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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ome Aug 27. 2022

메모리얼 데이

반환미군기지 이야기 15.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카투사 복무시절 자대였던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에는 주한미군 뿐 아니라 간혹 UN군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UN군들은 캠프 그리브스 인근에 있는 훈련시설이나 사격장에서 훈련을 마친 후 전투식량(MRE : Meal Ready to Eat)이 아닌 따뜻한 음식(Hot Chow)을 먹기 위해 캠프 그리브스 내 디팩(식당)에 방문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미군 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군인들을 부대 내에서 볼 때마다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습니다. 경기도 북부 민통선 내에는 과거에 미군기지가 꽤 많았으나 대부분 한국정부에 반환되었고 2000년대 기준으로는 훈련전용시설을 제외한 미군기지는 캠프 그리브스,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의 베이스 캠프인 캠프 보니파스는 공식적으로는 미군기지가 아닌 UN군 기지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에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미군 뿐 아니라 UN군 소속 16개국의 군인들이 참전하였고, 전쟁 과정에서 많은 UN군들이 생명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다음은 6.25 전쟁 중 참전국가별 병력피해를 수치화한 자료입니다.

6.25전쟁이 남긴 피해 (출처 : 용산 전쟁기념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시행되었습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소수의 미군만을 남긴 채 주한미군 병력의 대부분은 남한에서 철수하였습니다. 이런 상황하에서 북한은 수차례의 도발을 감행한 후 중국과 소련의 동의하에 1950년 6월 25일에 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3년 간의 전쟁이 치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국내외 장소들 중 제가 방문했던 곳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경기도 연천 UN군 화장장 시설

경기도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등록문화재 제408호)

경기도 연천에는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들을 화장하기 위해 1952년에 건립하여 휴전 직후까지도 사용한 화장 시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화장장 건물의 벽과 지붕이 훼손되었으나 화장장에서 가장 중요한 굴뚝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 유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서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잘 모르는 나라까지 와서 생명을 바치다 산화한 수많은 이름 모를 유엔군들 그리고 그들을 잃고 슬퍼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또한, 화장장 터 앞에 서 있으니 부산에 있는 UN기념공원의 UN군 무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강렬한 무엇인가가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어딘가에 있는 화장장에서 한줌의 재로 변할 저의 모습을 상상하니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삶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곳까지 와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니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엔군 화장장 굴뚝


UN기념공원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부산 남구 대연동에는 6.25전쟁 중 전사한 UN군 장병들의 유해가 모셔진 UN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유엔군들의 묘지 주변을 걷고 전몰장병 추모명비에 적힌 전사자들의 이름을 살펴보니 너무 무지한 채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UN기념공원 내 묘지
유엔기념공원 내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Wall of Remembrance)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 적힌 글귀

제가 워싱턴 D.C를 방문했던 2017년에는 워싱턴 D.C 내 다른 기념공원과 달리 한국전쟁 기념공원에는 6.25전쟁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시설없었습니다. 다행히 약 5년이 지난 2022년에 건립된 추모의 벽에는 전사자들(미군 전사자 36,574명, 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3,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의 전쟁기념 시설에 외국군의 이름이 새겨진 것은 카투사가 최초라고 합니다.

한편, 추모의 벽 건립 과정에서 의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와 주한미군전우회는 워싱턴 D.C 추모의 건립기부금으로 모금한 5만불을 2022년 4월 15일에 추모의 건설 현장에서 한국전 참전 기념재단에 전달한 것입니다. 워싱턴 D.C 추모의 벽은 2022년 7월 27일 공식적인 봉헌식을 거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추모의 벽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워싱턴 D.C 추모의 벽 건립 기부자에게 발송된 안내문과 코인


미국 뉴욕 유니버설 솔져 조각상


미국의 정치 수도 워싱턴 D.C 뿐 아니라 경제 수도 뉴욕에는 6.25전쟁을 기념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뉴욕 배터리 공원인데, 이 곳에는 6.25전쟁을 기념하여 한미연합군 뿐 아니라 참전국가를 기념하는 유니버셜 솔져(The Universal Soldier)라는 조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을 통해 6.25전쟁으로 희생된 미군 전사자가 한국군 전사자보다 많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감사의 묵념을 하였습니다.

