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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대 Sep 27. 2020

비정규직 근로자의 설움

  서울 삼성역 부근에 있는 숙박시설 C레지던스에서 일한 적이 있다. 144개실 규모의 C레지던스 운영업체 H사는 D사와 관리용역계약을 맺었고, 나는 D사 소속 관리소장으로 시설물 관리, 관리비 산정 및 부과, 인원관리 등의 일을 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지만,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기는 처음이라 잘 모른다. 입사한 지 2개월째인 8월, H사와 D사의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해야 되는데 D사는 저가(低價) 견적 업체인 S사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나를 제외한 D사 소속 시설관리원, 주차원, 룸 메이드 등 7명은 S사로 고용승계가 되지만, 소장인 나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입사 2개월 만에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마침 시설관리원 1명이 자진 퇴사를 하는 바람에 일자리가 하나 생겼다. 자존심 따위는 다 버리고 새로 오는 S사 소속 젊은 소장에게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급료도 깎이고, 소장 밑에서 일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이 지나 10월이 되었다.

  “이달 말까지만 일하고 나오지 마세요!”

  라는 소장의 말 한마디에 어쩔 수 없이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실업자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11년간 고용보험료를 지불해 왔고, 내 의지가 아닌 해고를 당하면서도 180일 이상 근무를 해야만 하는 법규 때문에 실업급여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나는 해고를 당하면서 H사나 D사 그리고 S사, 어디에도 항의 한마디 할 수 없다. 그들은 관련 법규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실업급여도 요구할 수 없다. 유기(有期) 계약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애(悲哀)를 처음 맛본 것이다. 룸 메이드 5명 중에는 1년에서 4일이 모자라 퇴직금을 못 받는 강 씨와 신 씨 두 여성이 있었다. 나는 D사에 근로자들 잘못이 아니라 용역계약을 갱신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고 단 4일이 부족하니 퇴직금을 지급하자고 건의했다. 대답 대신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끝내 퇴직금은 받지 못하지만 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룸 메이드 강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근로자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게 용역업체예요. 4일이 모자라는데 퇴직금 주겠어요?” 그들은 이미 용역업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다. D사 그들은 나를 참 순진하고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2014년 1월부터 서울시 영어마을 S캠프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직장을 구할 때 서류만 통과되면 면접에서는 대체로 잘 붙는 편이다. 그곳 영어마을 S캠프도 서울시가 직접 운영을 하지 않고 Y사가 운영하면서 L사와 관리용역 계약을 맺었고, 나는 그 L사 소속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여기서는 관리소장이 아니라 시설관리인이다. 나는 어디서나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L사 관리소장 이 씨로부터 지난해 삼성역 C레지던스에서 들었던 똑같은 말을 또 들었다.

  “이달 말까지만 일하고 나오지 마셔야 되겠습니다!”  

  허허,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이유인즉, Y사 권 대리 밑에서 일하는 이 차장이 있단다. 그들 내부 사정은 내가 알바 아니나, 차장을 대리 밑에서 일하게 하면 자진 퇴사할 줄 알았는데 계속 버티고 일하고 있단다. 그래서 내가 속한 L사 정원 1명을 줄여서, 즉 최근에 입사한 나를 해고하고 그 자리에 이 차장이 오기로 했단다.

L사 이 소장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해고 통보를 받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L사 전 전무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납득되지 않을 경우 Y사 화 본부장(원장)을 상대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서울시장을 상대할 예정이었다. 작년 C레지던스에서는 법적으로 해 볼 방법이 없어 꼼짝 못 하고 해고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분명 승산이 있는 게임이라고 판단됐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니 약간의 즐거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L사 전 전무와의 면담에서

  “해고사유가 뭐냐? 인사노무분야는 내가 당신들보다 못하지 않다. 대기업에서 인사 분야의 일을 오래 해 본 사람이다. 당신들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뵈는 게 없느냐? 약자라고 너희들 맘대로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3개월이 안됐다고 맘대로 해고해도 되는 줄 아느냐? 소위 임시, 수습, 시용기간이라고 하는 그 3개월은 맘대로 해고하는 기간이 아니다. 일을 계속시킬 수 없을 만큼의 결격사항이 발견되었거나, 감원을 하지 않으면 사업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하고 중대한 사정이 있을 경우, 그렇더라도 관련 부처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내일처럼, 동료들을 내 동생이나 조카들처럼 생각하고 도맡아 했다. 그 대가가 이거냐? 요소요소에 있는 CCTV를 확인해 보라! 나는 절대 나간다. 어떻게 할 테냐? 해고가 철회되지 않을 경우 Y사 원청 서울시장과 싸우겠다.”라고 탁자를 내려치며 따졌다.


