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행자들이 여행의 필수품이라며 준비하는 라면, 햇반, 고추장 따위의 한국 음식들을 나는 하나도 챙기지 않고 떠났었다. 2012년의 여행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면스프와 고추장을 싸들고 떠났지만 단 한번도 먹지 않고 그대로 버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고추장은 현지 음식의 맛을 더욱 이상한 맛으로 만들었고, 물을 끓여야 할 환경은 낯설기 그지 없었다. 이번 여행도 한국 음식 없이 다니고 있었다. 힘들도록 현지 음식이 안 맞으면 한인식당을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이런 여행에 변화가 생긴 것은 콜롬비아에서부터, 요리를 잘 하는 동행이 생기면서부터였다. T는 군대에서 취사병을 했었고 이후에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친구다. 그는 다른 일행들과의 여행에서도 요리를 하곤 했고 나와 만났을 때는 조금의 고추장만 남은 상황이었다. 조금의 고추장으로 국을 끓여 먹고, 제육볶음을 했다. 그것이 떨어졌을 땐 간장을 사서 불고기도 하고, 그것마저 떨어졌을 땐 있는 소금만으로 계란국을 끓이기도 했다. 메뉴는 다른 국, 반찬과 더불어 맨밥일 때도 있었지만, 볶음밤이 되기도 했고, 파스타가 되기도 했다. T와 동행했던 한 달 동안 오늘 저녁엔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라는 고민이 상당히 줄었으며 배부르게 먹고 다니다 보니 살이 오르는 느낌까지 있었다.
그런 여행에도 마침표를 찍을 날이 왔다. 리마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앞으로의 식사를 걱정해야 한다. T가 하는 것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 자취 10년차. 맛은 없더라도 먹을만한 정도의 음식은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마침 리마에는 한인마트가 있어 재료를 준비하기에 딱인 곳이었다. 그래서 구입하게 된 것이 쌀, 된장, 고추장, 참기름, 식용유, 라면이다. 소소한 재료들은 그때그때 마련하면 될 일이었다.
밥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요리한 것은 된장국이다. 된장 풀고 감자나 호박, 양파를 썰어놓고 끓이기만 하면 됐다. 된장국의 맛은 된장이 좌우하는 것인지 현지에서 구입한 된장이 썩 맛있지 않아 된장국 역시 맛있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그 외에도 볶음밥이 주 메뉴였으며 제육볶음을 해 먹기도 했다. (한번은 제육을 소고기로 했던 적도 있다.)
사실 요리를 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은 한 끼의 해결이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겨우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수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감 있게 내가 요리할 테니 같이 만들어 먹자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때 겨우 한끼씩 해결하는 것이 대부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일단 이동이 어려워졌다. 하필이면 고추장은 유리병에 담겨 있다.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라 짐을 최소한으로, 최대한 가볍게 하는 것이 좋지만 이 두 가지 조건에 정면으로 위배됐다. 게다가 깨지기 쉽고, 흘리기 쉬운 것들을 옮기느라 가방을 하나 더 챙겨야만 했다. 혼자 먹다 보니 그 양이 줄어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또한 당연했다. 오랫동안 들고 다녔다는 말이다.
다음은 안 나간다는 것이다. 예전의 여행에선 배가 고프면 살기 위해서라도 나갔으며, 나가면 식당이든 노점이든 먹을 것을 찾아 헤맸으며 헤매는 와중에 그곳이 어디인지를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나가지 않고도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게 되니 점점 더 안으로 곪아갔다.
버릴 수 없는 미련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양념들. 무겁고 귀찮고 여행을 방해하는 것 같은 양념들을 끝끝내 들고 다녔던 것은 그래도 언젠가 ‘하필이면 이곳에서 내가 이것들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이런 소망은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에서 겨우 해소할 수 있었다. 바비큐를 하고 남은 고기를 넣어 만든 된장국과 삼겹살에 곁들이게 만든 쌈장. 그 동안의 밍밍했던 된장국에 고기가 들어가니 확실히 맛이 달라졌고, 고추장과 된장, 참기름, 마늘을 섞어 만든 쌈장에 연신 최고라고 외쳐주는 S형의 감탄에 그 동안 푸드백이라며 가방 하나를 더 들고 다니던 고생이 만회가 되는 듯 했다.
이후로는 다시 재료를 사거나 요리를 하지 않았다. 사는 것도 마땅치 않았거니와 요리를 한다는 자체가 귀찮았다. 무엇보다 요리를 하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내가 하는 요리가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맺는 매개체가 되기를 바랐었지만, 그 역할을 수행한 적은 없다. 그럴수 있을 만큼의 정성과 노력을 요리에 쏟지 못한채 그냥 갖다 놓기만 하면 되는 요술램프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요리는 나만의 만족스러운 식단을 위해서도, 타인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도 충분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나의 요리는 중단됐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다시 요리를 하고 그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것으로 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 연습과 반복을 통해 맛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나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