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
https://brunch.co.kr/@mychoi103/42
스물여섯이 되던 해, 대학원을 졸업한 나는 그 길로 짐을 싸들고 고시촌에 들어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공자들도 턱턱 떨어지는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하물며 나는 스물여섯 전까지는 그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같이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릴 만큼 기초지식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해보고 나서 이 길이 맞는 길이라는 것을 곧 확신했다.
천직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합격할 자신은 없었다. 두려웠던 나는 뭔가 의지할 것이 필요했다. 21세기를 살면서 달밤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 수도 없고 어쩐다... 갑자기 먼 옛날 초등학교 때 교회 다녔던 생각이 났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안티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왔는데. 늘 교회가 과거에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고 지금은 집단 이기주의의 산실이라고 비난하곤 했는데.
내가 아는 신이라고는 하나님밖에 없던 나는 겸손히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한 장씩 읽고 기도를 했고, 주일마다 교회를 나갔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자비로운 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합격시켜 주시기를 바랐다. 그 시절 나는 신앙이 없었다.
생각지 못하게 공부를 시작한 첫 해에 1차 시험에 합격했다. 나와 스터디를 같이 한 근 스무 명의 전공자들이 모두 탈락했음에도. 그렇게 매일같이 기도했건만 나는 하나님이 붙여주셨다는 생각을 못하고, 엉뚱하게도 먼 옛날 내가 영재였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내가 머리가 좋긴 좋나 봐. ㅎㅎ 그리고는 2차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2차 시험을 앞둔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던 중 화장실에 갔다. 볼 일을 마치고 나와서 거울 앞에 서서 살짝 스트레칭을 했는데 갑자기 허리에서 뚝! 하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는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간신히 내 자리로 돌아갔지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시험이 코 앞인데, 일분일초가 아까운데, 초조한 마음으로 정형외과에 갔지만 별 수가 없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나는 그 길로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초라한 자취방에 누워 끝없이 눈물만 흘렀다. 내쉬는 한숨마다 기도로 변해 '하나님, 제발 시험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잖아요. 합격은 못 해도 시험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그 와중에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동네 골목길에서 리어카에 매달린 목말을 타던 어린 시절부터의 일생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죽는 건가? 허리 아파서 죽었다는 사람은 못 봤는데. 그래,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마가 구해 온 디스크 환자용 복대를 하고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시험장에 들어갔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데 무슨 시험이야. 어찌 앉아있는다 해도 시험 보기 전 일주일 동안 책 한 자도 못 봤는데. 1년이 넘는 2차 시험공부는 사실 마지막 일주일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 책 못 보고 시험 붙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시험장에 가는 나를 바래다주기 위해 자취방 앞에 찾아온 부모님을 보고는 안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2차 시험은 4일 동안 7과목을 본다. 첫날 첫 과목 시험 벨이 울리기 전에 나는 기력 없이 대충 책을 넘겨보았다. 그리고 벨이 울리고 시험지를 받아 들었는데 이런! 기적이 벌어졌다. 방금 대충 훑었던 내용이 시험에 그대로 나온 것이었다. 과목당 시험문제는 2~3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내용은 중요도 하급이라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위 말해 '불의타'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소홀히 했을 그것을 나는 쓸 수 있다. 이것만 쓰면 이 과목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정신없이 답안지를 적어내려 갔다. 수술용 복대를 하고 있어 슬쩍 앉아 있을 수는 있었지만 중간에 역시 허리가 아파오면 엉덩이를 허공 위에 1cm 정도 떼고(더 높이 들면 부정행위로 간주될 것 같아) 기마자세를 하고 시험을 보았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의 시험을 마치고 벨이 울린 다음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다행히 시험장 의자가 누울 수 있는 장의자여서 살았다.
점심을 먹고 두 번째 과목 시험을 치르기 전이었다. 이미 첫 교시의 흥분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거 하나 잘 봤다고 합격하겠어? 또 대충 책을 한 번 넘긴 다음 시험을 치렀는데 헉! 또 대충 넘겨본 곳에서 문제가 나온 것이었다. 그것도 불의타였다. 두 번 연속으로? 이런 우연이 가능해? 의문이 드는 순간, 무엇인가 강력한 영적 존재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영아,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 시험을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 하나님 맞아? 그렇게 합격시켜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했건만 나는 정작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있었구나. 내 앞에 나타난 강력한 임재는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통상의 의미와는 다르게) 장님이 된 심정이었다. 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가 들리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분명한 실제. 이런 분명한 실제 앞에서 누가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끝없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가 이 상황을 주관하고 있다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속에 평강이 흘러넘쳤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 평강이 온다는 것이 기독교의 주요한 교리임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마음에 가득 찬 평강으로 나는 4일 동안 7과목의 시험을 무사히 마쳤고, 마지막 날 시험장에서 나올 때에는 합격을 확신한 채 교회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합격했다.
title photo by casey-horn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