  예순이 넘어 보이는 L사 전 전무의 얼굴은 홍당무가 돼 쩔쩔맸다. 그 시간부터 내 호칭은 ‘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서울시 감사총괄팀 조 팀장(여)에게 이메일로 아래 내용을 포함하여 7개 항목으로 정리한 ‘부당해고(예고) 통보에 대한 진정서’를 보냈다.

  “해고를 당할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다. 인권을 유린하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처사이다. 서울 영어마을 S캠프는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 서울시가 위탁 운영하는, 그리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곳에서 납득할 수 없는 비극이 발생됐다. 해고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밤 9시가 돼서야 이메일을 열어보더니 즉시 답을 보내왔다. “본건을 평생교육과 권 아무개 주임에게 조사하도록 배정했습니다.” 다음날 서울시청 권 주임으로부터 ‘Y사에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경위서를 받고 나서 감사를 실시한다,’고 들었다. Y사에서는 그 후로도 요리조리 말 바꾸기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거기에 대응해서 2차 진정서에 12개 항목의 내용을 추가했고, 3차에는 나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냈다.     


  감사를 나온다는 날 아침 일찍부터 손님(감사요원) 맞이 할 준비로 그 넓은 단지가 온통 부산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지켜보았다. 감사요원 5명이 몇 시간째 머물다 간 후, 하얗게 질린 기색의 L사 전 전무가 만나자고 한다. 서울시 감사실에 접수한 진정서를 취하해 달라며 애원을 한다. Y사에서는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달 26일로 끝나는 용역 재계약 불가 방침으로 L사의 목을 죄는 모양이다. 전 전무는 Y사와 나 사이에 끼어 어찌할 줄 모르는 걸 보니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L사도 사실 약자라서 피해자이다. Y사의 화 본부장이라는 자가 하는 짓을 봐서는 갈 데까지 가고 싶지만, 힘없는 L사의 전 전무와 이 소장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할 수가 없어 진정을 취하했다. 절대 못 나가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해고를 당한 셈이다. 강자는 이기고, 약자는 지게 돼 있나 보다! 그러나 내 요구조건은 강력했다. 또 직장을 찾아 나섰다.


  나는 지금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비원 등 직원을 채용할 때나 근무하는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당부하는 말이 있다.

  “소장을 포함해 우리는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고 열심히 일해주기 바란다,” 그 ‘항상’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고령인 우리들은 늘 긴장하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는 몸조심을 해야만 한다. 처음 입사해서 수습기간 3개월 동안 특히 밉보이지 말아야 되고, 계약기간 1년이 종료돼도 재계약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입주자 대표회의와 용역업체 간 재계약을 하거나, 업체가 바뀔 때도 자칫하면 우리와 재계약을 안 해주거나 고용승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된다는 말이다. 고령 비정규직인 우리는 사장님(?)들을 많이도 모시고 일한다. 2백 세대 아파트라면 남자 사장님, 여자 사장님, 할아버지 할머니 사장님, 아들 딸 사장님. 평균 세대 당 4명으로 계산할 때 8백 명의 사장님을 섬겨야만 된다.


  아파트 단지에는 진상 주민을 더러 대할 때가 있다. 아파트 1층 세대 배수구가 막혀 집안으로 물이 역류되고 있어 지하주차장 천장 공사를 하게 됐다. 주차된 차를 이동해 달라고 부탁했다가 자식 또래 젊은이에게 욕설과 폭언, 물리적 수모까지 당한 적이 있다. 전기료, 수도료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느냐며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리는 이도 있다. 사용한 량만큼의 계량기 계측 결과로 산정된 금액이라고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행패는 계속됐다. 이 두 사건의 경우가 현사회의 단면을 말해주기도 한다. 상대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고 화낼 일도 아니다. 입주민은 강자 갑이고 근로자는 약자 을이다. 갑질로 인해 상대를 분노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파트라는 공동생활 속에 건전한 문화가 형성될 것이고 밝은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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