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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Oct 20. 2024

동성애가 크리스천에게 주는 도전

하나님 나라

한 25년쯤 전, 제가 대학교 2, 3학년 무렵일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과방에 앉아있는데 선배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물함을 열고 책을 몇 권 꺼낸 뒤 다시 과방을 나갔습니다.


그녀가 머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제가 입학하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기에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옆에 앉은 과방 죽돌이 선배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럴 것도 없이 선배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너 쟤 누군지 알아?"

"아니요. 처음 보는데요. 누구예요?"

"OO학번 OOO야."


그리고 선배는 누가 들을새라 조심하는 듯 살짝 목소리를 낮춰 다시 말했습니다.

"쟤 레인보우야."

"레인보우가 뭐예요?"

"아, 너 몰라? 학관에 있잖아. 동성애 동아리."

그 말을 하는 선배의 표정은 '우웩, 역겨워'라는 느낌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제 마음속에 드는 감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아는 동성애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심각한 어조로 '평범한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일들도 있다'라고 보도하는 종류의, 음지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과 내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결성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자타공인 페미니스트였습니다. 매주 모이던 세미나에서는 주로 여성이 겪는 폭력과 불평등을 주제로 토론했지만 때때로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도 다루곤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여성의 문제와 성소수자의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때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마치 '나는 덜 진보적인, 덜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라고 시인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게다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해서 동성애를 하는 사람에게 즉물적인 경멸의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 것은 아니기에, 저는 가까스로 표정관리에 성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약간 궁금했습니다. 숨어서 몰래 해도 되는데, 굳이 학교에서, 동성애 동아리에 가입까지 해가며 남들 눈에 띄게 활동하는 이유가 말입니다. 페미니스트/성소수자로서 받는 핍박, 그럼에도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를 바꾸고 싶은 열망은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며 약간의 호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애초에 그녀가 동성애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인지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후자라면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말 용기 있고 이타적인 행동이지요. 어쨌건 당시의 사회는 둘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동성애를 하는 사람과 동일시되어 온갖 오해와 모욕을 받던 시대였습니다.   


그 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저는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로서 가졌던 이상과 성경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마다 갈등하면서, 성경을 제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가 하는 갈지자 신앙의 행보를 보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때에 맞는 은혜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때에도 동성애는 주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저는 동성애를 하고 있지도 않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저와는 상관없는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동성애를 문제 삼고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한국 교회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만한 성소수자들을 제물 삼을 게 아니라 교회 안에 팽배한 물질 숭배와 탐욕의 죄부터 회개하그래. 특히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의 재정적, 성적 타락과 교회의 세습 문제야말로 한국 교회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때도 동성애를 하는 사람,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였기에 아마 이 말이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한 1, 2년 전쯤에 저는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중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동성애는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여행 갔다가 동성 커플을 봤는데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더라구요. 우리도 이제 깨어서 받아들일 때가 되긴 했죠."


제가 그분에 대해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간 오며 가며 본 것으로는 특별히 어떤 사회적 문제, 그중에서도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회사와 집을 오가고 아이를 키우는, 아이 대학과 재테크가 주된 관심사인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을 들으며 언제 사회가 이렇게 바뀌었나 싶어 깜짝 놀랐습니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소수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니라 이제는 다수, 아니 대세가 된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이 오해와 모욕을 받던 상황에서, 이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은근한 무시와 경멸(꼴통 보수, 꼴통 크리스천)을 받는 입장으로 역전된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성 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 주어진 성과 되고 싶은 성이 다른, 아니면 주어진 성에는 만족하지만 필연적으로 동성에게 끌리는, 그래서 살아오는 내내 고통을 겪는 사람의 마음은 제가 알 수 없기에, 그분들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진짜 고통임을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제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도 그랬을 것이니까요. 약 25년 전의 그 대학 선배 또는 그 선배가 속했던 동아리 중 누군가는 그 고통에 공감하면서 성소수자를 위해 함께 싸웠을 것이고,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지금도 역시 동성애를 지지하겠지요. 게다가 동성애를 한다는 이유로 차별(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등) 받아서는 안 되는데, 과거의 우리 사회는 여러 모로 폭력적이었죠.


