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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하이 바나나 Jan 18. 2023

빨간 토기가 장악한 중국 마트에서 만난 손흥민

해외생활이 무료해질 때 나는 허마선생을 가

비상이다. 질문 폭격기가 되게 만들었던 읽히지 않는 한자가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와 다른 것들을 보아도 시큰둥하다. 자고로 모르는 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타지살이라 새로운 것을 보고 '무엇일까'와 '왜'를 궁금해하는 것이 해외 생활의 재미인데, 질문이 생기지 않으면 그 재미의 반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어떤 이유에서 시작한 해외 라이프일지라도 그런 현상은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손해다. 그게 해외 생활 몇 년 차든 말이다. 다시 어린아이의 눈으로, 어린이의 안경이라도 껴야 한다. 해외여행을 재미있고 신나게 만드는 큰 요소는 아무래도 모르는 거 투성이인 나의 무지함에서 시작하니 즐거운 해외라이프를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하다.



처방전은 간단하다. 평소 내 일상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던 곳,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나를 넣는 것이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중국 마트 가기를 추천한다. 외국에서 들어온 브랜드가 아닌 중국 현지 브랜드, 허마센셩(盒马鲜生)이 가장 적절하다. 사실 배달의 민족은 중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배송이 편리한 중국에서 나는 주로 앱으로 장을 본다. 집 주변에 갈만한 마트가 딱히 없기도 하지만 바쁘다 바빠 현대인에게 대형마트에 가서 주차를 하고 장을 보고 교통 체증을 뚫고 집에 와서 소분하고 나누고의 과정은 고되다. 그게 데이트가 아닌 이상 말이다. 그래서 마트에 가는 목적은 뭔가 구경하고 싶을 때, 또 이렇게 익숙함에 젖은 내게 새로운 처방이 필요할 때다. 앱을 통한 배송이 편리하긴 해도, 매장에 직접 가서 보는 장이 주는 재미를 이길 수는 없으니 마트로 가자.



가길 잘했다. 손흥민을 만났다. 라면 매대에 열과 횡을 맞춰 서있는 여러 브랜드의 라면 중 국민 영웅 손흥민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것 같은 라면이 시선을 끌었다. 바로 신라면이다. 농심은 신라면과 백산수로 대륙에서도 계속 영업을 해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국민 영웅 얼굴까지 달고 나오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지인들에게도 그만큼의 인지도가 있는지는 이 대륙이 인구가 워낙 많고 세대별 도시별 문화가 너무 달라 '인지도가 있다'라고 확언할 수 없으나, 대기업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땐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으리라 신뢰하며 신라면 한 봉지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중국 요즘 마트 흐어마 또는 허마(盒马)는 정말 하마라는 뜻을 가진 마트로 알리바바의 신유통의 효자 브랜드다. 허마가 배달 가능한 지역을 가리켜 허세권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는데 물건의 품질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합리적인 가격과 로컬 제품과 수입 제품의 적절한 비율로 요즘 구매자들의 삶에 깊이 들어온 마트다. 사실 허마의 매력포인트는 매장 직접 구매의 편리함 만큼 앱을 이용한 배송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고기는 코스트코 기타 등등은 허마를 이용하면 식재료장은 문제없다.

야채에 관한 모든 정보는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볼 수 있다. 훠궈의 나라답게 훠궈 밀키트 코너가 따로 있다. 꼭 코너가 아니더라도 냉동 고기들은 훠궈 재료용으로 잘 손질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귀한 마오타이(茅台)나 멍쯔란(梦之然)도 동네 술처럼 진열대에 늘어서 있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중국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한다. 아무리 상해 물가 비싸다 해도 이 저렴한 야채와 과일 가격을 보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야채도 많다. 중국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요리에 들어갔던 재료들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야채마다 이름을 보면 처음 보는 한자에 드디어 호기심이 생긴다. 생활과 동떨어진 학습은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 반대로 내 생활 속 모든 글자는 그렇게 의미가 되어 내 사전에 들어온다. 어느 새 익숙해진 무인 결제도 새삼 이 기계 참 똑똑하네 하며 무섭고 새롭다. 그리고 종종 보이는 신라면, 비비고, 뽀로로 음료 같은 K-푸드를 보면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몇몇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외에 손님이 별로 없어 마트가 한산해도 여기 장사되냐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듯 모두 앱으로 주문하고 있을 거라 주문서를 보고 배송을 준비하는 직원들이 분주하다. 새해와 춘절 시즌이라 붉은 토끼들이 인형으로, 포장지로, 포스터로 다양하게 마트를 장악했다. 나도 하나 사서 붙여 볼까 싶은 마음에 토끼 한 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잠깐 여행객의 시선으로, 관찰자의 관점으로 봤더니 매일 가는 마트도 재미난 놀이터가 되었다. 중국 허마 매장이 주는 다채로운 자극은 그렇게 나의 해외생활 무료함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해외살이건 국내살이건 사실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에서도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 평소 가던 길 말고 다른 길로 간다거나, 평소 마시던 음료 말고 안 먹던 거 주세요 하고 새로운 음료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느 드라마의 엔딩처럼 그렇게 즐겁고 괜찮은 오 초가 쌓이고 또 일 분이 쌓여 오늘도 즐거운 하루였다고 일기에 적는다. 누군가 중국에 온다면 꼭 허마를 추천해야지!도 잊지 않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 흥민이형, 상하이에서 응원해요!로 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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