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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ome Oct 27. 2022

카페 드 마린에 대한 기억

조선소와 박물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종각역 인근 청계천 맞은편에는 대우조선해양 서울 사옥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 앞에는 돌고래 조형물이 있었고, 1층에는 카페 드 마린(CAFE DE MARINE)이라는 커피숍이 있었습니다.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 이곳에 들러 커피숍 내부에 있던 선박 모형을 신기하게 구경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고객사인 선사로부터 선박 발주를 받은 후 완성된 선박을 선사에 인도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조선업의 특성상 조선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기술력 뿐만 아니라 회사의 곳간에 있는 유보현금과 운전자본이라고 합니다. 2010년대에 국내 조선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대우조선해양은 악화된 재무구조의 개선이 필요하였고 이 과정에서 서울 사옥을 약 1,700억원에 매각함으로써 현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울 사옥은 현재 DGB금융센터로 간판을 바꾸었고 더 이상 '카페 드 마린'은 그 자리에 없습니다. 물론 서울사옥이 매각되었다고 하여 대우조선해양이 망한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비해 회사의 규모가 작아졌을 뿐입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해운업계의 공급망 차질 문제, 화물운임 상승, 노후선 비중 증가 등으로 인해 선박 발주량이 증가하면서 한국 조선업은 다시 활황을 맞고 있습니다. 이런 업황을 반영하여 2020년 이후 조선 관련주들의 주가가 급등하였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들에게는 다시금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우조선해양 뿐 아니라 선두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하여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HJ중공업(구, 한진중공업) 등 다양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필리핀 수빅 반환미군기지 터에 조선소를 건립하는 등 해외에도 뻗어 나가던 한진중공업은 적자에 허덕이다 조선소를 매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부침을 거듭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한국의 조선소들은 중국의 조선소들과 경쟁을 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선박을 건조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이유는 스페인 여행 중 방문한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 때문입니다.


흔히 스페인을 무적함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 이유는 스페인은 과거 수백년간 해상무역을 장악하였고 무엇보다도 신대륙을 발견한 해상무역의 패권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스페인의 찬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흔적이 해양도시 바르셀로나에 남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해안 인근에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기념비가 있고, 기념비 근처에는 과거 수백년 간 조선소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변화된 바로셀로나 해양박물관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콜럼버스 기념비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 내부 모습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에 방문하게 되면 일단 거대한 박물관의 스케일에 놀라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이곳이 조선소 였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더이상 선박을 건조하지 않고 박물관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실제로 스페인 조선업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 밀려 위기를 맞이하였고, 그 돌파구로 조선분야의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해상풍력발전 분야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손해사정회사에 재직했을 당시 '스페인이 해상무역 장악을 토대로 해상보험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해상보험 시장에서 스페인이 영국과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사장님으로부터 듣곤 하였습니다. 저도 당시 스페인 보험사로부터 해상보험 클레임 업무를 의뢰받아 일을 했었습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는 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의 규모에 압도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부산 앞 바다에서 암초에 좌초되어 침몰 중인 3만 톤 급 화물선에 올라 다이버들에 의해 화물을 구조하는 작업을 목도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업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갖고 있고 선박은 해상이라는 위험한 악조건 하에서 운항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력을 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박의 주요 기자재 중에는 아직도 국산화를 하지 못하고 유럽 기업들에 의존하는 부분이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 속초에 가보면 칠성조선소라는 복합상업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어선을 만들던 곳이라고 하는데 세월이 지나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이제는 조선소가 아닌 커피숍을 포함하는 상업공간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칠성조선소

한국의 대형조선소들이 바르셀로나 해양박물관처럼 변하는 것보다는 앞으로도 조선소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주요 기자재들을 국산화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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