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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수 Nov 23. 2021

화요 영화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위를 달리는 희망이라는 전차

2015년 여름, 극장가에는 어떤 소문이 돌았다.

 ‘처음 장면이 시작하고 5분 동안은 팝콘조차 먹을 수 없다’, ‘빨간 내복이 갖고 싶어 지기는 처음이다’,

‘뛰는 영화 위에 나는 감독 있다’ ‘감독의 한풀이다’ 등등.

 모두 한 영화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이 화제만발의 영화가 늙은 거장, 조지 밀러의 모든 걸 쏟아부은 <매드 맥스>(2015)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영관에서 함께 달려본 분노의 도로.

그들의 광기 어린 분노에 동참하려면 우선 한 남자와 친해져야 한다. 본명 맥스. 닉네임 ‘매드 맥스’로 불리는 ‘미친 맥스’다.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22세기. 보이는 것은 오로지 사막뿐인 곳에서 맥스는 아내와 딸을 잃고 여기저기로 떠도는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과 기름을 차지하여 얼마 남지 않은 인류를 지배하는 독재자 임모탄과 그에 맞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령관 퓨리오사와 엮이면서 그의 방랑에는 ‘길’이 생기고, ‘목표’라는 것이 세워진다.

 
퓨리오사가 솟구치는 화염과 거센 모래 폭풍 속에서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희망’이었다. 그녀를 따라나선 맨발의 여인들은 암담한 현실을 유일하게 밝혀주는 ‘희망’, 그 자체다. 그래서 퓨리오사는 육중한 전차를 몰고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쪽 팔이 없는 장애를 딛고, 총이야 원래 한쪽 팔로도 충분히 쏠 수 있다는 듯 거침이 없다. 이들의 ‘희망’은 가야 할 곳도, 가야 할 이유도 상실했던 맥스에게까지 스며든다. ‘어떻게든 살아남자’, 이 여덟 글자만이 전부였던 맥스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남아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변화한다.

 이들이 미쳤기보다는 세상이 미쳤다고 해야 맞다. 아들을 낳기 위해 건강하고 젊은 여인들을 가둬 놓은 채 무력으로 통제하는 왕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또한 맹목적으로 독재자를 따르는 신인류 워보이 군단도 마찬가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상식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몰상식’이다. 그래서 퓨리오사와 맥스는 그들과 똑같이 ‘미치기로’ 작정한다. 무모하고, 다소 폭력적이어도, 그러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겪는 등장인물은 맥스도, 퓨리오사도, 임모탄도, 젊고 건강한 여인들도 아니다. 임모탄에게 복종하던 워보이, ‘눅스’다. 눅스는 그저 피 튀기는 싸움에 흥분하고, 옆에서 달리던 자동차가 폭탄에 맞아 날아가는 상황에도 ‘끝내주는 날이다! 정말 끝내주는 날이야!’를 외치는 전형적인 철부지였다.

 하지만 그는 퓨리오사 일행에게 붙잡히면서 중2병을 앓던 소년이 뒤늦게 의젓해지는 것처럼 철이 들고, 한 뼘 성장하기까지 했다.

 산전수전 겪었으니, 더 이상은 광활한 사막에 분노의 도로라는 살벌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뭐, 살아가는 일은 광기를 부르게 하고 분노에 젖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힘든 싸움에서 돌아온 지금은 그것들을 이겨내고 즐길 수 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단단하고 거대한 전차의 엔진이, 그들의 가슴속에서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거기 그대, 이제 안심하고 팝콘을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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