거다. 꼭 저녁 시간에 함께 해야만 정이 쌓이는 것도 아니고, 회식 자리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혼자 모른다고 해서 회사 생활을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회식'이라는 말조차 이제는 꼰대스럽다. 술 한잔 했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어제 저녁의 정보가 오늘도 유효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살면 된다. 누가 부르든, 부르지 않든, 내 저녁 시간의 우선순위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정정해야겠다. 나는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가족이든 친구든 회사 사람이든,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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