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죄, 한 사람의 의

하나님 나라

by 밍이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로마서 5:19)


저는 불신자일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기까지 '원죄'의 개념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시고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선택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깨달음까지는 간신히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왜 아담 한 사람의 행위로 다른 사람들까지 원죄에 빠졌는가? 하나님은 왜 한 사람 한 사람을 각자 에덴동산으로 불러서 하나님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으셨던 것인가?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공평한 일인가?


아직까지 분명한 이유는 모릅니다만, 제가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연합한 하나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신랑 되신다'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그럼 예수님은 신부가 80억 명인 거예요?"라고 물었을 때 들었던 대답이 잊히지 않습니다. 예수의 신부는 교회라는 단 한 존재이고, 우리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세포들 중 하나라는 말씀이셨지요. 제가 비록 죄인 된 자이나 남과 구별되는 인격을 갖춘 독립적 존재라고 믿고 있다가 그조차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서로 별개의 인격이지만 동시에 하나인 점 또한 하나님의 속성과 닮아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타인과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죄성,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는 자기중심성 때문이니까요.


그러니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인류 전체를 타락에 빠트린 것이 꼭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세포 하나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곧 그 몸 전체가 병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사람의 불순종이 모두를 죄인 만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곧 예수라는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두 의인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각자가 에덴동산에 초청받아 동일한 시험을 겪으면 그중 시험을 통과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단의 첫 유혹에는 그럭저럭 버텼을지라도, 삶이 계속되고 시험도 계속되면 언젠가 한 번은 넘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모든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공평한, 아니 은혜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이 쉬운 죄 사함의 길을 받아들이기를, 그래서 예수의 신부 된 교회가 80억 명으로 꽉 차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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