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방 Sep 06. 2020

팬데믹 백수의 골방 속 영화 감상: 떼시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스릴러에 담아내다

영화 '떼시스'의 포스터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은 모두를 타격했습니다.


얼마 전 코로나19를 주제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이제 뭔가 재난이 일상화된 것 같다는 게 대화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재난의 일상화라,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최근 들어 재난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재난, 그리고 안전 문제 때문에 상처를 받는 거지?”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날, 저는 미용실에서 뉴스를 접했습니다. 오전에 머리를 자르며 미용실의 TV를 보는데 세월호 뉴스가 속보로 나왔습니다. 처음엔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큰 상처를 가져올 일이 될 지도 모르고요.


보도를 접한 시민과 아이들의 부모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요 / 출처: 미디어오늘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언론이 폭력성으로 상처를 주는 데 앞장서는 겁니다. 한 예를 들어보죠. 14년 4월 18일, KBS는 뉴스특보에서 <구조 당국, “선내 엉켜 있는 시신 다수 확인”> 이라는 뉴스를 내보냅니다. 엉켜 있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기사는 사실 확인조차 안 된 오보였습니다. 결국 KBS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게 되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도 6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의 언론은 자극성에서 벗어났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얼마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죠. 사안인 만큼 언론도 신중히 다뤄야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언론은 폭력성에 집중했습니다. KBS는 아침 뉴스와 오후2시 뉴스에서 박 전 시장의 시신 이송 장면을 내보냈습니다. 그의 죽음을 조명하는 데 굳이 필요한 장면이었을까요? 시청률에는 도움이 됐겠네요. 실제로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 후 KBS의 ‘뉴스9’의 시청률은 전주 같은 요일에 비해 2.1%p 상승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런 예시들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폭력의 전시’에 대한 영화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알 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는 언론과도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영화 '떼시스'의 다른 포스터


오늘 다뤄볼 영화는 ‘떼시스’입니다. 떼시스는 폭력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다룹니다. 우리 모두 폭력은 나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습니다. 너무 자극적이고 궁금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사회에 가져오는 폐해를 잊은 채.


‘떼시스’는 스릴러 중에서 사회 문제를 잘 담고 있고 메시지도 명확히 전달하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게도 큰 울림을 가져다줍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어떤 메시지가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할까요?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 이후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지만 괜히 궁금한 게 폭력의 본질일 겁니다


영화는 지하철 사고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 선로로 뛰어들어 지하철 운행에 차질이 생깁니다.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내려서 플랫폼까지 걸어가라고 지시하죠. 그 승객 중에는 주인공, 안젤라(아나 토렌트)가 있습니다. 안젤라는 지시대로 걷다가 궁금해집니다. 그 시체, 혹은 죽음의 모습이. 그래서 그는 정렬되어 걷고 있는 행렬에서 나와 시체를 보려 합니다. 하지만 기관사에게 제지당하죠.


이 장면으로 안젤라가 어떤 사람인지 확연히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폭력적인 장면이 궁금합니다. 기관사가 보지 말라고 했음에도 몰래 보려고 할 정도로요.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끔찍한 사고가 났는데도 눈을 가리기보다는 기웃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논문 지도를 받는 성실한 대학생 안젤라


안젤라는 대학생입니다. 그는 논문을 작성해야 하고 피게로아 교수(미구엘 피카조)의 지도를 받아야 하죠. 안젤라는 “영화와 폭력”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피게로아 교수는 안젤라의 논문 초안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안젤라는 칭찬을 들은 김에 교수님께 자료를 부탁하죠. 영상자료실에서 폭력적인 영상을 찾아달라고요.


안젤라는 교수에게만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체마(펠레 마르티네즈)라는 괴짜 학생에게도 찾아가 폭력 영상을 부탁합니다. 그런데 체마는 계속 튕기는 군요. 미키마우스 이야기나 논문에 쓰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안젤라. 그의 순수함을 보여줍니다.


