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먼저 죽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습니다. 고양이는 할머니를 위해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남겨 놓았습니다. 할머니는 그 자국을 쓰다듬으며 살았습니다.
할머니와 고양이 사이에 남겨진 발톱자국. 작고 사소한 흔적이라도 그렇게 남기고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흔적을 하느님의 형상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던 식탁’처럼 그 흔적이 나에게 남게 된 것을 기꺼이 받아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하여 불편하고 힘들기만 한 노년에 부드럽고도 따뜻한 침묵을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작은 흔적들이 보입니다. 내 몸을 살핍니다. 내게 남겨진 흔적이 보입니다. 고마워하며 살 일입니다. 침묵하며 살 일입니다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 <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웨하스를 먹는 시간>
제14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웨하스를 먹는 시간>)
조정인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었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