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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베투 My Better Today Jun 20. 2024

'잘 쉰다'는 것에 대하여

어느 한적한 오후 만화카페를 찾다

백수가 된 지 3주 차. 사업을 정리하고 즐거워했던 것이 무색하게, 난 쉼이 주어진 후에도 새로운 일들을 찾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났던 친구들, 참석하지 못했던 모임까지 찾아가니 2주가 지나자 몸이 다시 퍼져버렸다.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기 싫은 기분이 든다. 이대로는 정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차라리 어딘가를 가자, 스스로를 채근하며 집을 나왔다.


누워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 마음이 좀 바뀌면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며칠 전 친구가 이야기해 준 만화카페가 떠올랐다. 10대, 20대를 통틀어도 만화카페 (내가 어릴 땐 '만화방'이었지만)를 가본 건 손에 꼽는다. 가서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인터넷에서 '요즘' 만화카페는 어떻게 이용하는지 예습해 보며 길을 나서본다.



요즘 만화카페는 리클라이너도 있고,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넷플릭스도 본다. 맛있는 밥도 있다. 신세계다.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 대신, 바닥에 배를 붙이고 누워 5분이나 고민한 끝에 골라온 만화책을 한 권씩 읽어본다. 그러다 문득 그만 읽고 싶어지 그대로 책을 덮고 누워 그저 그렇게 가만히 숨만 쉬어본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시 배를 깔고 누워 만화책을 보고. 이건 잘 쉬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제대로 된 쉼을 갖는 건가?




잘 쉰다는 건 뭘까? 내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처음 던진 건 30살이 되던 해, 첫 직장이자 5년 차로 접어들던 직장을 그만둔 직후였다. 나의 첫 직장은 업무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업계였고, 나는 주말을 반납해 가며 열정과 청춘을 바치며 20대의 반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30대의 시작을 백수로 시작할 수도 있는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그 쯤 외국의 한 기업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자리를 제안해 주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쳐있는 나를 배려해 처음 몇 달은 여유를 갖고 쉬어도 괜찮다는 제안도 해주었다. 결론적으로 이 두 번째 직장에서 난 참 버라이어티한 일들을 겪게 되었지만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때 난 처음으로 '잘 쉰다는 게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20대의 난 항상 치열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진 않았어서 학기 중엔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방학 때는 대외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20대는 항상 내 시간을 무언가로 채우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준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이직한 직후 팬더믹이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마비되 나는 더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린 코끼리에게 목줄을 달아놓으면, 덩치가 커진 코끼리는 얼마든지 목줄을 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시기의 난 마치 목줄을 단 코끼리와 같았다.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라고? 빨리 밥 먹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든가 "6시에 칼퇴를 한다고? 야근을 하지 않고?"라는 생각을 하며 여유로운 일상에 당황했고, 런 환경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를 옭아맸던 치열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난 풀어진 목줄을 손에 쥔 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 셈이다.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난 여전히 목줄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불편해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겪는다. 워커홀릭인 것 같은데, 체력도 멘탈도 저질이라 번아웃이 자주 오는 효율 낮은 워커홀릭이다.


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20대에 욜로! 워라밸!을 쫓던 시절도 있지만 그건 청춘이 선물한,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일종의 유예기간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멈추지 않는 기차처럼 달리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30살의 내가 풀어준 목줄을 보며 우왕좌왕하고 더 나아가 우울감마저 느꼈던 것처럼, 멈추지 않는 기차는 결국 멈추기 위해 크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욜로를 외치던 20대 초반과, 치열했던 20대 후반의 삶을 거쳐, 지금의 내가 목표하는 삶은 그 중간의 어디쯤이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동시에, 어느 역에서는 잠시 쉬며 다음 목적지까지 달릴 수 있는 연료를 채우는 것. 20대를 지나며 나는 결국 '잘 쉬는 것'이 '오랫동안 잘 달릴 수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배웠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내가 잘 쉰다는 것에 대해 발견한 세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잠을 자야 한다. 원래의 난 꽤 규칙적인 수면시간을 지켜왔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나니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도 없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완전히 자유로운 수면패턴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새벽 3시, 4시에 잠들고 8시에서 10시 사이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몇 번의 불면의 밤이 지나니 난 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제대로 자지 못한 날 집중력 낮아졌고, 우울감이 올라갔으며, 일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20대에도 밤을 새운 기억은 있는데 그땐 체력이 좋아서 괜찮았던 건지, 일회성이라 그랬던 건지.. 어쨌든 그래서 내가 만든 잘 쉰다는 것의 첫 번째 조건은 밤 11시, 늦어도 12시에서 8시, 하루 8시간의 수면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10시에 자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니 안 지켜지는 일이 많다). 이 '8시간'은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수면시간이다. 사람에 따라선 이보다 적게, 또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