그럴 만도 한 게 안젤라의 이미지는 폭력과 거리가 먼 ‘순수함’입니다. 영화는 음악을 통해 안젤라와 체마를 나타냅니다. 두 사람이 이어폰을 끼고 마주보고 있는데 안젤라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고 체마는 시끄러운 락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락 음악이 폭력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보통 영화에서 그렇게 나타내곤 하죠. 안젤라는 분명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폭력이란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 합니다. 우리처럼요.


체마는 안젤라를 폭력적인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집으로 초대합니다. 머리에 총을 쏘는 영상, 머리를 수술용 칼로 가르는 영상 등 충분히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안젤라는 눈을 떼지 못하고 봅니다. 하지만 안젤라는 만족을 못합니다. 그는 더 강한 걸 원하죠. ‘진짜 죽음’을 목격하길 원합니다.


꼭 들어가면 안 될 것처럼 생긴 데를 들어가네요


안젤라가 폭력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이 피게로아 교수는 영상자료실을 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영상자료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자료를 찾는 장면마저 쫄깃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명 영상자료실에 누군가 있고 교수는 몰래 자료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 이상한 문을 하나 발견합니다. 정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문인데 교수는 들어갑니다.


문 안을 열어보니 큰 복도와 공간이 나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비디오가 꽂힌 책장도 발견하죠. 피게로아 교수는 그 책장을 보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됐다고 알리는 사서 때문에 급하게 1번 비디오를 고릅니다. 그리고 교수는 시청각실에서 비디오를 재생시키고... 사망하고 맙니다.


그가 원하던 '진짜 죽음'을 목격했다


교수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안젤라였습니다. 하지만 안젤라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진짜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안젤라는 물러나지 않고 교수의 얼굴을 만져봅니다. 차가운 기운을 느낀 후 급하게 교수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비디오를 훔칩니다. 얼마나 폭력적이길래 죽게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까 말했듯 안젤라는 순수한 인간입니다. 혼자 영상을 온전히 볼 자신이 없죠. 그래서 가족이 없는 틈을 타 비디오의 소리만 듣습니다. 소리는 끔찍합니다. 어떤 여성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죠. 하지만 안젤라는 더욱 궁금해하고 집착합니다. 아예 소리만 따로 따서 그걸 들으면서 잡니다. 안젤라는 서서히 폭력에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영상을 혼자 볼 자신은 없습니다. 체마는 분명 피게로아 교수의 죽음과 안젤라 사이에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안젤라를 보챕니다. 결국 안젤라는 못 이겨 비디오의 존재를 말하죠. 그리고 체마의 집으로 가서 영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궁금하기는 하고, 보기엔 무섭고, 미쳐버릴 노릇!


체마의 집에서 영상을 틀지만 안젤라는 곧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체마가 말합니다. “아는 여자애야!” 안젤라는 아는 사람이 당하는 폭력이란 자극성에 이기질 못합니다. 그러나 안젤라는 영상을 보고 구토합니다. 버티지 못하죠. 그런데도 기어코 보고 맙니다. 피해자가 머리에 총 맞고 죽는 영상까지 다 보고 체마와 함께 카메라의 종류까지 함께 추측하죠.


이 영화의 재밌는 지점은 여기입니다. 그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젤라가 시시했다고 했던 영상들이 더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 여자애가 도대체 어떻게 당하고 있길래?”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안젤라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영화가 노리는 지점도 이 부분이고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찾으세요! 핵심은 '돈'이니까요.


