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에 참가해서 결승에 진출한 김호중이 준결승 1라운드에서 부른 곡은 주현미의 짝사랑이었다. 김호중이 이 곡을 선택한 후 주현미를 만났을 때 주현미는 이 곡이 경연곡으로는 어렵다고 하면서 만류했으나 김호중은 한번 해보겠다며 자신의 의지를 피력했다.
주현미의 짝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언급했던 말 중에 ‘어려운 곡’이라는 표현이 제일 많았다. 그러나 이 말은 짝사랑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짝사랑은 부르기에 어려운 곡이라기보다는 곡의 성격상 경연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어떤 곡이 경연에 어울리는 곡일까. 멜로디가 웅장하면서 버라이어티한 노래, 잔잔하게 진행하다가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되는 노래, 엔딩의 울림이 강렬하면서 화려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듣는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는 내용, 감정의 발산과 전달이 자연스러운 내용, 감정이입과 몰입이 저절로 되는 내용의 가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현미의 짝사랑은 대체로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래 자체가 묵직하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가사나 클라이맥스가 없다. 그래서 짝사랑 같은 노래는 적어도 상대를 두고 승패를 벌이는 경연에서는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노래가 아니다.
짝사랑이 지니고 있는 내적 감정은 보고 듣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그 감정선을 건드리는 유형이 아니다. 짝사랑의 감정은 철저하게 노래 부르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기본으로 한다. 그조차도 노래 부르는 사람의 특정한 감정을 청중에게 호소하는 유형의 감정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하나의 감정을 청중에게 말하면서 들려주는 유형의 감정이다.
이럴 경우, 청중은 자신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발휘해서 또는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 호소에 반응하면서 감정의 상승작용을 거치는 적극적 감상자의 위치로 들어가지 않는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들려주는 감정을 구경하는 소극적 감상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짝사랑은 그 소재와 제목이 태생적으로 한정적이고 한계가 있어서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짝사랑이 문제가 있다거나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짝사랑이 가져야 하고 가질 수밖에 없는 적정의 이야기와 감정이 그에 맞는 옷과 무대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김호중이 짝사랑을 선택한 것에 대한 호불호의 판단은 ‘음악의 배움과 성장 환경에서 수없이 많은 경연을 치렀을 김호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려야 마땅하다. 음악을 하면서 경연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분석적으로 이해하든 감각적으로 이해하든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호중은 그런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왜 주현미의 짝사랑을 선택했을까. 그것 역시 나름의 계산에 따랐든 아니면 본능적 감각에 따랐든 간에, 한번은 선택하고 도전해야 할 필요성 내지는 당위성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만한 재능이 있는 김호중으로서는 충분히 해볼만 한, 아니 한번 해보고 싶고 한번 보여주고 싶은 재능의 한 독특한 특성이자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하면 큰 위험부담이 따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경연을 도중하차 해야 하는 씁쓸함을 맛보면서 뒤늦은 후회를 곱씹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호중이 짝사랑이라는 노래를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호중의 승부사 기질에서 나오는 두둑한 배짱이라고 본다. 나의 승리가 상대의 패배와 직결되고 상대의 승리가 나의 패배로 직결되는 제로섬게임에서, 김호중만이 가지고 있으면서 김호중만이 발휘할 수 있는 특유의 배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배짱은 자신의 기본적인 실력에 대한 이해와 그 실력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서 나온다. 또한 그 실력을 드러내고 검증받는 판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평가받게 될 것인가에 관한 득실 계산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짱이 아닌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또는 지피지기 입장에서 자신의 판세를 전혀 모른 채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나가는 우매하고 무지한 자의 소인배적 영웅 심리일 뿐이다. 이렇게 하다가 허망한 결과를 맞닥뜨린 장수들이 여럿 있다.
결과가 말하고 결과가 증명하는 경연의 과정에서 보면 결국 김호중은 짝사랑을 불러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경연이라고 하는 싸움은 일종의 영토 전쟁 내지는 영역 싸움과도 같아서, 상대 진영에 이미 속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더더욱 그 싸움이 종반으로 치달을 때는 진영에 속하는 피아 구분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정착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시기나 시대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기 진영을 향해 애정과 책임이 있는 장수로서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책사의 전략적 계산에서 나올 수도 있고, 또는 감이나 촉으로 움직이는 주군의 기질에 따른 직관적 본능에서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든 간에 아군의 진영을 향해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시점에 대한 계산이나 감각이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김호중의 짝사랑은 자기 진영을 향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의 하나를 펼쳐 보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상대 진영에서는 ‘저게 뭐야?’라고 의아해하면서, ‘무기가 너무 가볍다’고 ‘저런 무기로 싸울 수 있겠냐’고 우습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짝사랑이라는 무기는 상대에게 휘두르는 무기가 아니라 자기 진영에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장수로서 보여주는 일종의 검법과 검무요, 그들의 장수가 이런 병법을 가지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종의 ‘위문공연’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김호중의 배짱이 실로 두둑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김호중을 따르는 진영 또한 단단하게 구축되고 조련된 진영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김호중이 준결승 1라운드에 들고나온 짝사랑이라는 패가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