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의 가벼움
코로나19가 만든 '팬데믹'은 모두를 타격했습니다.
지난 4월 IMF는 ‘2020년 4월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진 후 나온 경제 지표라 모두의 관심을 끌었죠. IMF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2%로 전망했습니다. 마이너스 수치지만 OECD 36개 회원국 중에선 1위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3%로 예상되는 가운데서 선방한 결과입니다.
이렇듯 지금의 IMF 관련 소식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지고 옵니다. 하지만 과거엔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1997년 IMF금융위기는 모든 국민을 불행 속에 빠트렸습니다.
IMF금융위기는 빠르게 절망을 가지고 왔습니다. 1997년 12월부터 1998년 5월까지 부도난 기업만 1만 5천개 이상입니다. 기업들이 부도나면 당연 실업률도 크게 늘겠죠. IMF금융위기 직후 실업자 규모는 150만 명에 달했습니다. 실물위기가 금융위기로까지 번지지 않는 지금과 달리 과거 금융위기는 실물위기로까지 빠르게 번졌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이런 상처를 다룬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IMF금융위기를 다룬 첫 영화라고 하네요. 그만큼 기대가 컸습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유래 없는 사건을 다루는 만큼 영화 역시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참신함을 보여주길 바랐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참신함을 보이지 못하고 여러 성공공식의 영화를 섞은 듯합니다.
제가 이번 영화를 리뷰하기 전 모던타임즈와 빅쇼트를 다룬 이유도 ‘국가부도의 날’을 위해서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두 영화의 장점을 섞으려 했습니다. 문제는 그 장점들이 어우러지지 않거나 장점의 본질이 아닌 겉핥기 수준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빅쇼트는 차가운 영화입니다. 천천히 서사를 쌓고 그 서사의 중심엔 데이터와 분석이 있습니다. 그 분석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던 거죠. 반면에 모던타임즈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한 캐릭터의 감정을 쫓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 캐릭터는 거시 경제가 어떻게, 왜 변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힘들어진다는 건 압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흠뻑 빠져야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따뜻한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부도의 날’은 어때야 할까요?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에는 그 역사의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수치와 데이터로 나타낼 수 있는 경제가 영화의 중심일수록 역사를 더 세세히 표현해야 합니다. 영화가 차갑고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거죠. 즉, 빅쇼트의 문법을 따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빅쇼트의 모습을 시도했으나 겉모습만 따라하고 모던타임즈도 섞은 모양새였습니다. 두 영화가 애매하게 섞이니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심지어 차가워야 할 영화에 따뜻함을 섞으니 역사적 사실과 개연성을 신경 쓸 겨를이 안 생기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어떤 점이 애매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걸 잘했고 어떤 걸 못했을까요?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후 내용에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는 3개의 축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갑수(허준호), 두 번째 축은 윤정학(유아인), 그리고 마지막은 한시현(김혜수)입니다.
각 축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집니다. 두 번째 축인 한국은행과 재정국이 한창 삽질하고 있을 때 윤정학은 돈을 벌 기회를 포착하고 갑수는 돈을 잃을 함정에 빠져듭니다. 3개의 장면이 교차로 등장하며 관객의 시선을 이끌죠.
3개의 축 중 갑수가 등장하는 축은 관객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그릇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입니다. 그러다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죠. 미도파 백화점에 납품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미도파 측은 현찰이 아닌 어음 거래를 원합니다. 현찰 거래가 아닌 어음 거래를 할 때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옵니다. 미도파 백화점은 실제로 파산했던 백화점이었고 영화에서도 파산합니다.
특히 IMF금융위기를 맞은 이후,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감정을 분노가 아닌 허망함, 그리고 미안함으로 표현한 건 좋은 연출 방법이었습니다. 보통의 국민을 잘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은 물론 무능한 정부에 대해 비판을 했지만 일단 ‘금 모으기 운동’ 등 개인적 분노보다는 화합을 추구했습니다.
