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이라는 은사

하나님 나라

by 밍이

저는 처음부터 초자연적인 기적과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내 생애 최고의 기적), 소위 성령사역이라 하는 일들에 열려 있었습니다. 방언도 비교적 일찍 받았지요. 섬기던 교회 지체들도 다들 방언을 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미국에 있으면서 조심스럽게 ‘방언은 성경적이지 않으니 하면 안 된다’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사실 많이 당황스럽고 불쾌했습니다. 약 20년간의 신앙생활 동안 방언기도를 하면서 뜨겁게 하나님을 만났던 수많은 경험들을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면을 한 사람은 저의 절친이었고, 저는 그가 매우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무시해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시 멘토로 삼고 있던, ‘이 분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분명한 영적 거장들이다’라고 생각되는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방언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서로 의견이 갈리시더군요. 어떤 분은 방언을 장려하셨고, 어떤 분은 지양하셨습니다(다만 이 분도 방언 자체를 비성경적이라고 단정하시지는 않았고, 다만 방언을 할 필요성 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추구할 경우 빠지게 되는 신비주의 등의 위험에 관하여 경고하시는 듯했습니다).


혼란에 빠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이 분들의 의견이 갈리는 겁니까? 왜 이런 혼란을 허락하시는 겁니까? 저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너는 내게 직접 물어라.

아무리 신실한 주의 종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옳지도 않다. 인간은 순수하게 주의 뜻을 전하려 노력해도 자기 생각을 완벽하게 배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그들에게서 가르침을 받되,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하고 의문 나는 점들은 나와의 일대일 교제를 통해 그 가르침을 확증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방언을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너는 너의 신앙 스타일과 하나님 자신, 그 둘 중에 무엇이 중요하냐?


음…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때 절친이 제게 방언하지 말라고 권면했을 때 들었던 불쾌한 감정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그 말에 왜 이렇게까지 동요했을까. 그가 나의 신앙 전체를 부정한 것도 아니고, 단지 기도방식에 대해 지적한 것이었을 뿐인데.


그 무렵 제가 있던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구하고 응답받은 뒤 순종한 경험을 나누면 ‘그 응답이 정말 하나님 뜻인 줄 어떻게 아느냐'고 다소 미심쩍어하고, 더 나아가 '누구나 하나님 음성 듣기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니 사람들 현혹시키지 말라)'는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역시 당황스럽고 불쾌하던 참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신앙 스타일, 즉 방언으로 뜨겁게 통성기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추구하는 방식을 마치 신앙의 본질처럼 생각했던 것 아닐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그게 전부인데 나는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그것을 잃으면 신앙 전체를 잃어버린다고 두려워하고, 은연중에 남들도 나와 같은 스타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제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버리고, 마치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방언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일일이 물으면서 음성을 구하지도 않고, 그저 매일 시간을 정해 성경을 읽고, 남들처럼 조용히 묵상하거나 한국말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신앙생활 자체는 유지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니 당연한 일이었죠. 그리고 저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과연 개인적인 신앙생활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조금씩 보이더군요.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데도,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뜨거운 감정을 느껴야 만족스럽게 느껴진다거나,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너무 구한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마음대로 넘겨짚는 경우가 있다거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들도 보였습니다. 방언기도하면서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그저 입술을 움직여서 소리가 나오는 것에만 심취하거나, 방언받은 것을 자신의 신앙의 보증수표로 생각하는 것들.


게다가 저는 예전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 들은 간증을 자주 해왔는데, 제 신앙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저에게 불필요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도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 들었다'는 간증은 꼭 필요할 때에만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심할 점을 깨닫고 나니, 저에게는 방언기도와 주의 음성 구하는 일이 주는 유익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저는 조용히 묵상기도만 하면 딴생각이 자꾸 들어서 집중이 어려웠고,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는 편이 훨씬 쉬웠습니다.


그리고 제 기도의 상당 부분은 그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거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묻고 대화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을 한국말로 기도하는 것은 어색했습니다. 게다가 마음속의 울분을 터트릴 때, 너무 마음이 힘들고 괴로워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도 방언으로 제 마음을 쏟아놓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무를 때에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삼아, 기도할 때 정제된 언어로 필요한 말만 딱 하고 끝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만, 저는 이 점에 있어 생각이 크게 다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찾아와서 제 할 말만 마치고 가버리는 사람과 교제가 되겠습니까? 저는 일상에서 가능한 자주, 긴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계속 구해야 하지요. 저는 다른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저처럼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구하는 것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종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됩니다.


방언이 저에게 주는 유익을 깨닫고 나자 성경에서 방언에 대한 근거가 있는지 확실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흔히 방언의 근거로 드는 사도행전 2장 4절은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소리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를 뜻합니다. 그래서 방언에 회의적인 분들은 성경에서 언급한 다른 방언들도 외국어에 한정해서 보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래 구절이 외국어 외의 방언들도 인정하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한 점에서요 (다만, 저는 신학적 지식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리고 방언에 관하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이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마다 어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 방언으로 하나님 앞에서 제 마음을 토로하면 성경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제 기도를 도우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로마서 8장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방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방언에 대해 언급한 구절은 몇 개 안 되더군요. 방언이 꼭 필요하거나, 반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수차례 여기저기서 언급하셨겠지요.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목사님들의 예처럼, 신실한 주의 종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일찍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진리는 타협하면 안 되지만) 비진리에 관한 문제는 서로 양보하고 맞춰주라 하셨습니다.


로마서 14장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그러니 우리는 각자 믿음대로 하면 되고, 방언 여부에 관하여 남의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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