뉴욕 배터리 공원 내 있는 6.25전쟁 기념비(Korean War Memorial)인 유니버설 솔져 조각상


미국 현대 역사에서의 6.25전쟁


뉴욕 배터리공원 인근 페리 여객선을 타고 스테이튼 섬에 가면 미국의 역사적 명소인 과거의 요새들이 있어서 역사적인 군사시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스테이튼 섬에서 뉴욕 맨하탄이 보이는 해안가에는 미국이 참전한 현대의 주요 전쟁을 표기한 기념비가 있는데, 이곳에는 6.25전쟁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고도 하지만, 한편으로 미국 본토에서는 중요한 현대전쟁의 하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현대 주요 전쟁 중 하나인 6.25전쟁 (뉴욕 스테이튼 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 역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에도 6.25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미국의 현대 역사에서 6.25전쟁이 중요한 이벤트였음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D.C 소재 미국 역사 박물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6.25전쟁사

6.25전쟁에 미군이 신속히 참전한 배경에는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의 즉각적인 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초 주한 미대사와 애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6.25전쟁이 발발했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그 다음날에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여 참전을 결정합니다.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은 것은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의 ‘해리 에스 트루만 상’ 및 미국군참전기념비
임진각 미2사단 참전기념비


T-34 전차와 전투기 등 최신 무기를 앞세워 빠른 공격으로 북한군의 기습 남침이 이루어진 다음 날인 6월 26일 오전 4시에 UN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었습니다. 북한의 남침을 국제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북한에 침략을 중지하고 38도선 이북으로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안보리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침략행위가 계속되었습고, 개전 3일만에 수도 서울은 북한군에게 함락당하게 됩니다.


미국은 UN회원국들에게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안보리에 상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6월 28일 개최된 안보리에서 군사원조를 통해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도록 대한민국을 지원한다는 결의안을 가결함으로써 UN군이 6.25전쟁에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설치된 6.25전쟁 참전국 상징 천정 장식

이에 따라 유엔 지상군 특수임무 부대가 긴급 편성되었는데, 바로 일본 캠프 우드에 주둔하던 미24사단 스미스 중령의 특수임무부대원들이 부산수영비행장을 통해 한국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부산으로부터 북상하던 스미스부대원들은 1950년 7월 5일 오산의 죽미고개에서 전차 33대를 앞세운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이는데, 이것이 바로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북한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인 죽미령전투입니다. 이 초전을 치룬 부터 국군은 서부를 유엔군에 넘기고 주력병력의 전장을 중부로 옮겨 낙동강 방어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죽미령 전투에서 전사한 스미스전투부대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55년 7월 5일 미군24사단에 의해 죽미령에 기념탑이 세워졌는데 바로 유엔군 초전기념비입니다. 한편, 1982년 4월 6일에 교통부 및 경기도에 의해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가 추가로 건립되었습니다.

유엔군 초전기념비 (미군24사단)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 (교통부, 경기도)


낙동강 방어선과 자고산 미군포로 학살사건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격전지 다부동에 건립된 다부동전적기념관

북한군은 남침 후 파상공세를 통해 35일 만에 왜관 인근 자고산 303고지(Hill 303)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1950년 7월 29일 미8군 사령관 월턴 H. 워커 중장은 미 제25사단 장병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설 곳도 없고 물러서서도 안 된다. 낙동강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선을 사수하라.”


워커 미8군 사령관은 8월 1일에 낙동강과 그 상류 동북부 산악지대를 잇는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고 치열하게 전투를 하였습니다.

낙동강 방어선 (출처 : 다부동전적기념관)

이 와중에 왜관 303고지에 북한군의 포로로 잡혀 있던 45명의 미군1기병사단 소속 군인들 중 42명이 1950년 8월 17일 처참하게 학살당하였습니다. 그렇기에 303고지는 가슴 아픈 전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오래된 추모비가 있으나, 추모비 앞 부지에 미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한미간의 우정을 굳건히 하고자 한미 우정의 공원을 조성하고 추모탑건립되었습니다.

자고산 미군포로 학살사건이 일어난 303고지 앞 대지에 조성된 한미 우정의 공원과 추모탑


한 퇴역미군에 의하면, 그가 303고지 인근의 미군기지(캠프 캐롤)에서 복무하던 1967년에는 303고지 내에 낡은 참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되었고 그 한 가운데에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현재의 303고지 사진을 공유하자 퇴역미군들은 격세지감을 느낀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에게 사진을 공유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대구시 소재 미군기지 캠프 워커 후문 거리는 '한미 친화 거리'라고 불리는데, 이 거리에는 303고지 포로 학살사건을 기념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6.25전쟁을 기억하는 퇴역 미군들의 303고지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한미 친화거리 내 303고지 미군 포로 학살 사건 기념공간