그 화합의 증거가 영화에선 정 사장과의 관계로 증명됩니다. 분명 갑수는 파산을 신청하거나 소위 ‘배 째라’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 사장에게 대금을 갚겠다며 연신 허리를 굽히죠. 그런가 하면 정 사장은 힘들어하는 갑수와 직원을 위해 박카스를 사옵니다. 정 사장의 행동, 이것이 당시 한국의 국민들이 했던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힘들어도 남이 더 힘들겠지, 역지사지 말입니다.
이러한 장점들은 모던타임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채 경제 흐름에 휘말리지만 모던타임즈의 주인공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타인을 배신하지도, 이기적이지도 않습니다. 따뜻한 인류애를 보여줬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차가운 경제 상황 속 따뜻한 인간을 보여준 것만으로 그 가치는 충분합니다.
갑수는 이후 부도 어음을 정 사장에게 넘겨 그를 죽음으로까지 이끌고 맙니다. 그의 행동은 분명 화합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경제 속 인간을 살펴보는 영화였다면 충분히 용인 가능한 부분입니다. 입체적인 인간은 착한 결정도 하지만 나쁜 결정도 하니까요. 정 사장은 인류애와 화합을 보여줬다면 갑수는 입체적인 인간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의 장점은 여기서 그칩니다. 모던타임즈처럼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는 수법은 잘해냈지만 그 외는 흐리거나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이 아닌 이성과 분석 부분은 잘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섞이기 어려운 걸 섞으려다 탈 난 겁니다. 나머지 두 축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살펴 볼 축은 윤정학입니다. 윤정학은 고려종합금융을 다니는 금융인입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잘 포착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는 한국에 IMF금융위기가 닥칠 것을 눈치 채고 사표를 냅니다.
영화의 시작점입니다. 윤정학은 신입사원을 이끌고 연수를 옵니다. 그러다가 어떤 통화를 하게 되죠. 하지만 시작부터 꼬여버렸습니다. 정말 비교하기는 싫은데 빅쇼트와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자체가 빅쇼트를 참고한 게 뻔히 보이잖아요?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그냥 감으로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료를 다 훑어본 후 판단한 것이죠. 그렇기에 상급자가 “너 무슨 배짱으로 미국 경제가 망한다는 데 거는 거야?” 라고 했을 때 “I read it.” 이라고 자신 있게 답하죠.
반대로 윤정학을 봅시다. 윤정학은 자신이 맡고 있던 외국계 금융 회사가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 후 라디오에서 경제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연이 흘러나옵니다. 그는 이것들을 종합해 사직서를 내는데... 너무 부족하지 않나요?
분명 마이클 버리는 일부가 아닌 전체를 보고 판단합니다. 그에 반해 윤정학은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겁니다. 관객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인물에게 지적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즉, 영화 시작부터 이 인물의 행보를 믿기보다는 ‘사기꾼’으로 비춰집니다.
그렇기에 윤정학의 행동은 계속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영화는 빅쇼트와 달리 ‘술수’를 부리는데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윤정학은 그만 두고 나와 소위 ‘사모펀드’를 꾸리기 위해 기존에 알고 지내던 투자자들을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 경제가 망할 거라는 주장에 나름의 논리를 펴죠.
그 논리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금융계가 어음과 대출 등을 아무런 검사도 없이 그냥 승인하고 이것들이 대기업부터 시작해 저 밑 작은 기업과 가계까지 퍼져있다는 것. 국가 전체가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위기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IMF금융위기의 원인이기도 하고 영화상에서도 칠판 속 그림으로 잘 설명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림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1타 강사처럼 차분히 설명하는 윤정학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퍼포먼스’에 집중하더군요. 흔들리는 카메라, 오버 연기하는 유아인, 그리고 흩날리는 라디오 사연들.
