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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Jan 13. 2023

디올이 상하이 전통가옥과 만나면 생기는 일

상하이 전통 건축물의 업싸이클링 장원(张园)

상하이를 건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그 또한 내용이 상당할 것이다. 상하이가 지구상에 존재한 것은 오래되었으나 지금의 상하이를 형성하는데 유의미한 역사가 시작된 것은 근현대사인지라, 당시의 생활상이 담긴 '스쿠먼(石库门)' 가옥이 상하이의 대표적인 전통 건축 양식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이 거주지였을 때의 생활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어 다른 생활 양식을 경험한 각각의 세대를 이어주고 있다.

중국이라는 대륙에 담긴 긴 이야기에 비하면 상하이의 근현대사는 점과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 하루의 나에게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온 가옥의 형태는 신비로운 대상이다. 청나라 말기 여러 가지의 외부와 내부의 급변하는 상황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스쿠먼을 풀어 말하면 돌로 만든 창고인데 돌로 쌓인 아치 모양의 문과 벽돌로 촘촘히 세운 벽의 형태가 특징이라 생김새를 그대로 따 붙인 이름이다. 당시 중국 남부의 건축양식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상하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건축양식이다. 청나라 말기를 거쳐 민국시대에 서양 인구가 유입되고 근처 농촌 지주들이 농민봉기를 피해 상하이로 몰리면서 상하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에 따라 주거지가 부족해지면서 당시 이런 스쿠먼 형태의 가옥이 많이 지어졌고, 또 그것도 부족해서 한 집에 여러 세대가 층과 방을 나눠 살게 되는 형태도 생겨났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지어진 주택인지라 한 구역에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각 주택이 자리를 잡으며 서울로 치면 쌍문동의 골목 문화 같은 상하이의 '농(弄)‘ 문화가 생겨났고 그렇게 상하이런(上海人)의 삶이 한 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상하이의 '농(弄)'이 유지 보수를 거쳐 깔끔하고 멋진 작은 길이 되었다. 

이렇게 도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스쿠먼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서 또 한 번 도시의 핵심 정체성이 되고자 한 세기 만에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바로 요즘 도시 공간 구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업사이클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상하이 시민들의 주거지로 쓰이던 스쿠먼이 요즘 대중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상업복합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외형과 본질적인 건축의 요소는 살리되, 이곳의 용도가 주거지에서 상업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입점하여 저마다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첫 번째 주자가 신티엔디(新天地)였다면 2022년 끝자락에는 장원(张园)이 대열에 올라 지금 상하이이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기분 전환의 장소로, 영감과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있다. 


난징시루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장원(张园)에서 지금 가장 화려하고 럭셔리한 포토스폿은 바로 여기가 아닐까. 장원의 한 채에 통 크게 자리한 디올 매장 앞에 눈꽃과 태양을 결합한 것 같은 큰 해님눈꽃이 떡하니 상하이 겨울의 또 다른 장면을 만들고 있다. 중앙에 원은 지구본이라 지구의 자전을 표현하듯 계속 돌아간다. 명품 브랜드에게 종종 고마울 때는 이런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돈 걱정 없이 펑펑 쏟아부어 현실화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그게 홍보고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브랜드 입장에선 꼭 해야만 하는 일일지라도 일상을 사느라 상상이라는 단어와 점점 멀어지는 내 생각의 범주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특이하고 가끔은 괴상하기까지 한 생각의 실현. 그런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극이 되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영감이라는 것도 그런 식으로 오니, 나는 앞으로도 좋은 브랜드들이 돈을 많이 벌어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런 괴상하고 기이하고 유별난 홍보, 아니 작품 활동을 많이 벌였으면 좋겠다. 장원의 모습과 이질감이 있는 듯 어울리는 설치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백발이 되었을 그때의 상하이 소녀가 꿈을 꾸며 자랐을 스쿠먼 가옥 동네, 장원에 이제 더 이상 소녀는 살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 새로운 흐름을 따라 자본을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휴식과 추억을 선사하는 장소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옛날을 추억하는 장소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만끽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이것이 장원이라는 상하이의 거주지를 더욱 오래 유지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차분히 이곳을 거닐다 보면 타지에서 만나는 정서의 환기와 낯선 친숙함에 마음이 채워져 또 다음의 하루를 힘차게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아, 커피계의 명품, 블루보틀이 만들어 내는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일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로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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