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호 상하이 Oct 23. 2022

대륙의 몸빼바지가 주는 격려와 위로    

상하이의 아침 인생 수업

상하이 할머니나 서울 할머니나 몸빼바지와 화려한 패턴으로 대동단결



타지에서 맡는 익숙한 향기

부지런을 떨어 이른 아침, 시중심 거리를 나가보면 그때만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힙하다는 신조어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있었고 오랜 시간 이 동네의 삶의 기반이었던 생활방식, 라이프 스타일이 칠해진 형형색색의 그림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부터 타지에서 뭔가의 낯선 익숙함을 느낀다. 내가 나고 자란 마을이 아닌데도 뭔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다. 어쩌면 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본 장면과 비슷해서 그런 친근함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나라와 문화가 달라도 먹고, 자고, 사고, 팔고, 사랑하고, 울고, 웃는 삶의 흐름은 인간이라는 공통점에서 하나이니 말이다. 그렇게 분주히 성실히 꾸준히 부단히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꽤 멋지다.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곳에 가면 시장이나 슈퍼를 들러 본다. 현지의 전통이나 특색은 읽을 수 없는 대형마트일지라도 진열된 상품을 보면 그곳의 대중적인 면이나 주류의 감각과 생각을 볼 수 있어 좋고, 정신없고 복잡한 재래시장에서는 외국인이나 해외라는 개념보다 확장된 삶의 터전이 주는 에너지에 한껏 힘이 나기도 한다. 물건을 진열하고 사고팔고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보는 이의 마음 저변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미지, 소위 추억이라 말하는 여러 장면이 떠오르면 더 그렇다. 




현금이 돌아다니는 시장의 목소리

익숙한 듯 새롭고 새로운 듯 익숙한 분주한 도시의 아침의 공기가 하루를 준비하는 정성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점점 데워진다. 요즘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종잇돈을 주고받으며 물건을 사는 모습에 몇 년 사이 삶의 방식이 참 많이 변했구나를 새삼 느낀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산지가 오랜 나는 채소 무게를 재고 쪽파 한 단 찔러 넣어주는 사장님을 보니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지낸 온도가 느껴져 정겹다. 아침 골목의 분주함이 주는 에너지가 있다. 삶은 계속되고 시간은 흐른다. 외부에서 오는 업무나 임무나 의무가 없어도 삶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정성으로 하루를 보내야 할 이유는 매일 있다. 문득 돌아온 뒤를 돌아보면 내가 남긴 족적이나 발자취가 어떤 성과로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삶을 산 것 같아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시간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대부분의 누구에게나 내면의 성장이라는 선물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에 일어난 성장이 분명해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을 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잠식되는 것이다. 원인을 더 찾아보면, 훌륭한 어른이 되겠다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미안한 어른이 된 것 같아 그런지도 모른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돌파구를 찾아 뚫고 나간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듣거나 읽거나 보면 박수와 존경이 마음속에서 나오다가, 이내 나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 들어와 그동안 나는 뭘 했나, 그런 생각이 기습하는데 그걸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울의 영향권에 들어가고야 만다. 그런 생각은 언제든지 습격한다. 다만, 그걸 어떻게 처리하고, 대응하고, 해치워야 할지에 대한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 하나를 나는 오늘 이 도시의 이른 아침에서 익히고 배웠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골목의 아침은 삶에 대한 평가 기준이 어떤 성취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고, 고작 네가 뭔가를 이루고 보여주고 이름을 남기는 것에 가치가 결정되는 그런 단순한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너는 감히 네 인생을 판단할 수 없다고, 누군가가 포근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주는 듯했다. 




온몸으로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는 '삶'

삶. 이 한 글자는 한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획을 다 갖다 붙인 것처럼 복잡하냐 생각했었는데 '사람'도 들어있고 복잡한 그 본질을 글자 자체에 최대한 나타내고 싶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아녔을는지 개똥 이론을 만들어 본다. 이 글자만큼은 한글이 표의문자라고 할 수 있을 확실한 근거가 아닐는지 개똥 논리도 더해본다. 아무렴, 외면적으로 보이는 어떤 특별한 일이나 성취가 없어도 하루를 기쁘게 살고 소중히 다뤄야 하며 들여다 봐줘야 하는 이유가 많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내 삶에게도, 하루에게도 사랑을 듬뿍 담아 말해주려 한다. 아이 예쁜 ㅅ ㅏ ㄹ ㅁ ㅏ. 물리쳐야 할 생각은 물리치고, 안아줘야 할 생각은 안아주며 하루를 살핀다. 훌륭한 어른은 더 이상 장래희망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의 삶에도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말해줄 수 있는 포근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를 가진 어른이 되길 바라며 뚜벅뚜벅 이 오묘하고 미묘한 삶을 걸어가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 드디어 중국 상하이에도 요즘 K-식당, K-푸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