라디오 사연이라니! 라디오 사연이 어떻게 전체 경제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지표가 됩니까? 지금까지 윤정학이 그런 방식으로 투자를 이끌어왔다는 건가요? 빅쇼트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모든 수치를 살폈고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마이애미 일대를 발로 뛰었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인물들은 세상을 역행하는 결정을 합니다. 그 판단에 ‘신뢰’를 불어넣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했던 장치죠.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그 장치와 신뢰를 포기합니다.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은 계속 나옵니다. 부동산 투기와 환테크(달러 차익 실현)로 돈을 꽤 만진 윤정학에게 노신사(송영창)가 묻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러자 윤정학은 답하죠. “IMF로 갈 것이라는 데 올인할 겁니다.” 그 이유는 “관료들은 시장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윤정학은 금융맨이었습니다. 즉, 관료와 아무 관계가 없었죠.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정학이란 인물이 정부 관계자를 파악하고 있다는 여지를 앞에서 줘야 했습니다. 같이 식사하는 장면이나 못해도 같이 담배라도 태우는 장면이요. 그래야 그의 말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그런 것 없이 그냥 시장주의자니까 IMF로 갈 것이다? 이건 금융 전문가가 아닌 무당입니다.
IMF금융위기는 분명 한국에겐 유래 없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사건이라면 예측 자체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즉, 예측이 어려운 만큼 신뢰할 만한 데이터나 사건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윤정학 앞에 앉은 두 명뿐만 아니라 관객도 설득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게으르게도 그냥 말로 설명하고 두 명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관객은 설득이 안 되는데 두 사람은 설득이 되네요. 저도 다음에 사기 칠 일 있으면 저 앞에 앉은 노신사와 오렌지에게 가야겠습니다.
한 인물에 너무 많은 것을 끼얹다보니 그 인물의 감정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다시 빅쇼트를 봅시다. 빅쇼트는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앉아서 며칠 내내 수치만 보는 괴짜 마이클 버리, 돈만 밝히는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금융계를 미워하는 마크 바움이 극도로 대비되죠. 바움은 빨리 스와프 관련 채권을 털어야 하는 시점에도 털지 않습니다. 왜냐? 금융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죠. 그는 애초에 금융계를 믿지 않았고 그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인물입니다. 즉, 메시지가 극단으로 나눠지니 인물도 나눈 거죠.
그런데 이 영화는 3가지를 섞습니다. 윤정학=마이클 버리+자레드 베넷+마크 바움. 문제는 저 3명의 인물은 정말 성격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윤정학이란 인물이 뭔가 이상하게 섞이고 단절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윤정학이 오렌지(류덕환)의 뺨을 갑자기 때릴 때 정말 놀랬습니다. 이중인격자인가, 분노조절이 안 되나, 혹은 원래 때리고 싶었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 나라 경제가 망할 거라고 회사에서 신나게 나와 투자자를 끌어 모았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때리고 나서 그 돈을 약자 구제에 활용하는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군요.
감정의 변화가 생겼다는 데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는 전형적인 돈밖에 모르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점심의 500, 저녁은 1000 이러면서 말이죠.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돈만 아는 사람으로 표현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돈 벌었다고 좋아하지 마”라고 하며 폭력을 휘두르다니. 이것은 입체적 캐릭터가 아닌 캐릭터의 붕괴입니다.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마지막 축인 한시현입니다. 한시현을 비롯한 관료 집단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정말 ‘아연실색’이란 말이 맞아떨어집니다. 역사와 경제를 다루는 영화가 이토록 책임감이 없을 수가 있는지 두 눈 뜨고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한 자료가 있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아시아 외환위기의 발생과정과 원인’입니다. 328쪽 분량의 긴 글이지만 중간에 친절히도 IMF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여러 논의와 가설을 4가지 정리해뒀습니다. 그 글을 참고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가설은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입니다. 아시아 금융계가 시장경제원칙을 지키지 않고 방만하게 경영을 해 와서 위기가 생겼다는 주장이죠. 주장한 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폴 크루그먼이 있네요.
두 번째 가설은 자본자유화입니다. 기업이 과다차입 등으로 고도성장을 해왔는데 자본자유화와 금융자유화가 급격히 실시되며 적응 실패, 그리고 위험에 직접적 노출돼서 금융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 가설은 유동성 및 구조적 위기설입니다. 공황심리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생겼고 그 국가들의 경제적 구조가 취약한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 국제 구제프로그램도 엉성해서 외환위기로 심화됐다는 주장입니다.
