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호 상하이 May 23. 2023

지금만 먹을 수 있는 중국의 이상한 과일

5월이 깊어지면 왔다 가는 상하이의 제철과일 양메이杨梅를 아시나요?

매년 그 의미가 깊어지는 단어들이 있다. 나에게는 '제철'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학생 때나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매년 찾아오는 절기를 따지고 기념하고 챙기는 일은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철 따라 자연의 손길을 즐기는 것은 어른들의 일이었다. 목표를 향해 온 전력을 쏟아 달려가는 이에게 절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산물은 집중과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고속도로 위의 초보 운전자에게 중요한 건 도로 옆으로 지나가는 산과 들이 아닌 큼직하게 방향과 남은 거리가 적힌 표지판인 것처럼 말이다. 경치는 중요하지 않다며 열심히 밟았더랬다.


돌이켜보면 정신력이었다. 피어나는 벚꽃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고, 불어오는 봄바람이 어찌 살 끝에 닿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초보 운전자라 해도, 아무리 갈길이 멀어도,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초보 운전자도 사람인데 고속도로 옆으로 붉게 물든 단풍이 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뭐라도 이룬 뒤에 즐기자며 많은 제철을 미뤘던 것이다. 꽃이 피든 말든, 철에 따라 생물의 황금기가 오고 가든 말든, 의식적으로 무심했다. 해야 할 일 많고, 얻어야 할 것 많고, 이뤄야 할 것 많은 청년에게 '제철'은 사치였을 것이다. 절대적으로든 상대적으로든 그 열심을 속도로 수치화시키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사자는 열심히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초보 운전자는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멈추는 자리가 목적지라는 것을. 그리고 고속도로 말고 다른 길도 많다는 것을. 게다가 멀리 가려면 휴게소라도 들러서 스트레칭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그 지역 특산물로 만든 간식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이윽고 그의 운전의 목적이 바뀌었다. 도착이 아닌 길 위의 모든 여정을 즐기는 것으로 말이다. 콧노래도 불러 가면서. 


글쎄, 어른이 되었는가, 여유가 있어졌나, 그렇게 이번 생은 처음인 초보 운전자는 무시하고 외면했던 '제철'이라는 단어의 깊이를 알아가고 있는데 익숙한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만나는 제철은 더욱 새롭고 인상적이다. 때마다 계절을 알려주는 과일이 있는데 사는 곳이 바뀌면 그 과일도 바뀔 터, 상하이에 살면서부터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과일이 늦봄과 초여름을 알려주는 제철과일로 추가되었다. 바로 양메이杨梅다. 양메이를 소개하기 위한 서론이 참 길었다.


양메이, 영문이름 왁스베리, wax berry 또는 베이베리 bay berry


5월이 깊어지면 만날 수 있는 이 녀석은 그 기간이 매우 짧아 보일 때 먹어야 한다. 남쪽이라 사계절 내내 과일이 풍부한 이곳에서도 제철은 명확하다. 양메이는 딱 이때만 나오고 이 철의 양메이가 참 맛있다. 외관은 그다지이다. 처음 보는 이에겐 징그럽다는 인상마저 준다. 매력적이지 않은, 어쩌면 불호(不好)에 가까워 보이는 외관은 그 맛이 너무 좋아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거르려는 조물주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 과일 맛에 대한 평은
 다르겠지만, 새콤하고 달콤함이 참 적당하고 씹히는 질감이 물컹도 딱딱도 아닌 딱 중간이라 있는 자리에서 한 바구니를 먹는 나는 5월 중순과 6월 초에 상하이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양메이의 맛을 꼭 한 번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굳이 작년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녀석의 제철에 우린 봉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도 먹을 수도 없던 귀한 과일이었다. 어쩌다 구호품에 있거나,
 너무 먹고 싶은 마음이 단지 별로 모여 공동구매를 해야 만날 수 있었던 과일이다. 지나고 나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양메이가 제철일 때 상하이의 인간 세계에는 봉쇄가 제철이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자유롭게 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만난 이 녀석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작년엔 때를 놓쳐 못 먹은 이 녀석. 그러고 보니 수많은 돌기를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닮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하며, 2년 치를 야무지게 먹어야지 하고 한 바구니를 샀다.



과일집 사장님은 난전에서 한가득 자리를 펴고 쫑즈粽子를 만들고 계셨다. 쫑즈는 찹쌀에 돼지고기, 달걀노른자, 대추 등을 대나무잎으로 싸서 만든 일명 찰주먹밥으로, 초나라 시인인 굴원이 자신의 충언에도 기울어져가는 형국을 개탄하며 강물에 몸을 던지자, 사람들이 굴원을 찾기 위해 배를 띄우고 그의 시체가
 물고기 밥이 되지 않길 바라며 물고기에게 밥을 던진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5월 말부터 단오(초닷새)까지 먹는 음식이다. 이파리를 말고 찹쌀을 넣고 갖은 재료를 넣어 손, 입을 모두 이용하여 실로 꼭 동여매는 사장님의 손놀림이 장인급이다. 양메이에 이어 쫑즈를 만드는 사장님 덕분에 6월이 다가오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양메이철이 지나고 단오가 지나면 장마철이 시작된다. 그렇게 상하이의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여름은 또 누구의 제철이 될까. 



알맞은 시절이라는 순우리말, 제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렇게 조금씩 깊어진다. 별일 없는 하루가 무료하게 느껴지다가도 다음 계절엔 누가 제철일까 기다리며 철을 느끼고 날씨를 감상하고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하루가 참 사랑스럽다. 인생에도 제철이 있을 테지.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발아하고, 줄기가 크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지고, 떨어지고, 그런 자연의 순환 속에 사람도 있다. 제철. 알맞은 시절이다.  





양메이 杨梅 먹는 방법


1️⃣한번 흐르는 물에 씻는다.

2️⃣소금물에 5분 정도 놔둔다. (혹시 모를 벌레를 위해, 시간이 넉넉하면 20분 정도를 추천한다고 함)

3️⃣한 방향으로 휘휘 저어준다.

4️⃣깨끗한 물로 헹군다.

5️⃣키친타월로 닦아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천지가 중국에서 하는 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