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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베투 My Better Today Aug 28. 2024

[말 타고 야외취침하는 몽골 어드벤처] 9번째 이야기

내 말의 이름은 '페라리'입니다. 

짐을 어느 정도 싸고 나자, 가이드들은 우리를 불렀다. 몽골인 가이드 '바가'가 말 위에 올라 우리에게 말 타는 법과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하면, 한국어를 하는 가이드 '오치로'가 통역을 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우리에겐 장화와 엉덩이 패드, 헬멧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장비까지 완전히 착용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4박 5일간의 일정을 함께할 각자의 말이 배정되었다. 



나에게 배당된 말은 바로 이 녀석이었다. 우리 차를 운전해 준 기사님이 고르고 골라 내게 점지해 준 친구다. 사실 출발할 땐, 푸르공을 타고 오는 내내 주접을 잘 떤 덕분에 기사님이 특별히 좋은 말을 나에게 골라준 건가 했는데, 말을 타는 4일 동안 지켜보니 아마도 내가 덩치가 있어 크고 힘센 말을 골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도 다른 말들에 비해 좀 더 컸고 무엇보다 힘이 굉장했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확실히 말하긴 어려운데, 말 자체는 힘도 좋고 덩치도 컸지만 그랬기 때문에 내가 컨트롤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몽골에서 짧게 속성으로 배운 내용에 따르면 말을 탈 때 고삐를 쥐는 이유는 이 고삐가 말 내부의 잇몸에 박힌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고삐를 당기면 말에게 약간의 통증이 주어지는 데, 그에 반응하여 당긴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멈추는 것이 말을 타는 원리다. 하지만 내 말의 경우 힘이 워낙 세기 때문에 고삐를 당기는 데에 너무 많은 힘이 들었는데 (여행 내내 말과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여행이 끝난 직후 1주일간은 손의 모든 관절이 아팠을 정도였다. 내가 기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간에 가이드분이 내 말의 고삐를 잠깐 쥐어보고 힘이 세긴 하다고 이야기했으니 완전한 착각은 아니었을 거다.


말을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 일행들은 각자의 말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첫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야 내 말의 이름을 확정 지었는데, 이름하여 '페라리'다. 힘이 굉장히 센 말인 데다, 계속 달리고 싶어 해서 나를 곤혹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말들은 얌전히 앞 말이 가는 길을 따라서 걷는 데, 내 말은 앞에 길이 막히면 옆의 샛길로 돌아가질 않나, 계곡을 건널 때 다른 말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걷는 것에 반해 나의 '페라리'는 좁은 계곡쯤은 우습다는 듯이 그 위를 훌쩍 점프해서 내 마음을 철렁하게 하기도 했다. '바가'의 말로는 이 말이 다른 말에 비해 똑똑해서 걷기 힘든 길을 피해서 가는 것 같다고 했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힘도 세고,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말이 바로 나의 '페라리'였다. 



문제는 페라리는 엄청 좋은 말인데 반해, 그 위에 오른 나는 '2종 보통'을 가진, 고소공포증과 놀이기구도 못 타는 엄청난 쫄보라는 것이다. 때문에 페라리는 페라리대로 달리지 못해 불만이고, 난 나대로 자꾸 튀어나가려는 페라리를 잡는데 힘을 쓰다 보니 페라리가 갖고 있는 장점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내 나름대로는 자꾸 고삐를 당겨야 했는데, 그게 그렇게 미안해 말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미안해.. 미안해.. 내가 2종 보통이라 미안해..'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그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다 마무리된 지금은 '페라리'정도 되는 말이었기에 나를 등에 업고 그 험난한 산을 건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녀석이 진짜 내 말이 아니고, 페라리라는 이름 대신 좀 더 몽골스러운 이름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자식자랑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페라리를 자랑해 본다. 


우리 페라리는요.. 7~8살이고요. (오치로의 설명에 따르면) 12~15년 정도 사는 말의 수명을 고려할 때 중년정도로 볼 수 있어요. 풀 먹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꽃 같은 예쁜 풀보다는 그냥 무조건 길쭉하게 생긴 잡초를 좋아하고요. 힘이 굉장히 세고 고집도 세서 컨트롤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사실 전 나중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뒀어요.. 그래도 저라는 짐을 잘 싣고 내려오더라고요. 다른 말들은 서로 붙어있기도 하던데, 우리 페라리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요. 몇몇 못된 말처럼 괜히 뒷발차기를 하며 성질을 부리지도 않는 착한 말이에요. 우리 페라리를 보게 된다면.. 잘 부탁해요.. 저보다 더 사랑해 줘요.. 보기엔 건장해 보이지만, 사실 먹는 거 외엔 관심 없는 말이에요..  저는 많이 달리지 못했지만, 꼭 원하는 대로 달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주접의 감성은 90년대생 이상만 이해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오치로...! 말은 15년 정도 산다고 했잖아요...! 말 수명이 25~35년이라는데.. 스트레스받는 경주마들이 10~15년 정도 산다는데... 아니죠? 몽골말이 그냥 일반말보다 적게 살거나 오치로가 그냥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고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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