네 번째 가설은 음모론입니다. 고도성장을 부정하게 만든 경제위기의 원인을 바깥으로 돌리는 주장이죠. 서방자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할 아시아의 기를 누르려고 했다는 겁니다. 거기에다가 IMF를 통해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경제 주권을 빼앗고 미국 자본이 그 국가의 기업과 은행을 싸게 먹으려고 했다는 주장입니다. 정서적으로 많이 수용되는 가설이라고 하네요.
그렇습니다. 한시현이란 축은 4가지 가설 중에 4번째, 음모론을 택해서 영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음모론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데 이성과 사실이 필요하겠습니까? 영화는 냉정을 찾지 못하고 감정과 역사적 사실의 왜곡으로 채워져 빈약합니다.
영화는 불친절합니다. 왜냐하면 ‘감정’만 필요했기 때문이죠. 바로 한시현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그리고 재정국 차관(조우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말입니다.
한 예를 보죠. 무능한 관료들은 한시현의 보고서를 계속 무시하다가 일이 닥쳐서야 부랴부랴 챙깁니다. 무능한 관료들이니 그 내용도 알 리가 없죠. 그래서 한시현은 보고서를 나눠주며 그에 대해 브리핑합니다. 제가 그 내용을 그대로 타이핑 해봤습니다.
“한보 사태, 기아자동차 부도, 그 때 경제 각 부처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해외 투자자의 의심이 시작됐고, 지난 8월부터 해외자본이 한국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원화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있지만 외환보유고를 투입해서라도 환율을 방어하고 있는데 환율 방어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1주일에 20억 달러....... 저희 팀은 지난 11월 3일과 4일간 있었던 롤오버 비율... 솰라솰라”
쉽습니까? 저는 그냥 이 장면을 보고 오... 김혜수 멋있다... 밖에 못 느꼈습니다. 즉, 경제 영화로서의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잠깐 설명하자면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건 항상 나쁜 게 아닙니다. 원화가치의 약세는 수출기업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탈이 나는 겁니다. 왜냐하면 원화가 약세가 되면 수출이 늘어나는 대신 수입이 과하게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국민의 삶이 힘들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과한 약세엔 달러를 투입해 조절합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니 IMF금융위기 같은 상황이 찾아오고요.
롤오버도 설명하겠습니다. 채권 혹은 계약에 대해 합의로 만기를 연장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계약이 깨지는 게 아니라 일단 만기를 계속 늘리는 거죠. 역시 롤오버 비율이 높으면 그래도 이 국가와 한 계약을 신뢰한다고 보면 되겠죠? 하지만 IMF금융위기를 앞두고 해외 자본은 한국을 못 믿으면서 만기를 늘리길 거부했습니다. 즉, 롤오버 비율이 낮아지고 한국의 경제위기는 더욱 가속화 되는 겁니다.
빅쇼트는 어려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마고 로비, 리차드 탈러 등을 투입해 적절한 비유와 묘사를 통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어려운 경제 위기를 단순히 말로, 그것도 시간으로 따지면 2분으로 끝냅니다. 중간에 눈치 없이 끼어드는 사람도 있으니 설명은 2분 미만이겠군요. 이 영화는 12세 관람가던데 12세가 이 영화를 보고 IMF금융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불친절하게 설명을 끝냈으니 남은 건 갈등입니다. 재정국 차관은 무조건 악이며 한시현은 무조건 선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시현의 주장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재정국 차관은 계속 IMF금융위기를 숨기려고 합니다. 이유는 불필요한 소동은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에 대해 한시현은 반박하죠. “국민에게는 현 상황을 보고 받을 권리가 있는 겁니다.”
맞습니다. 있죠. 그런데 차관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발표는 오히려 경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괜히 언론이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정부와 약속하는 엠바고가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적으로 알 권리가 나오진 않지만 헌법 제21조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헌법 제26조는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죠. 법률도 정보수집권 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가 경제 위기 상황을 인정함으로써 경제 구제 국면으로 전환할 수도 있겠죠. 모든 역량을 경제로 집중하면서 말입니다.
참고로 이 근거들은 제가 직접 찾은 겁니다. 한시현은 이런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국민에게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만 말합니다. 두루뭉술합니다.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 같죠. 형이상학적 가치만을 강조하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한시현은 이 갈등에 있어서는 무조건 선이기 때문이죠. 즉, 인물의 캐릭터를 쌓아올리지 않고 단순한 선악 구도에 기대 설득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용이 빈약해집니다.