그리고 눈 여겨 봐야 할 인물이 나옵니다. 피게로아 교수가 사망한 후 새 인물, 카스트로 교수(사비에르 엘로리아가)가 등장합니다. 피게로아 교수 대신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죠. 그는 수업 중 이런 말을 합니다. “영화란 산업입니다. 엄청난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죠...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카스트로 교수는 영화를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언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조회수나 시청률만 높다면 그 어떤 폭력성도 마다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영상을 다루는 매체에겐 엄청난 힘이 존재합니다. 과거 나치의 괴벨스가 선동 수단으로 영화를 택한 게 그 방증입니다. 그 힘을 오직 돈벌이 수단에만 활용하는 건 힘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눈빛이 그윽하네요


여튼 안젤라는 이 사건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실종 여성 사건을 스크랩하고 수시로 훑어보죠. 그러다 발견합니다. 체마와 이야기했던 기종과 같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남자! 딱 봐도 눈빛이 나쁘게 생겼습니다.


안젤라는 그 남자를 미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좀 허술했던 걸까요, 곧바로 간파당하고 역으로 쫓깁니다. 결국 안젤라는 그 남자에게 잡히고 말죠. 그런데 그 남자는 실종됐던 여대생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보스꼬(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오히려 실종됐던 여대생인 바네사 관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안젤라의 취재에 적극 응합니다.


그런데 체마는 보스꼬가 영 탐탁지 않습니다. 일을 추진하는 안젤라에게 계속 옆에서 잔소리를 하죠. 뭔가 안다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안젤라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스꼬는 안젤라와 가까워지려 합니다. 보스꼬는 안젤라의 집까지 찾아 왔습니다.


수작 부리기 전에 눈빛을 쏘고 있다


보스꼬가 집으로 찾아온 명목상 이유는 인터뷰 영상 촬영입니다. 하지만 좀 찍다말고 다른 의도를 가졌음을 보여주죠. 한창 잘 찍고 있는데 집에 있던 안젤라의 엄마가 마트를 갑니다. 왜 이 타이밍에 마트를 가는지! 그리고 보스꼬는 말 대답 한 글자 당 한 걸음씩 다가가겠다고 합니다. 결국 안젤라와 보스꼬는 가까워지는데 보스꼬는 갑자기 물러납니다. 선수네요. 하지만 분명 안젤라는 보스꼬에게 끌리고 있습니다.


안젤라의 꿈은 보스꼬에 대한 끌림과 그 끌림에 대한 불안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젤라는 자다가 깜빡깜빡 들어오는 빨간 불을 보게 됩니다. 카메라 녹화 표시죠. 누군가가 그를 몰래 촬영하고 있는 겁니다. 안젤라는 급하게 불을 켜고 불안해하는데 보스꼬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보스꼬는 칼로 안젤라를 위협하지만 곧 둘은 서로의 육체를 탐닉합니다. 폭력성에 대한 호기심이 욕망으로까지 번지고 만 거죠.


안젤라는 꿈 속에서 폭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끌리고 있다


안젤라가 그러고 있는 사이 체마는 열심히 이 사건을 파고 있습니다. 체마는 CCTV 영상까지 얻어서 사건의 전말을 찾습니다. 그러다 알게 되죠. 피게로아 교수의 죽음 뒤엔 카스트로 교수가 있다는 것을! 근데 마침 안젤라는 카스트로 교수에게서 논문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영화의 긴장감은 증폭되죠.


안젤라는 체마의 전화 덕분에 카스트로 교수의 방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실에 점점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안젤라는 보스꼬의 여자친구 욜란다(로사 킴필로)와 만나면서 더욱 진실에 대해 알게 됩니다. 보스꼬와 일당들은 스너프 필름을 찍어 왔습니다. 욜란다와 바네사는 그 사실에 대해 두려워했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네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스너프 필름엔 바네사가 담겨 있었고요. 더 큰 충격은 그 일당에 체마 역시 포함돼 있었습니다.


항상 생각하지만 이상한 공간을 찾으면 경찰에 신고하세요!


안젤라는 체마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 역시 보스꼬와 한 패가 아닐지 두려워하죠. 둘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체마가 CCTV로 발견했던 공간으로 갑니다. 피게로아 교수가 비디오를 발견했던 공간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공간으로 통하던 문이 잠깁니다. 완전히 갇혀버린 거죠.


