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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Jan 26. 2021

못난 사람의 못난 생각

평범함 정도는 좀 그냥 줘도 되지 않나요?

#모피코트와 니트 

어느 날 자주 만나는 멤버의 만남이라 부담이 없었지만 모처럼 점심 약속이라 화장도 하고, 좋아하는 겨울 니트도 꺼내 입었다. 약속 장소에 앉아있으려니 길 건너에서 모피코트로 한 껏 멋을 낸 친구가 온다. 모피코트가 입고 싶었던 적도 없었고, 그것이 부의 상징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내 패딩에 묻은 얼룩이 눈에 들어와 자꾸 거슬렸다. 눈을 보고 얘기 나누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녀의 모피코트와, 나의 지나치게 발랄한 니트(20대에 사서 지금껏 입은 니트이니 그럴 수밖에), 잘 손질된 머리와 나의 삐죽삐죽한 머리, 화장이 잘 된 얼굴과 나의 운동화를 비교하며 훑어 내려온다. 그렇게 점심을 마치고 집에 와서 괜스레 옷걸이에 걸려있는 양피 무스탕(내 옷들 중 가장 고가)을 꺼내 입어본다. 과하게 부풀린 털은 보기와는 다르게 따뜻하지 않았고, 패딩보다 무거운데 역시 모피는 보온을 위한 것은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걸어놓으며 다짐한다. '모임이나, 학교 공개수업엔 이런 걸 입어야 하는 거구나.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


아이가 배우고 있는 수영 이야기, 그룹 레슨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틈에 나는 단 한마디도 나눌 정보(?)가 없었는데 갑자기 또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할 일'이 없다. 특별한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하루 1시간 책 읽기, 성경 읽기 등 해야 할 일이라곤 모두 다 해도 두 시간 이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는 동생이 "소신 있는 언니가 좋아요"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는데 내가 진짜 소신이 있는 것인지 그런 척하는 것인지, 어떻게든 시키고야 마는 근성이 부족한 건지.. 요즘 왜 이렇게 헷갈리는 일들이 많은 걸까.

한없이 초라한 내면과 마주치기 일보직전이다. 그럴 땐 생각을 쫓아야 나와 마주치지 않는다. 


밤에 아이가 먼저 잠드는 것은 좀 드문 일이다. 아이가 잠들고나서도 깨어 있는 것은 내가 무언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의 잠자는 얼굴을 쓰다듬는데 한없이 미안하고, 한없이 작아진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고인 줄 알았지만 '성공'하고 싶다. 

지나치게 발랄한 나의 니트

#평범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니!!

나는 그냥 특별하게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았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 더 욕심부리지 않고, 가진 것에서 누릴 것들을 찾아 행복을 만끽하는 그런 삶에 100% 만족했다. 경쟁하는 싫었고, 굳이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작은 마을에서 살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주는 특별한 혜택이나 지원을 받으며 아주아주 많이 행복해하며(도시 사람들아 너네는 이런 거 못 받지? 우리는 줄 안 서도 그냥 준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살기 때문에 주어지는 특별혜택을 만끽하는 게 좋았다.


삶은 나를 작은 도시로 옮겨다 놓았다. 나의 이사 이야기를 되돌려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옮겨놓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작은 도시로 옮겨진 이후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삶'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저절로 주어지는 줄 알았던 평범한 삶을 위해 나는 '노력'이란 걸 해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떠 작은 동산을 산책하는 삶은 어떤가? 평범하지 않은가? 하지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 그러한 삶 또한 내일 먹을 양식이 없다면 누릴 수 없다. 근데 참 지독하다.. 평범함 정도는 그냥 주어져도 좋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는 이미 깨달았겠지.

평범한 삶도 내가 헤치고 나가야 하는 현실 그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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