카투사 제도 창설


카투사 제도는 6.25전쟁 발발 후 전투 과정에서 미군병력이 감소되자 미군 병력의 증강을 위해 1950년 7월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과 미육군 및 유엔군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 간 구두 합의로 시작하여 1950년 8월 15일에 공식 창설되었다고 합니다. 카투사(KATUSA :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는 미군에 증강된 한국군을 의미합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카투사 제도는 현재까지 남아 있어서 한미동맹의 상징이 되고 있고 매년 카투사 친선 주간 행사를 치르며 미군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함으로써 6.25전쟁 초반의 최대 위기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미7사단의 인천상륙작전 10주년 (1960년 9월 17일) 기념비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되찾고 1950년 10월 38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을 통해 평양, 원산 등을 탈환하고 마침내 압록강까지 도달하였습니다.

38선을 돌파하는 아군 (출처 : 용산전쟁기념관)


전세가 아군에 유리해지자 1950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개입하게 됩니다. 중공군의 대규모 기습공격인 인해전술로 전선은 다시 38선 인근으로 밀리게 됩니다.


튀르키예(터키)군 참전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동고속도로 마성인터체인지 근처에는 1974년 9월 6일에 건립된 튀르키예군 참전비가 있습니다. 에버랜드 근처에 있다보니 지나가다 우연히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승용차로 지나가다 차창 밖으로 본 적이 있지만 여의치 않아 한동안 방문해보진 못했었다가, 주말에 지방에 갔다가 서울로 복귀하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이곳은 도보로는 갈 수 없고 도로로만 갈 수 있는데 도로IC근처 위치해 있다보니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서 다소 아쉽습니다.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가 용인시에 건립된 이유는 1951년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치룬 용인시 김량장동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의 용맹한 백병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라 합니다.

튀르키예군 참전기념비

퇴역 미군들에 의하면,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튀르키예군 1개 여단 규모의 병력이 10여년간 경기도 양주시 소재 반환미군기지인 캠프 베이요넷(Camp Bayonet)에 주둔했었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


경기도 평택시 용이동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비가 있습니다. 참전비에는 전투기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6.25전쟁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군을 파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참전기념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50년 9월 26일 더반 항을 떠나 11월 5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였고 F-51 무스탕 전투기 16대를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11월 15일 부산 수영비행장에 도착하였다 합니다. 남아공군은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전투기를 사용하여 아군의 지상군을 지원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고 하며 전투 과정에서 37명이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참전비를 돌아보며 이들이 치른 희생 덕에 현재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


유엔 회원국인 그리스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에 한국에 도착 후 바로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여주시 소재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그리스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1974년 10월 3일에 한국정부에 의해 건립된 그리스군 참전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이 참전비를 보기 위해 여주휴게소에 방문하였으나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하여 접근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안타깝게도 헛걸음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경기도 동두천시 소재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참전모형비가 있어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리스 건축양식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전비가 전국의 각지에 산재되어 있어 국민의 안보교육과 현장학습에 도움을 주고자 박물관에 모형비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군 참전모형비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기념석


1950년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 지원 요청에 가장 먼저 응답한 유엔회원국은 뉴질랜드라고 합니다. 1950년 12월 31일 아침 7시 30분에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뉴질랜드군의 SS올몬드 군함이 부산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뉴질랜드군의 첫 번째 군사캠프가 세워졌던 곳은 현재 기준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기념석이 있는 부산 송도라고 하는데, SS올몬드 군함을 기념하기 위해 뉴질랜드 오클랜드로부터 전달된 거북이 모양의 기념석이 송도의 전망대 휴게소에 있습니다.

뉴질랜드 참전 기념석이 있는 부산의 소나무섬 송도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 기념석

기념석이 왜 거북이 모양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송도 해수욕장에 가면 거북섬이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기념석을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거북섬과 송도해수욕장

뉴질랜드 참전 관련 기념 공간은 부산뿐만 아니라 가평전투가 벌어졌던 경기도 가평에도 있습니다. 가평전투는 한국전쟁기간 중 중공군 1차 춘계공세시기에 영연방 27여단과 중공군 제118사단 간에 가평군 북면지역에서 치러진 전투로써, 영연방군이 승리한 방어전투입니다.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영연방 4개국(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용사들이 참전하였는데 서울로 진격하는 중공군을 저지함으로써 수도권 방어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고 연합군 승리의 기틀을 마련해준 전투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 전투로 영연방군과 중공군 주력부대가 정면으로 전투를 벌이면서 양군 모두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가평군은 이를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가평군 내에 영연방참전기념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참전기념비를 조성하였고 정기적으로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가평전투 기념석 (경기도 가평군 호주 전투 기념비 인근)
경기도 가평 소재 뉴질랜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경기도 가평 소재 호주 전투 기념비
경기도 가평 소재 캐나다 전투 기념비
경기도 가평군 읍내리 소재 영연방참전 기념비