영화의 불친절한 지점은 또 있습니다. 영화 극초반, 한시현이 금융위기 관련 보고를 하러 가던 길에 금융실명제 유보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대가 나옵니다. 생각 없이 보면, “아 이미 경제위기 관련해 사람들의 불만이 컸구나!” 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경제 영화라면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되는 장면입니다!
참고로 금융실명제는 1993년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경영계의 반발이 심했죠. 암암리에 묵혀뒀던 차명 재산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IMF금융위기가 생겼을 때 경영계는 “이건 금융실명제 때문이야!” 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즉, 금융실명제를 둘러 싸 한국의 기득권과 그 외의 세력들은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특히 1997년 정부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출했습니다. 소액 금액은 1년간 실명 확인절차를 생략할 수 있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무기한 연기 등 원래 취지에서 많이 후퇴한 법안이죠. 그래서 저 장면의 시민단체가 시위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경영계, 금융계 등의 기득권에 밀려 금융실명제를 포기하고 있기에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이 전무합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는 12세관람가입니다. 그렇다면 저런 장면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죠. 다큐가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냐라는 지적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디테일들이 감정보다는 이 영화가 의도했던 기득권의 카르텔을 지적하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기득권이 그토록 싫어했던 금융실명제의 유보가 한시현의 기득권에 대한 분노보다는 더 짜임새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불친절을 통해 감정으로 관객들을 유도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경제보다는 정치와 권력 싸움에 집중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절대 해서는 안 될 것들을 합니다. 팩트의 왜곡이죠.
상황이 어려워지자 차관은 IMF로 끌고 가려 합니다. 뭐, 사실을 따지자면 한국은행이 IMF 구제금융을 찬성했고 재정국이 반대했지만(한국은행은 외환만 관리하면 되기에 오히려 IMF 구제금융 방식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영화적 허용으로 일단 보겠습니다. 이에 대해 한시현은 극구 반대합니다. 한국의 경제 주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차관은 다시 반박합니다. “한 팀장의 대안은 뭡니까?” 이에 대해 한시현의 답, “일본과 미국, 유럽 몇 개국에 국채 발행해서 100억 달러를 빌린 후 급한 외채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대안이 터무니없기 때문이죠. 일단 한국은 IMF로 가기 전 실제로 일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IMF금융위기는 다른 말로 아시아금융위기로 불릴 만큼 아시아 전체적 위기였습니다. 홍콩의 금융시장도 어려워지면서 일본도 위기감을 느꼈죠. 그렇기에 일본은 한국의 도움 요청을 거부합니다.
미국에게 도움 요청하는 방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IMF 자체가 미국의 부속 기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15년 기준 미국의 IMF 내 지분은 16.47%에 달할 만큼 미국의 영향력은 큽니다. 즉, IMF가 존재하는 한 미국에 도움을 요청할 경우 어차피 IMF로 유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마치 현실적 방안인 것 마냥 표현되고 있습니다.
팩트가 왜곡되자 한시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걸 넘어 영화 자체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경제 영화의 기본은 신뢰인데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는 음모론의 방점을 찍습니다.
결국 한시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차관 및 기득권 카르텔은 개인의 이익도 추구하기 위해 IMF 구제 금융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미국 재무부 차관이 등장하죠. 거기다가 엮어 IMF 총재(뱅상 카셀)의 요구도 매우 급진적입니다. 이에 대해 한시현은 경제적 주권을 뺏기 위함이 아니냐며 해명을 요구합니다.