그리고 동성애 문제에 크게 관심 없는 사람도,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동성애를 지지하기 쉽습니다. 일단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해서 내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게다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진보적인, 깨어 있는, 의식 있는' 사람의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쉽고요. 한 마디로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크리스천이라면, 그리고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사람이라면 동성애를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 하나님께서 분명히 성경에 '동성애는 죄'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 18:22)"



하나님께서 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셨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아마도 기본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동성애가 죄이더라도, 태어나면서부터 동성에 끌리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이를 극복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저지르는 죄와, 그저 성적 쾌락을 좇아서 동성애를 하는 죄는 그 무게가 다를 것입니다. 마치 같은 도둑질이라 하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빵 한 조각을 훔치는 도둑질, 극복하기 어려운 도벽에 사로잡혀 저지르는 도둑질, 단순히 물질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저지르는 도둑질의 죄질이 다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동성애와 관련된 죄 중에서 실제로 동성애를 하는 죄는 어쩌면 핵심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C. S. 루이스는 명저 '순전한 기독교'에서 죄를 동물적인 죄와 악마적인 죄로 구분하면서 하나님은 후자의 죄를 훨씬 더 미워하신다고 했는데, 동성애를 '하는' 죄는 대체로 성적 타락,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죄에 해당합니다(다만 동성애에 굳이 끌리지도 않으면서, '나는 동성애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저지르는 죄는 조금 다르겠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죄는 '크리스천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세상과 우리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이 성경에서 죄라고 규정하신 것을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선과 악을 규정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원죄와 같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 피조물이 조물주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원죄, 크리스천들은 동성애를 지지함으로써 그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의를 내세우는, 악마적인 죄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지지하게 되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혼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는 크리스천들을 '편협한 개독인'이라고 폄하하게 되겠지요. 만약에 A라는 사람에게 B라는 크리스천이 '동성애가 죄'라고 얘기한다면 그 사람은 'C는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던데? B가 너무 편협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C는 자기도 모르게 B를 공격하고 A를 실족시키게 되는데, 교회 내부를 분열시키고 남을 실족시키는 죄는 동성애 그 자체보다도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누가복음 17:1)



동성애를 지지하는 크리스천 중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1서 4:16)'라는 말씀을 근거로 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도 사랑하신다고요.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죄인 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대표적인 죄인인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에만 심취하다가 '공의의 하나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지만, 우리는 죄를 지으면 그 열매를 먹습니다(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이유는 그 죄가 하나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인생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을 때, 하나님은 회개한 다윗을 용서하셨지만 그 죄의 대가로 다윗은 자녀를 잃어야 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세리와 창기들의 친구셨다고 해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고 해서, 그들이 계속해서 남의 재물을 갈취하고 성매매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 해서,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신 말씀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크리스천들은 왜 굳이, 자신들에게 이득 될 것이 없는 동성애를 지지하면서 이런 죄를 저지르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이 죄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글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는 것, 그것도 훨씬 무거운 죄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을 거라 봅니다. 그저 '내가 동성애를 하지만 않으면 된다'라고,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이다'라고 가볍게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경 말씀보다 자신의 신념, 사상을 앞세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주일예배를 지키고, 헌금을 내고, 봉사로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보적이고 나이스한 크리스천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 그것과 싸우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유혹,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서고 싶은 유혹 말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10)



사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적으로 위배되는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내놓고 동성애를 지지하기보다는 이를 우회하는 전략에 잘 휩쓸립니다. 바로 '교회와 목회자들은 소수의 동성애 문제와 싸우기 이전에, 교회 내 물질 숭배와 탐욕의 문제부터 회개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의 재정적, 성적 타락과 교회의 세습 문제를 꼬집어 지적하면, 한국 교회의 문제를 개탄하는 크리스천들, 그리고 비크리스천들이 모두 열광할 만한 메시지가 됩니다. 언뜻 보면 틀린 말 하나 없어 보이기에, 이 전략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속아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략을 쓰는 주체가 사단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일단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교회가 하는 사역, 그 목회자들이 전하는 모든 메시지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의 타락은 오늘날에만 새삼스럽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쉽게 끊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그 모든 죄를 회개하기 전까지 다른 문제들에 대해 입 다물라'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교회의 손발을 묶어두려는 사단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기기에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의 죄가 너무 크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다만 심판의 주체는 저도, 당신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이 끝까지 호의호식하다가 죽을 것 같아서 걱정되시나요? 그것은 영생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그 이후 어떻게 심판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맡기세요.


우리에게 지금 도전이 되는 것은 남의 죄가 제대로 심판받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죄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 글을 다 읽고도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모르실 분이 많을 것으로 봅니다. 그럴 땐 그저 침묵하면서 기도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적어도 교회 내부를 분열시키고 남을 실족하게 하는 죄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의 흐름이 너무 거세서,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제가 틀렸기를 바라는 순간도 많습니다. 제가 틀렸다는 명백한 근거가 있으면 저는 편안하게 입장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하나님께서 성경을 새로 쓰셨다는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씁니다.



* 고성준 목사님 설교에 나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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