*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최적의 수면 시간은 7시간-9시간으로, 수면시간이 6시간 이하인 경우 주의력 결핍, 반응시간 저하, 작업수행 능력 저하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6시간 이하로 자는 경우 우울증 발병률은 2배 가까이 높아지며 10시간 이상 취침하는 경우에도 우울증의 발병률은 높아진다.


둘째, 뇌를 비워야 한다. 부자들의 공통된 습관을 연구책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부자들이 갖고 있는 몇 가지 공통점을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명상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그들이 하는 명상 하나의 영적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명상은 영혼을 맑게 한다거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영적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말 그대로 뇌를 비우기 위 활동이라는 점이다*.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는 큰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과장하자면 어떤 때에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과정 전반에서 쉼 없이 사업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이건 24시간 계속해서 돌아가는 컴퓨터 CPU인 셈이다. 우리 뇌는 주기적으로 셧다운이 필요하다. 잠을 자는 것도 사실 같은 이치지만 사람자는 동안에도 뇌를 사용하니 그 외에 별도로 전원을 꺼줘야 한다. 그리고 그 전원버튼의 역할을 하는 것이 명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연구에서 명상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명상을 한 집단은 비명상 집단에 비해 주의력 테스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거나, 8주간의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하고 생산성지수가 12% 증가했다거나, 명상이 뇌의 회백질 밀도를 증가시켜 인지적 유연성 테스트와 작업 기억력에서 향상된 결과를 보여준다와 같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미국 및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명상의 효과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는데 종교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Mindfulness'라는 하나의 활동으로써 명상과 그 효과를 연구한다. 


셋째, 운동을 해야 한다. 뇌가 우리 몸의 CPU라면, 우리 몸은 컴퓨터를 움직이는 부품들이다. 당연히 녹슬지 않게 관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백수가 되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다만, 이게 "쉼"과 정말 연관이 있을까 물으면 솔직히 확신은 안 생긴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온몸의 근육통 때문에 안 하던 때보다 더 뚝딱거리는 느낌이다. 계단을 오르며 "아이고..."를 나도 모르게 내뱉다 보면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은 갖고 있다. 몸이 망가지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병이라도 걸린다면 삶의 질은 더 떨어질게 분명하다. 그러니 당장은 쉬는 날 2시간 이상 (하기 싫은) 운동을 하는 것에 불만이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결과나 효과는... 물론 수개월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




그에 반해 의외로 쓸모없었던 휴식들도 있었다. 우선, 호캉스는 쉼이 아니었다. 고급스러운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뇌를 비우는 것'에 기여했거나, 함께한 사람들과의 시간들이 의미 있었던 것이지, 럭셔리한 휴가 자체가 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쉬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공식적으로 백수가 된 이후 나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이전에 참여했던 모임에 나가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체력적으로 지쳐 다시 퍼져 버렸다. 사람들과 적당히 교류하는 것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인 것 맞지만, 쉬는 것의 조건과도 일치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과의 교류는 잘 쉬는 것의 조건일 수 있지만, 서울 외곽에 살고 있는 나의 상황이 변수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가'가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고. 이건 아직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취미생활이나 자기 계발이 쉼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일을 그만두고 난 오랫동안 쉬었던 목공이라는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한번 가면 2시간 정도 작업을 하는데 시간의 흐름도 잊고 즐겁게 작업한다. 하지만 이 역시 쉼과 관련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또 여러 생각이 든다. 작업을 완성할 때 나는 충족감을 느낀다. 행복감과는 다른, 내 안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그런 뿌듯한 감정이다. 하지만 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오면 체력적으로 지쳐버린다. 난 쉼을 가진 걸까? 아닌 걸까? 아리송하다.





릴 때 난 너무나도 쉽게 '잘 쉬었다', '잘 놀았다'와 같은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쉼'이라는 단어가 예전만큼 가볍지도 쉽지도 않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모순적이게도 어린아이들이 쉽게 해내는 무언가를 어렵게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치열함과 여유로움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나의 백수생활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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