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패키지'라는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기고 하고, 울기도 하면서 시원한 감정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본 순간 내 작은 원룸이 보였다. 먹고, 자고, 놀고, 가볍게 맨손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드라마와 영화도 보는 모든 것을 하는 공간이다. 모든 것을 하는 만큼 각 활동에 대한 영역의 구분도 없고 그만큼 정리하기도 힘든 공간, 그래서 쉬이 어질러지는 곳이다. 나를 표현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원룸이라는 곳을 탈피하고 싶어졌다.
스물 아홉. 가족 또는 회사 동료와 함께 나누어쓰던 공간에서 벗어나 처음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넉넉치 않은 형편에 넓은 곳은 무리였고 작은 원룸 하나를 마련해 들어갔다. 다행히 지하는 아니었지만 겨울이 추운 곳이었다. 베란다를 개조해 만든 화장실엔 추운 바람이 들어오고 전기 온수기는 사용 한 시간 전에 미리 데워야 했으며 그나마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찬물을 뱉어냈다. 가스 보일러가 아닌 전기판넬 난방 방식은 따뜻해지기는 금방 따뜻해졌으나 온도를 높일 경우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버리는, 그리하여 그 따뜻함을 누릴 수 없는 난방 방식이었다. 빨래 건조기를 펴면 움직일 공간이 없는 좁고 불편한 점이 많은 곳이었지만 참고 살만 했다.
아직 젊기에 그런 불편들은 감내해볼만 하다 생각했다. 처음 맞는 완벽한 자유가 주는 편안함도 있었다. 돈 쓸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움직이지 않는 주거공간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묶어 두는 것이 비경제적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첫 원룸의 경험을 바탕으로 두번째부터는 사는 것에 불편함이 없는 원룸을 구했다. 주거비에 투자하는 대신 다른 곳에 돈을 쓰면서 나름 괜찮은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덧 서른 다섯. 드넓은 프랑스 외곽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다 뒤돌아 본 내 원룸이 터무니 없이 작아보였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주거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잠을 자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구분되었으면 좋겠고, 주방도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어느날 가만히 내다볼 창문이 있었으면 좋겠다. 삼심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더이상 원룸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룸에 어울리는 나이란 게 있을리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다만 원룸을 용인해주는 인식의 허들은 있지 않을까. 애초에 그런 허들 따위 버려버렸지만 의식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쩔수 없나보다.
무엇보다, 내 공간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어졌다. 누구 한 명만 오더라도 앉을 공간이 없어 침대를 의자처럼, 쇼파처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의 공간은 남겨두고 적당한 공간을 타인에게 열어줄 수 있는, 그렇지만 결국엔 나의 공간인 그런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맞다. 결국 외로움이 문제다. 타인의 방문을 허용치 않는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애써 무시하고 있는 외로움이란 녀석이 불쑥 불쑥 나타난다. 맞아줄 사람 아무도 없는 외로운 공간은 찾아줄 사람조차 없다. 내가 머무는 이 공간에도 '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