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만드는 시간

요즘 어떻게 지내?

by koyohan


지인들과 통화를 할 때면 무난하고도 예의 있게 건네는 인사말이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며칠 전 미국에서 친하게 지낸 동생과 통화를 했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왔고, 미국에서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사를 세 번 했는데, 마지막 보금자리가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이전에도 자주 보는 사이였지만, 옆집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딱 다섯 걸음만 가면 서로의 공간에 닿을 수 있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는 엄마의 눈을 피해 틈만 나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미국에서는 늘상 발코니 문을 활짝 열어 찬란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아들였는데, 그녀와 나, 혹은 신랑과 그녀의 남편은 각자의 발코니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처럼 기숙사는 새삼스러울만큼 아담한 일상을 담은 안식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에서 맡아지는 음식 냄새는 알고 싶지 않아도 옆집의 점심과 저녁 메뉴를 짐작게 했다.


그녀의 남편은 미식가이자 음식 애호가였다.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면, 맛이 형편없고 값이 나가더라도 테이크아웃을 해오거나 눈 딱 감고 참아냈지만, 그는 대부분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빛을 내는 건 오로지 달뿐인 깊은 밤에도 튀김옷을 하나하나 입혀가며 정성 담아 탕수육을 튀겼고, 어느 날은 직접 삶은 족발과 순대를 들고 와 신랑과 나를 기함하게 했다.

-미국에서, 그것도 한인식당이 아닌 기숙사에서 족발과 순대를 먹게 될 줄은 몰랐기에. -


가끔은 얼마정도의 인내심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사골을 며칠 동안 우려내기도 했다. 뽀얀 색감의 사골국을 냄비 가득 담아 올 때, 투명한 뚜껑 아래서 리듬을 타는듯한 찰랑임이 날 설레게 했다. 방금 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허기가 지고 침이 고였다. 몇 년동안 그녀와 우리 가정은 끈끈하게 연대하며 살아냈다.




그녀는 남편의 졸업과 동시에 기숙사를 떠났고, 에덴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다시 한번 이사를 했다. 이런저런 삶을 나누던 중 그녀가 묻는다.


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난 여전히 아이들과 신랑을 챙기는 게 일과의 대부분이지.

대신 취미로 수영을 배우고, 도서관에서 사서 봉사도 하면서 느릿느릿 살아가는 것 같아.

금을 만드는 시간이거든.


맞아요, 금을 만드는 시간.

너무 좋네요, 언니.


전화를 끊고 얼마 전 묵상을 하며 적었던 글귀가 생각나 더듬더듬 페이지를 넘겨봤다.


조용하고 고요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

차분히 나의 시간을 쌓아가자.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자.

정금이 되어 나아갈 준비를 하는, 지금은 금을 만드는 시간이니까.



정겹고 따뜻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말간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행복했다. 정겨움과 따뜻함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몰라도 서로의 기쁨을 마음껏 축하하고, 슬픔을 무례하지 않을 만큼 위로하는 것. 그 간극에서 얻어지는 줄기들이 우리를 여전히, 단단히 옭아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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