키니 상사 전공비


1951년 1.4후퇴 당시 1개 소대 병력의 미군도 후퇴중이었습니다. 적군의 전차가 갑자기 들이닥치자 키니 상사 및 부하 2명이 몸으로 적의 전차를 막음으로써 현장에서 사망하였다고 이로써 소대원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6.25전쟁 중 전사한 키니 상사를 기리기 위한 키니 상사 전공비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


경기도 수원시 북수원 인근에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몽클라(Ralph Monclar) 예비역 중장은 6.25전쟁이 일어나 프랑스 정부가 대대급 부대를 파견한다는 결정을 내리자 이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중령으로 계급을 낮춰 현역에 복귀를 신청하여 참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연을 아는 유엔군사령부와 미군 장병들은 그를 중령이 아닌 장군이라 불렀다 합니다. 프랑스군이 한국에 파병된 뒤 첫 숙영지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이었기에 파장동 북수원IC 인근에 프랑스군 참전기념비가 조성되었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프랑스군 대대는 미2사단 23연대에 배속되어 1951년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원주 쌍터널 부근에서 이루어진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또한 중공군의 2월 공세 때인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6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벌어진 지평리전투에서 중공군 참전 이후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후 1951년 4월 3일 춘천으로 진격하여 우두산을 확보하였습니다. 이러한 투혼과 전공을 기리고자 2010년 5월 우두산 충렬탑 인근에 불란서군 대대 전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불란서군 대대 전적비
춘천 우두산에 있는 충렬탑 (우측 기슭 하단에 불란서군 대대 전적비가 보입니다.)

우두산은 춘천 시민들의 명소이며, 1990년대 말 인기 드라마 '첫사랑'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대대는 1951년 9월 13일 개시된 단장의 능선 전투에도 참여하였습니다. 1951년 9월 26일 강원도 양구 펀치볼 단장의 능선에서 유엔군 프랑스대대 한국군중대 제1지휘관, 구필(Goupil) 대위가 전사하였는데, 그를 위한 추모비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 있습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재 프랑스 참전비

춘천에는 불란서군 대대 전적비 외에도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와 참전기념관이 있습니다. 춘천 공지천 옆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참전기념관은 에티오피아 전통가옥 양식으로 지어졌기에 독특한 외향으로 인해 특히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에티오피아는 1951년 5월 6일에 한국에 도착하였고 총 253회의 치열한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모두 승리하였다고 합니다.

춘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함께 싸운 혈맹 에티오피아를 위해 2020년 코로나19 사태 발생시 한국은 코로나 방역물품을 에티오피아에 전달하여 감사의 마음을 표하였습니다.

 

필리핀참전공원 및 참전기념비


6.25전쟁에 참전한 필리핀군은 1950년 10월 1일 미25사단에 배속되었고, 1951년 4월 연천 율동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경기도 연천에 필리핀참전공원이 있습니다.

경기도 연천 소재 필리핀참전공원

또한 경기도 고양시에 필리핀군참전기념비가 있습니다. 한국의 안전과 자유 수호를 위하여 6.25전쟁에 참전한 필리핀 지상군 1대대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기념비가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필리핀군은 총 1,496명의 병력이 전투에 참여하여 왜관, 김천, 대구, 임진강변, 철원지구 등 많은 전투를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필리핀군참전기념비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


