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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07. 2021

전공 두 번 바꾸고 행복합니다

내 인생 두 번째 성취

대학교 때 전공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닌, 성적 맞춰 대충 선택한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전공이 없었다. 나는 대체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보다. 전공 공부는 내게 '아무리 애를 써도 친해지지 않는 친구' 같았다.


내가 늘 꿈꾸던 공익적인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좀 달라질까 싶어 전공을 약간 비틀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대학원 때의 전공은 최악이었다. 학부 때 전공이 '애매하지만 잘 맞지 않는 느낌'이라면 대학원 때 전공은 '진짜 싫어!' 수준이었다. 이 일을 평생 하고 사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밤마다 가위에 눌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대학원 2학기 때, 나에게 의문을 던졌다.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서점에 가서 '유망 직업 100선' 같은 제목의 책을 사 와서 죽 읽었다.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항목들을 지워나갔고, 남은 항목들에 관해서 이 직업의 장점과 단점, 내게 맞을 것 같은 이유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이유 등을 표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서 해당 직업을 가진 선배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직업의 실체가 어떤지 확인했고, 관련된 전공과목을 청강했다. 오랜 시간 공들인 작업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신경 쓰이는 직업이 하나 있었다. 티브이에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이상하게 가슴 한 켠이 욱신거리면서 채널을 돌리고 싶어 졌다. 나중에 그게 '원하지만 가지지 못할 것 같은 대상을 보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유망 직업 100선으로 국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을 탐구하면서도 일부러 그것은 제쳐놓았다. 내 현재 전공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데다,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자격증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공자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직업을 추리고 또 추려서 몇 개를 골랐는데도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마치 버터를 눈 앞에 두고 마가린을 먹는 기분이었다.


photo by doran-erickson on unsplash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그것을 대면하기로 했다. '원한다고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야. 스스로 원하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어.'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그 직업을 얻기 위한 자격증 시험공부반에 가서 수업을 청강했고, 이것이 내 운명임을 확신했다. 오랫동안 꿈꿔왔지만 만나지 못했던 완벽한 연인이 여기 있었다. 다른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하고 벌써 26세가 되어 있었다. 대학교와 대학원도 힘들게 스스로 번 돈으로 마쳤고, 그것도 나름대로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리고 불확실한 길을 가려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중학교 때 보았던 신문광고가 하나 떠올랐다. 어떤 유명한 무용가가 26세에 무용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26세에 무용을 시작할 수 있다면, 내가 26세에 다른 공부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결심했다, 도전하기로. 그 결과 지금 나는 내가 꿈꾸던 일을 하고 있다(알고 보니 그 무용가는 26세에 본격적 활동을 한 것이었을 뿐 배우기는 어릴 때 배웠단다. 과대광고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


나에게 있어 성취는 어려운 시험을 합격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아간 것,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노력, 그것을 위해 6년 동안 힘들게 이루어 온 모든 것을 버린 과감함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이때의 밍이에게 가장 고맙다.



* '내 인생의 성취와 나의 강점'이라는 주제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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