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들면 글이 잘 써져

by 상현

5월 1일. 5월의 첫날.

날이 풀려서 좋아. 술 마시고 돌아다니다 아무 데나 드러누워도 얼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언가 해보겠다고 결정한 투자가 잔뜩 싸질러 놓은 똥을 백분의 일만큼 치우다가 일하러 갔어. 초미세먼지 나쁨의 날씨에 밖에서 똥을 치워서 그런지 머리가 아팠지. 주차장에서 시트를 있는대로 뒤로 밀쳐내고 잠을 잤어. 아니. 자다 깨다 했어. 그래도 머리가 아프더라.


근로자의 날에도 출근해서 일하는데 오늘따라 밥도 챙겨 먹지 못했어. 적극적으로 먹으려 했으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냥 더 비참해지기로 했어. 퇴근하면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 소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퇴근하는 길은 왜인지 화가 많이 났어. 옆 차선은 쌩쌩 가는데 내 앞에 가는 차는 기어가고 있더라. 그 차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왜 택시를 교차로에서 잡는지. 왜 택시는 그 손님들을 교차로에서 태워야 하는지. 우회전을 앞두고 비상등을 켜며 손님을 태우고, 그 손님은 밍기적밍기적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욕이 한바가지 나왔어. 원래 운전하며 욕을 하진 않는데. 일부러라도 화를 내고 싶었나 봐.


집 앞에 식당이 많진 않아. 그중에 하나 찍어서 순댓국에 소주 한잔 하고 싶었는데 문을 닫았어. 술 한잔도 나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못 마시나? 울컥하더라. 돌다 돌다 돌다 다른 순댓국 집에서 순댓국 하나 시키고 소주도 한 병 시켰어.


두 달 만에 술을 마시는데 혼자 마셨어. 밖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건 3년 전쯤 혼자 여행 가서 분위기를 즐기고자 마신 이후 처음이야. 그냥 일상 속에서 혼자 술을 사 마시게 되는 건 아마 내 인생에 처음인 것 같아. 나는 술을 그리 즐기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잘 마시지도 못하거든. 결국 얼굴이 벌게진 걸 느끼면서 한 병을 채 마시지도 못한 채 가게에서 나왔어.


12시가 가까워져 가는데 집에 들어가긴 싫더라. 공원이랍시고 있는 곳에 갔어. 조금 걷다가 벤치에 누웠어. 그나마 이젠 춥지 않아서. 얼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 라디오를 틀어 놓고, 흐려서 별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 했지만 오래 있지도 못했어. 공원인데 들리는 소리라곤 차소리밖에 없어서. 이건 공원이 아니야. 그리고 술이 덜 취했는지 그렇게 누워있는 것이 못내 신경 쓰이고 창피하게 느껴지더라. 그깟 게 뭐라고.


술을 마셨더니 원래 아팠던 머리가 더 아파. 힘들어.

머리 아파 힘들고, 신경 쓰는 것들이 많아 힘들고, 사는 게 힘들어.

힘드니까 글은 더 잘 써져.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막 글이 나와.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는 몰라. 그냥 막 써져. 옛날부터 그랬어. 힘들 때, 슬플 때, 우울할 때 글이 잘 써져. 좋은 기분은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그래서 내 글은 항상 어둡고 우울해. 그리고 별다른 결말도 없이 막 끝내버리지.


자야겠어. 잘 잘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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