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 8일 차
선택 장애는 왜 생겼나?
직장인 시절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가 서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색깔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었다. 누구는 빨간색, 누구는 보라색, 대화가 이어졌고 내 차례가 되자 한결같이 나를 무색이라고 표현했다. (흰색도 아닌 무색??)
사람이 무색이라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는데 좋은 말로는 본인의 의견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 어떤 무리에서든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겠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개성이 없고 본인의 의견이 없는 사람(의견은 있어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색깔이 없었던 나의 모습에 처음으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문제없이 잘 어울리기를 바랐던 나는 항상 모든 선택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더 우선하고 존중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부터 다른 사람에게 먼저 양보하고 자연스럽게 내가 선택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기회가 줄다 보니 어쩌다가 선택의 귀로에 놓이면 그 선택이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는 업무에 있어서는 물론 개인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커피 하나를 시키는 것도 남이 골라서 시켜주는 것을 먹는 것이 더 편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나는 흔히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이 선택 장애를 겪으며 남이 대신 선택해 준 음식을 랜덤으로 먹는 것이 더 편하고 재밌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뒤늦은 선택 연습의 시작
선택을 연습하게 된 것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부터이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내가 일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선택의 고민에 대해 털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가 나의 고민들에 대한 결정과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았으며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본인의 생각조차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교제를 하고는 있었지만 나 개인의 삶과 나의 선택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 대해서 철저하게 선을 긋고 침범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재미교포이다. 그래서 처음엔 '이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가? 이런 게 문화 차이인가?'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의 일을 내일처럼 여기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어가도 그런 부분에 대한 남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고 나는 그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나씩 스스로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는 연습을 통해서 나는 30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떤 모습의 사람인지 그제야 나 자신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힘
캐나다에 와서 그동안 내 남편만의 독특함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을 현지 사람들에게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핸드폰을 사러 가서 어떤 것으로 고를지 고민이 된다고 말하자 판매원은 결정한 후에 다시 오라고 한 뒤 자리를 뜬다. 화장품을 사러 가서 "요즘 어떤 게 유행인가요,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네가 바를 화장품을 대체 왜 나한테 묻는 건데?'라는 뉘앙스의 눈빛과 함께 이곳에 파는 것은 다 인기가 많아서 하나를 찍어서 말해 줄 수 없다고 하며 내가 색깔을 선택할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다.
아이 시절 키즈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사소한 일 하나하나를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문화에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에게 내가 사려는 물건에 대한 의견과 결정을 묻는 것이 당연히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모든 제품의 구매 전에는 네이버 검색이 필수인 나였다. 네이버에 "xxx 립스틱 추천"이라고 검색하면 어마어마한 정보와 함께 추천 순위가 나온다. 나의 얼굴색이나 취향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동안 남들이 추천하는 제품들을 구매하며 남들의 취향으로, 남들의 의견을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하며 만족하며 살아온 나는 그 순간 이제부터라도 내가 주최가 되고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결정 장애 극복 방법
나는 커피 하나 시키는 것도, 햄버거 하나 시키는 것도 어떤 맛을 고를지 고민이 되어서 저 뒤에서 서서 메뉴판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던 사람이다. 이 세상의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선택에 우유부단함과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선택 장애 극복 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
1. 작은 선택부터 연습하기
인생 대부분의 일들을 단 몇 초 만에 선택해 버리는 남편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선택을 잘해?"라고 묻자 10대 때부터 모든 결정을 본인이 다 해야 했고 그 결과 또한 본인이 감당하는 것을 인생에서 수도 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즉 계속된 선택의 연습이 지금의 프로결정러 남편을 만든 것이다.
선택의 연속선인 우리의 인생에서 작은 선택부터 연습하지 않으면 큰 선택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선택하며 사는 삶이 몸에 배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작은 선택부터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메뉴 선택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팁은 메뉴를 고를 때 금액을 보지 않는 것이다. 메뉴판의 금액 차이는 고작 몇 천 원 차이인데 금액을 보게 되면 자꾸 메뉴와 금액이 혼합되어 결정을 흐리게 되는 것 같다. 메뉴 이름이나 그림만 보고 그중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선택해 본다.
2. 나의 선택 되돌아보지 않기
"결혼 생활의 만족도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라는 유명한 결혼 관련 명언이 있다. 이 명언은 결혼뿐만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결정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결정을 한 상태라면 더 이상 되돌아보지 않고 내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사람이 선택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잘못된 선택들로 얻게 되는 수많은 실패와 경험들은 다음의 선택에 실제로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선택에 대해서 이것이 과연 잘하는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멈춰 서 있기보다는 연속해서 선택들을 하며 전진해 가면서 자신의 선택에 따른 다양한 결과를 경험해 보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3. 타인의 생각에 의지하지 않기
내가 선택 장애를 개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이라는 가장 가까운 내 옆의 사람이 나의 선택에 대해 온전히 나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었던 이유가 크다. 캐나다에 있다 보니 한국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묻는 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결정하는 습관이 길러지게 되었다.
지난날 나의 삶을 돌아보면 고등학교 선택, 대학교 입학, 전공, 회사, 집, 뭐 하나 내가 선택한 것이 없었던 삶으로 느껴진다. 따뜻한 온실 속에서 지금껏 인생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그로 인하여 결국 나는 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독립심의 부족을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
젊은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서 진로와 고민 상담을 해 오는 청년들이 종종 있다. 많은 질문들이 내가 그 시절 했던 고민들 (진로, 취업, 결혼 등)이다. "나를 더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야 결혼이 행복하다고 하던데,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결혼이 고민이에요"라고 묻는다. 일반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대다수가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바로 각 개인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하는 것, 다수의 생각을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도박보다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선택에 있어서 주변에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본인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결정에 대해 남의 의견을 참조는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내 삶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한 모든 결정은 남이 아닌 나 자신 스스로가 하는 것이 옳다.
내가 생각한 기초적인 선택 장애 극복 법은 크게 위의 세 가지로 생각이 된다. 물론 이렇게 극복 방법을 나열했지만, 내가 현재 결정 장애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최소한 내가 먹는 음식과 나 자신에 대한 결정은 타인의 도움 없이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정도로 발전했다.
색깔로 말하자면 원래는 무색이었지만 지금은 연한 에메랄드 색 파스텔 톤의 색이라고나 할까? 나는 무색이었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좋다.
지금부터라도 작은 선택과 결정을 스스로 경험해 봄으로써 결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또 본인이 한 선택에 대해서 잘 한 선택이든 잘못 한 선택이든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든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결정 장애와 선택 장애를 극복하고 넘어서 어느 순간 프로결정러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선택!
지금부터라도 당장 그 연습을 시작해 보기 바란다.
본인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모든이들의 삶을 응원하며,
@캐나다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