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나가의 혁신,
히데요시의 실행,
이에야스의 안정을 중심으로
현대그룹의 창시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였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은 새벽 일찍 출근해 "새도 부지런해야 좋은 먹이를 먹는다"라고 강조할 만큼 철저한 아침형 인간이었는데, 그가 노부나가를 존경했던 이유도 바로 그의 부지런함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계기로 노부나가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는 혼란했던 일본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단순한 군사 지도자를 넘어, 낡은 봉건적 질서를 부수고 일본을 근세 국가로 이끌려했던 혁신적이면서도 냉혹한 권력자였다. 그의 뒤를 이어 통일을 완성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함께 살펴본다.
이 세 사람은 일본사 속 특정 시대를 완성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권력과 질서, 혁신과 보존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영원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리더상은 단지 정치 형태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세 가지 근본적인 방향을 상징한다.
* 노부나가: 미래를 향한 혁신의 의지
* 히데요시: 현실을 조직하는 실행의 힘
* 이에야스: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보존의 본능
이 셋은 한 시대를 완성하는 순환 구조처럼 이어지지만, 그 안에는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겪고 있는 '문명적 긴장'이 응축되어 있다.
노부나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존재하는 질서의 부정이다. 그는 모든 권위와 규범을 의심했으며, 종교, 신분, 전통, 심지어 신의마저도 그의 세계에서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만든 질서는 사람에 의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라고 믿었다. 이 믿음이 일본을 봉건적인 불변의 세계에서 벗어나 근대의 문턱으로 끌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그의 사유는 파괴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틀을 허무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위험이 따른다. 파괴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그 목적이 파괴의 이유를 정당화하는 순간 인간은 폭력의 언어를 쉽게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노부나가가 갖지 못했던 것은 스스로의 힘을 비추어볼 '반성의 거울'이었다. 그는 권력의 철학자는 되었으나, 그 권력에 윤리를 묻는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행동의 철학'—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재구성하려는 정신—은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혁명 정신으로 남는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일으킨 혁신의 불꽃에서 현실적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는 비전을 제시하는 철학자라기보다, 무력으로 무너진 공간에 행정과 질서를 세우는 구조의 건축가였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며, 타협을 통해 흔들리는 체제를 굳건히 세운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현실감각은 곧 제국적 욕망으로 변질된다. 권력의 완성이 그에게 더 큰 확장을 요구했고, 결국 그 무리한 확장은 체제의 붕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히데요시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실행의 기술'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이라도 현실과의 마찰 속에서 구체화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그는 평범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조직을 움직이고 지배의 언어를 익혀 현실을 창조하는지를 실증한다. 하지만 그의 한계는 '실행의 이유'가 부족했던 점에 있다. 그는 '무엇을 위해 조직하는가'보다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더 중시했다. 목적이 도구보다 앞서지 못할 때, 인간은 스스로 체제의 부속품이 되는 것이다.
이에야스는 변화의 격변이 끝난 지점에서 궁극적인 질서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혁명의 불길 속에서도 차갑고 이성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그에게 국가란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靜止)'의 구조였다. 그는 혼란을 종식시키고, 통일을 확고한 제도로 응고시킨다. 그러나 안정의 이면에는 늘 '정지의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불안은 변화가 멈춘 곳에서 자라나기 마련이다. 그는 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역사적 생동감을 지워낸다. 질서는 평화를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은 줄어들게 만든다.
이에야스에게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절제된 통치의 미학'이다. 그는 권력을 휘두르는 법과, 더 중요한 권력을 멈추고 절제하는 법을 동시에 알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세계는 '안전하지만 닫힌 구조'였다. 이 구조는 한 사회의 안정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사고의 진화에는 장애가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를 닮았을 때, 그것은 피로 없는 평화의 사회일 수 있으나, 동시에 사유가 멈춘 정체된 질서의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 영웅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명적 긴장을 던진다. 이들의 세 가지 본능—변화, 이룩, 보존—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완성할 수 없다. 또한, 이 본능들이 지나칠 경우 사회를 파괴, 독재, 또는 정체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경계하면서, 그 핵심적인 교훈을 '그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지혜로 승화해야 한다.
이 세 인물의 삶은 현대 경영 스타일과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 노부나가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가(Disruptive Innovator)의 전형이다. 그는 성과주의와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조직에 추진력을 불어넣지만, 냉혹함과 독선이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 히데요시는 비전을 현실로 구현하는 실행 중심의 관리자이자 조직 설계자이다. 그는 현장 경험과 실무 능력을 중시하며 구조를 다지지만, 목적을 잊고 끝없는 팽창적 욕망에 사로잡혀 리스크를 키우는 모습을 보인다.
* 이에야스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생존과 질서 유지를 목표로 하는 지속 가능성의 전략적 리더이다. 그는 권력을 절제하고 제도화를 통해 안정을 구축했지만, 그 결과 사고의 정체와 변화에 대한 경직성이라는 부작용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노부나가의 혁신을 통해 불태우지 않고 변화시키는 용기, 히데요시의 실행을 통해 비전을 공존으로 바꾸는 현실 기술, 이에야스의 안정을 통해 사고를 멈추지 않는 절제된 평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