강원도 횡성에는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가 있는데, 이는 횡성전투와 관련이 있습니다. 중공군은 1951년 2월 11일 오후 5시를 기해 횡성 서북방에서 진격로를 개척하며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전선에 투입되 진격하던 전방 부대는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았고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후방으로 진출한 중공군에 의해 전방 부대 및 후방 부대 모두 고립되었습니다. 아군은 화포와 차량 등 많은 중장비를 버리고 산악능선을 따라 횡성으로 철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미7사단 38연대에 배속된 네덜란드 대대의 활약상이 두드러졌습니다. 즉 철수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횡성교를 네덜란드군들이 1951년 2월 12일 야간까지 확보해줌으로써 분산되었던 부대들의 철수를 가능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대장인 덴 오우덴 중령을 포함해 122명이 전사하였고 3명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군 참전기념비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1951년 서울을 함락하려는 중공군의 춘계 공세 때 영연방 29여단 예하 글로스터대대는 경기도 파주 설마리 235고지에서 3일간 중공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고립된 채 전선을 사수하고 있었는데 설마리에서의 이 전투를 통해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저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글로스터 대대의 투혼 덕분에 한국군과 유엔군은 방어선을 새로이 구축하고 서울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고지는 글로스터고지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정부는 이곳에서 적군과 혈전을 벌이다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기 1957년 영국군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또한, 경기도 및 파주시는 영국의 젊은 영웅들의 희생과 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2014년 참전기념비 전방에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1951년 중공군의 춘계대공세 때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투혼으로 맞선 글로스터 대대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영국군 참전기념비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

벨기에 및 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은 1950년 7월 22일에 참전결정을 한 후 1951년 1월 31일에 부산에 도착한 후 경기도 연천 금굴산, 동두천 마차산 지구 전투를 치르면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벨기에군과 룩셈부르크군은 유엔군 방어작전 지구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국방부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군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1975년에 마차산 전투 지구 지역인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에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습니다.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참전기념비 한 켠에는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판이 있는데, 이 명판 옆에 적힌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과 함께 싸웠으나 살아 남아 이 땅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한국 전우들이 오늘 여기 모여 전사한 옛 전우들의 명복을 빈다."  - 2000년 6월 26일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 한국군 전우회


38선 돌파 기념비


1951년 5월에는 38선을 탈환하기 위한 아군과 적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한탄대교 앞에는 38선돌파기념비가 있는데 미군 1기병사단 마크가 보입니다. 기념비에는 1951년 5월 28일에 미군 1기병사단이 38선을 3번째로 돌파하였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군과 태국군도 함께 하였는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작전에 참여 중 전사한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본 돌파 기념비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38선돌파기념비

1952년 11월 10일은 태국군이 본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을 심한 추위속에서 중공군의 공격으로부터 강원도 철원 역곡천 북쪽에 있는 235m의 포크찹(Porkchop) 고지를 지켜 승리를 거둔 날입니다. 6.25전쟁 발발 후 아시아국가 중에서 가장 먼저 전투병력 파병을 결정한 나라가 태국입니다. 국방부는 1974년 10월 1일 태국군이 마지막으로 주둔했던 곳(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문암리 산 24-2)에 태국군참전기념비를 설립했습니다. 태국군참전기념비는 소총의 개머리판을 모형으로 하고 있어서 전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태국군 참전기념비

콜롬비아군 참전기념비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UN회원국 중 유일한 참전국이자 UN회원국 중 마지막으로 전투부대를 파병한 국가입니다. 1951년 한국으로 향하는 군함에 몸을 실은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약 한달 후인 6월 15일에 부산에 도착하였고 미24사단에 배속되어 금성지구전투, 김화 400고지전투, 연천 180고지전투, 연천 불모고지전투 등에 참전하였다고 합니다.

인천 경명공원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군에 헌정하는 콜롬비아군참전기념비가 1975년 9월 24일에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콜롬비아군참전기념비

휴전협정 50년 후 한국으로 돌아온 한 콜롬비아 참전용사는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믿을 수 없었고, 한국에서 흘린 피눈물과 자신들의 희생을 보상받은 것만 같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탐방했던 6.25전쟁 참전기념비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정전협정 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군의 주력 전투 부대가 주둔했던 서부지역(Western Corridorr)의 반환미군기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을 마치기에 앞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 감사를 전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인 프로젝트 솔져(PROJECT SOLDIER; Searching for Korean War Veterans)를 진행하고 있는 사진 작가인 '라미'의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년 3월부터 열린 경기도 오산시 소재 스미스 평화관 기획전 '프로젝트 솔져'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참전용사의 희생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69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책 제목의 의미는 참전용사들이 사진값을 이미 지불하였는 의미입니다. 즉, 사진촬영을 마친 참전용사가 사진값이 얼마냐고 묻자 "선생님께서는 이미 69년 전에 액자값을 지불하셨습니다"라고 답하며 무료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과 전시회를 보며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미스평화관 기획전 <프로젝트 솔져;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서>

부족하지만 저의 반환미군기지 이야기가 주한미군 및 미군기지에 대한 과도한 반감을 줄이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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