영화의 긴장감은 더더욱 고조됩니다. 바로 성냥을 통해서요. 성냥은 유한하고 위기는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안젤라와 체마는 성냥을 들고 어둠 속에서 한 발자국씩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동안, 체마는 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둠 속에서 체마가 해준 이야기는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한 공주가 있었습니다. 그 공주가 13살이 되자 생일파티를 엽니다. 하지만 파티는 지겨웠죠. 그때 한 난쟁이가 나타나 춤을 추고 공주는 기뻐합니다. 하지만 춤을 끝냈는데도 공주는 계속 춤추길 원했고 난쟁이가 거부하자 공주는 슬퍼서 방에 가버립니다.


난쟁이는 공주를 만나기 위해 공주의 방을 찾아갑니다. 자기가 사는 숲으로 데려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난쟁이는 공주의 방에서 거울을 발견합니다. 그 거울에 비친 난쟁이의 모습은 괴물 그 자체였습니다. 난쟁이는 절망하고 있는 그때, 공주가 나타나 말합니다. “어서 춤춰.”


공주의 말에 난쟁이의 심장은 갈라집니다. 의사는 말하죠. “다시는 춤을 못 출 겁니다.” 하지만 공주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 앞에 한 문구가 걸리죠. “앞으로 심장이 갈라진 자만 출입할 것.”


저는 이 이야기가 영화를 관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괜히 2분이나 들여서 이야기할 이유가 없죠. 저 공주는 마치 우리와 같은 일반 시민처럼 보였습니다. 자극적인 것이라면 인격조차 포기하는 우리들 말입니다. 그것을 추구하는데 있어 브레이크는 없습니다. 자극적인 걸 보여주는 매체뿐만 아니라 공주, 즉 우리 모두 심장이 갈라진 것 아닐까요? 영화는 동화를 통해 핵심적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쁜 놈이 맞았구만


성냥이 떨어지던 찰나, 안젤라와 체마는 한 공간을 발견합니다. 그 공간은 바네사가 폭행 당하고 죽었던 그 비디오와 유사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젤라는 카스트로 교수로 인해 기절하고 의자에 묶이게 되죠.


카스트로 교수는 그의 정체를 밝힙니다. 그는 영상을 찍는 일당 중 하나지만 핵심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편집만 담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카스트로 교수가 안젤라를 죽이기 위해 총을 꺼내든 그때, 어디선가 체마가 나타나 구해줍니다. 체마와 카스트로 교수는 몸싸움을 하다가 카스트로 교수는 오발로 인해 죽고 말죠.


안젤라에겐 사생활이 없었다.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는 문제인 것 같다.


사건은 더 혼란에 빠집니다. 안젤라는 카스트로 교수를 살해했지만 정당방위였다며 경찰에 신고하자고 체마에게 말합니다. 체마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들이죠. 체마가 씻는 동안 안젤라는 벽장에서 웬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그때 체마가 이야기했던, 바네사가 살해될 때 찍었던 그 카메라 기종이었습니다. 안젤라는 그 카메라에 어떤 영상이 담겨있는지 봅니다. 그 카메라엔 안젤라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습니다. 꿈이 현실이었던 거죠.


안젤라는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보스꼬의 여자친구 욜란다까지 안젤라에게 전화해 협박합니다. 안젤라는 이 사건을 풀기 위해 직접 보스꼬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안젤라는 보스꼬로부터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죠. 욜란다는 보스꼬를 엄청나게 집착하는 여자였던 겁니다. 욜란다의 증언을 믿기 힘들어진 셈입니다.


