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과 편견, Pride and Double Prejudice
Are you Korean?
(나) Yep, How did you recognize?
Because of your eyes.
(나) 한국인의 눈이 어떤데?
이렇게 찢어져있잖아.
대충 외국인의 플러팅으로 ‘한국인의 눈은 아름답잖아’ 정도를 예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당황해 그저 썩소를 짓고 말았다. 몰디브에서 겪었던 일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약 24시간의 여정 직후 식당에서.
당시 바로 반발을 하지 않았던 것은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대중적 관광지의 럭셔리 리조트에서 들을법하다고 예상치도 못했거니와 그 친구의 악의를 느끼지 못했던 복합적 이유라 여겨진다.
어쨌든 글로벌한 럭셔리 리조트에서(아니 어디에서든) 발생해선 안 될 발언이라는 판단에 며칠 뒤 버틀러에게 이 일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F&B 총괄과 레스토랑 담당자가 번갈아 우릴 찾아왔다. 이들은 해당 직원이 나쁜 의도가 없었고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에 나 역시 아직 사회생활 초년생인 친구가 손님과 스몰토크를 해보려다 벌어진 일임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몰디브섬에서만 자란 어린 친구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낱낱이 알고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옳고 그름에 대하여 접할 일이 분명히 나보다 적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야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무엇이 누구에게 기분 나쁜 표현인지 쉽게 접할 수 있었겠지만, 그 어린 친구는 한정된 매체와 경험 속에서 배운 '한국인'에 대한 최대치의 정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그 친구의 실수가 크게 모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친구의 실수 덕분에(?) 총괄 매니저로부터 무료 와인&치즈 시음권을 받았다. 다음날 저녁에 남편과 손을 잡고 바다 한가운데 따로 떠 있는 와인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짐바브웨에서 온 소믈리에가 우리를 반겼는데, 관광지에서 서비스업을 하는 이들이 가진 특성 없이 아주 담백하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총 4종의 와인과 그에 맞는 치즈를 먹어보며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우연히 소믈리에를 시작해서 처음으로 ‘아시아’에 와보았다고 했다. 아 그렇지, 몰디브도 남아시아지!
나는 괜히 친한 척을 하고 싶어 '에티오피아'에 가보았다고 했다. 출장으로 가본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였기에. 그 친구의 대답이 애매모호했는데, 아차 했다.
반대로 따지면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했을 때, '오~ 나 태국에 가봤어'라고 어떤 외국인이 대답하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심지어 아프리카 대륙이 지도상에 표기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고려한다면 나는 '북아프리카' 끝에 있어 중동과 더 가까운 국가에 가봤다고 남아공 옆에 있는 남아프리카 출신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졌고, 그에게서 짐바브웨의 거대한 폭포와 유명한 사파리에 대해 들었다. 그곳에 가보았냐고 했더니, 그러지 못했다 하였고 나는 “아니 해외도 아니고, 어째서 자국의 관광지에 가지 못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난 또다시 아차하고 말았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가난해서 그곳에 갈 수 없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오지”
국내여행은 필수요, 해외여행은 선택인 나의 삶의 기준에 맞추어 그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고, 그의 소믈리에 자격증은 생존의 영역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몰디브와 한국이 동일하게 하나의 ’ 아시아‘였다. 우리가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묶어버리듯이.
누군가의 편견 어린 실수로 인하여 얻게 된 기회 속에서 나는 나의 편견과 무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뇌는 살아남기 위하여 경험과 노출도를 기반으로 특정한 '정보'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정보는 서로에게 공유되며 어떠한 '인식'으로 자리 잡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 대부분을 좀 더 편리하게 한다. 예를 들어 기름을 넣으려면 주유소에 가야 하고, 과일을 사려면 시장이나 마트에 가야 한다는 인식은 우리의 삶을 정돈되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편견으로 자리 잡아 누군가를 해하기도 한다. 서양인에게 동아시아 3국이 비슷비슷하다 느끼듯, 우리는 이 보다 훨씬 거대하고 다양한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로 묶어 대상화한다.
남미에 여행 갔을 땐 매일 '치나~'라는 캣콜링 같은 걸 들었어야 했는데 예중국인이란 뜻이다. 우리한데 발트 3국이 다 비슷하게 느껴지는데 그들에게 중국과 한국이 다르다는 것을 설득하기는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중국인인 경우가 더 많겠지? 그렇게 따지면 상당히 효율적 접근법일지도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고 다르게 생각할 필요는 있다. 미국의 한 대학 수업에서 아시안인 학생의 이름을 전부 나열해서 성별이나 출신국가 별로 언어적 차이가 얼마나 크며 서로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을 보았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며 속으로 '그래 이 서양인들아! 좀 배워!'라고 생각할 터이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우리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무지함을 보고 '저 코리안 놈들..'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스리랑카에 파견을 간 적이 있었는데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인이 얼마나 다른 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스리랑카는 참 아름다운 나라였지만 스타벅스가 없었고, 내게 저렴한 여행지로 인식되었던 동남아는 이미 유럽처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바라던 말레이시아에 갔을 땐 나와 훨씬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 덕에 한국에 간 것 마냥 마음이 편했다. 그때 남아시아를 배웠고, 또 동남아시아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은 다 이렇게 상대적이었다. 나와 크게 다른 인종 속에 섞여 살면, 나와 조금만 비슷한 인종 속에 가도 안도를 느끼지만 내 나라에서만 있다 보면 조금만 다른 것도 큰 것이 된다. 에티오피아의 흑인과 남아공의 흑인은 키나 피부색깔도 다르고, 또 미국의 흑인, 유럽의 흑인과도 또 서로 다르다.
이 상대적 차이를 모두 알아챌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한중일을 구분해 주기를 바라듯, 우리를 보고 째진 눈을 하지 않길 바라듯
아직 세계화가 덜 된 것은 그 어린 친구가 아니라 어쩌면 나였다.
#여담
짐바브웨 친구의 소탈함과, 와인이 주는 알딸딸함에 우리는 기분이 무지 좋아졌다. 남편도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몰디브 여정 중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때 그에게 추천받은 Rioja 와인은 우리의 페이버릿이 되었고, 그날 바라보던 바닷가와 노을, 그날 밤 보았던 달빛 모두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저녁 식사장소마다 F&B 총괄은 우리를 찾아와 컨디션을 체크했다. 귀빈대접이란 게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