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은 해프닝이다.
푸르공은 참 대단하다. 강도 건너고, 진흙 위도 잘 달린다. 내 운전면허는 2종 보통이라 수동의 자동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길이 없지만, 푸르공에는 기어도 두 개나 달렸다. 한 개의 기어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기어고, 나머지 하나는 레이싱 게임을 하면 가끔 누르게 되는 부스터 버튼 같은 개념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우리 차를 운전해 준 기사님은 엄청난 베테랑이었는데, 별생각 없이 달리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뒤따라오던 차가 보이지 않아 중간중간 멈춰서 다른 차를 기다려야 하는 수준이다. 바퀴가 진흙에 빠지는 것 같다가도 기사님이 몇 번 기어를 덜컹덜컹 건드리면, 제 길을 찾아서 다시 달린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는데, 멀리서 우리의 목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가의 말로는 앞으로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푸르공을 타고 달리며 초원을 보는 건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1시간, 2시간을 넘어가지 조금 지치던 차여서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도착지점을 눈앞에 둔 순간, 뒤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사실 사진에서도 보이겠지만, 저렇게 질척거리는 길을 문제없이 온 것부터가 대단한 거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어드벤처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우리 일행 중 누구 하나 이 사태를 보고 즐거워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도우려고 했지만, 현지 가이드들은 우리를 물리고 자기들끼리 차를 밀었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해결되지 않자, 우리가 탔던 차에 로프를 달아 차를 끌어당겼다. 사실 이를 지켜보는 내내 혹시 우리가 타고 온 차 마저 진흙에 빠지는 건 아닌지, 만약 차가 두 대 모두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는데, 몇 번의 시도 후에 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진흙더미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Hooray!!"
우리는 모두 만세를 불렀고, 그렇게 진흙을 벗어난 푸르공은 다시 검은 매연을 뱉어내며 앞으로 달려갔고, 우리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나를 포함해 뒤에 남겨진 일행들은 '기껏 구해줬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가는 배은망덕한 푸르공녀석'을 향해 열심히 뒷담화를 하며 우리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우리도 다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퓌이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퀴가 헛도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기사님이 다시 한번 부스터(?)에 힘을 주고 액셀을 밟지만 불길한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차에서 내려 보니, 좀 전에 빠졌던 차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뒷바퀴가 진흙에 빠져 있는데, 어느 정도냐면 사진에서처럼 차의 앞부분이 완전히 허공에 들어 올려진 수준이었다. 금방 빠져나올 거라는 기대와 달리 기사님의 몇 번 시도했음에도 차는 점점 더 박히기 시작했고, 어느새 다른 차는 그런 우리를 뒤로 한 채 점점 더 멀어진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얼른 돌아와!!'
사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저 즐거웠다. 이런 해프닝 자체가 여행의 한 부분이라 여기며 재미있어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여행은 역시 이런 사소한 해프닝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앨범인 셈이다.
난 사실 여행을 가면 지도 없이 그저 발이 움직이는 대로 걷는 것을 좋아하고, 특별한 계획 없이 그날의 기분이나 그 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일정을 정하는 편인데 모두 크고 작은 해프닝을 잡기 위해 여행 중간중간에 파놓은 일종의 덫이다. 몽골여행은 내가 따로 뭔가를 하지 않아도 그런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계속 일어난다. 물론 그 해프닝들 모두가 하나의 웃음포인트다.
한참을 달려가던 '배은망덕한 푸르공'이 뒤늦게 우리의 위기를 감지하고 다시 한참을 돌아 우리에게 왔다. 사실 바퀴가 워낙 심하게 박혀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번엔 한국인과 몽골인이 힘을 합쳐 차를 밀었다. 바퀴에 밀린 진흙이 우리 몸으로 날아와 우리 옷 위로 상흔을 남겼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이걸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일행이 된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여행에서 항상 그런 행운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
마침내 도착지점에 다다르니 4명의 몽골인 아저씨들이 텐트를 치고 앉아 있다. 우리의 일정을 함께해 줄 마부들로, 전날 이곳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렸다고 했다. 도착 후, 가이드는 우리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숙소를 떠날 때 몽골팀장님이 캠핑여행의 출발지에 가면 말에 짐을 싣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로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짐을 내리고, 분류하고, 포장해서 말에 싣는 시간들이었는데, 체감상으로는 2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어드벤처의 길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