다음엔 맑은 낮에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안젤라가 충격적인 증언을 보스꼬에게서 듣는 사이 검은 우비를 뒤집어 쓴 한 사람이 보스꼬의 집을 몰래 들어옵니다. 그리고 보스꼬에게 일격을 가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우비를 쓴 사람은 체마였습니다. 체마가 다시 안젤라를 구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체마는 보스꼬를 이기지 못합니다. 보스꼬는 싸움도 잘하더군요. 그러는 사이 안젤라는 보스꼬의 집에서 이상한 공간을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보스꼬 집의 주차장은 스너프 필름이 찍혔던 그 현장이었습니다. 안젤라는 다시 의자에 묶입니다. 그래도 기지를 잘 발휘해서 의자에서 풀고 나옵니다. 그리고 안젤라는 보스꼬에게 총을 쏴 죽여버립니다.


눈길을 TV에서 뗄 수 없다. 잔혹함을 욕하지만 그걸 탐닉하는 인간의 한계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나질 않습니다. 영화의 중심은 급작스레 안젤라와 체마에서 TV 프로그램로 옮겨 갑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 ‘법과 정의’죠.


프로그램 속 진행자는 말합니다. “사랑과 죽음, 돈이 관련된 얘기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스너프와 여자들’이 바로 그 예시죠.”


프로그램은 ‘스너프’ ‘여자’라는 단어를 넣어 시청자의 관심을 끕니다. 아픈 사람도 어쩔 수 없더군요. 안젤라가 다친 체마에게 병문안 오며 ‘공주와 난쟁이’ 책을 사옵니다. 체마는 그 책의 헌정사를 옆 병상에 있는 할아버지께 읽어 달라 부탁하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글을 읽다 점점 고개를 들어 올립니다. 자극적인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법과 정의’ 프로그램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아예 스너프 필름의 일부를 입수해 방송에서 공개해버리죠. 명목은 “알 권리”였습니다.


영화의 엔딩.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 영화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저는 방송사가 스너프 필름을 틀어준다는 데 깜짝 놀랐지만 부끄럽게도 그 영상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를 시원하게 농락합니다. 경고문이 나온 후, 영상은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알 권리가 무엇일까요? 도덕과 윤리를 포기하고 그저 대중들이 궁금해 한다면 알 권리를 앞세워 보여줘야 할까요? 저는 ‘알 권리’ 와 ‘폭력성의 전시’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 언론사의 김건모 성추문 관련 기사. 이런 내용이 포털에 버젓이 걸려도 될까요?


한 언론사의 기사입니다. 네이버 포털의 ‘Pick’으로 선정한 것을 보면 언론사가 이 기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결정을 한 점도 알 수 있죠. 그러나 이 내용이 과연 전면에 나올 만한 기사인지 의문입니다. 알 권리를 내세울 만큼 가치가 있는지 말이죠. 이 기사는 자극적이고 소모적입니다. 전 연령대가 접할 수 있는 포털에 적절한 내용인가요? 오로지 조회수가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전 감히 시민들에게도 비판을 가하고 싶습니다. 언론사가 알 권리 뒤에 숨어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아주 큰 논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해외 음란물 사이트에 ‘텔레그램 n번방’이란 검색어가 상위권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잔혹한 범죄에 당한 약자들이 존재하는데 그 폭력을 탐닉할 수 있나요. 스너프 필름이 버젓이 방송에 나오는데 눈을 떼지 못하는 영화 속 환자들 같습니다. 도덕을 포기한 채 자극성만 추구하는 자들 말입니다.


영화 ‘떼시스’는 스릴러 장르 자체로만 놓고 봐도 재밌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언론, 그리고 시민에게도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심장이 쫄깃한 영화임을 넘어 지금의 우리 사회도 돌아보게끔 하는 영화입니다. 인간의 욕망을 관통하니까요.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에 ‘떼시스’는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스릴러 영화 한 편을 살펴봤습니다. 정말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드는 영화였는데요! 여러분들도 영화를 보고 그 충격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스릴러 영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팬데믹 백수의 골방 속 영화 감상: 국가부도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