일단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IMF의 요구는 과했습니다. IMF 구제금융 직후 실업률은 6.9%로 치솟았으며 비정규직 등 나쁜 일자리도 증가합니다. 영화는 갑수와 아내를 통해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갑수는 자살을 시도하고 아내는 비정규직 혹은 해고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경제적 주권을 뺏기 위해 뒀다는 영화의 설명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미국의 재무부 차관이 호텔에 묵었다는 것으로는 다 풀리지 않습니다. 정황만 있죠. 특히 아까 설명했듯 IMF 구조 자체가 미국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한국은행 간부급이라면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한다면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라토리엄을 다루는 방식도 와 닿지 않습니다. 한시현은 IMF와의 협상이 일방적으로 이끌리자 모라토리엄이란 수단을 선택합니다. 즉, 국가 부도를 선언함으로써 미국에게 경제 주권을 뺏기지 않고 채무 변제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거죠. 즉, 외채들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내수 시장에만 기대는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모라토리엄이 현실적인 방안인지, 그리고 IMF 구제 금융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인만큼 더 정확히 논증해내야 하는 데 말입니다.
실제로 정부는 모라토리엄 선언은 검토도 하지 않았습니다. 즉, 한시현과 직원들의 행동은 모조리 팩션도 아닌 ‘픽션’인 거죠. 하지만 모라토리엄 선언이 필요했다는 주장은 있습니다. 제임스 크로티 교수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IMF의 요구가 파괴적이라면 IMF 구제 금융을 받지 않고 말겠다는 위협을 했어야 했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크로티 교수의 주장은 정말 모라토리엄을 가자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가 모리토리엄을 꺼낸 이유는 너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협상에서 하나의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렛대 역할을 하는 거죠. 즉, IMF 관리 체제에서 아예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아닙니다. 영화는 마치 그러한 수단인 양 묘사하고 있지만요.
실제로 경제 위기 속에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내수 시장을 중점적으로 돌려야 하는데 러시아는 한국보다 내수 시장이 잘 발달 돼 있습니다. 인구 수 자체가 많기 때문이죠. 또한 군사력도 강한 국가였기에 배 째라 식 모라토리엄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배 째라 하면 강대국들이 무서워할까요, 아니면 배가 째질까요?
애매한 팩트와 팩트 왜곡으로 이야기를 끌고 왔는데 영화는 급작스레 ‘교훈’을 남기려 합니다. 불어나는 가계 부채를 언급하면서요. 하지만 이 부분도 관객을 설득시키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IMF금융위기와 가계 부채는 사안이 다릅니다. 가계 부채와 외환은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역대를 논할 만큼 건전합니다. 또한 가계 부채는 이후 한국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뿐 직접적인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되긴 힘들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이렇듯 한시현을 중심으로 한 축의 이야기는 불친절하고 팩트에서 벗어난 지점도 많습니다. 왜곡으로 이야기를 끌고 오다가 교훈을 주려고 하니 그 교훈에 선뜻 공감하기도 힘듭니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차가운 영화였어야 했습니다. 금융계의 윤정학과 관료의 한시현을 끌고 왔다면 더욱 그래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사실과 수치를 중심으로 서사를 촘촘히 짤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차가워야 하는 장면까지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한시현과 차관은 시종일관 불꽃 튀며 갈등을 빚어냅니다. 심지어 한국은행 직원과 차관은 멱살잡이까지 합니다. 차가워야 할 영화에서 멱살잡이라니...
영화는 분명 초반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지금 나오는 내용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아닐 수 있다니. 영화적 허용이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 책임을 지기 싫다면 애초에 모던타임즈처럼 따뜻하게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사실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두는. 더욱 안타까운 건 이 영화가 갑수라는 인물에는 조명을 잘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갑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당장 빅쇼트와 같은 결과물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게 내세울 만한 경제 영화가 없다는 건 아쉽습니다. 소리 지르고 울고 종이를 던지는 게 반드시 영화에 포함될 필요는 없습니다. 잔잔함이 주는 강력한 이야기, 그것이 경제 영화가 추구해야 하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부도의 날’을 기점으로 더 좋은 경제 영화가 탄생하기를 바랍니다.
경제 영화 3편을 살펴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관련 자료도 많이 찾아봐야 해서 공부도 되고 체력은 줄어드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시 코로나19가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3단계 거리두기도 고려한다고 하던데, 걱정이네요. 가슴도 졸여오는 것 같습니다. 졸여온다라... 그러니 가슴을 졸여오는 스릴러 영화를 보고 싶네요. 또 의식의 흐름이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엔 좋은 스릴러 영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