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아'

영화 '이터널 선샤인'

by 이미연

아침부터 머리가 멍하고,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불쾌한 아침. 출근 열차를 기다리던 조엘은 안절부절못하다 전력질주를 해 반대편 기차에 몸을 구겨넣는다. 상사에게는 식중독에 걸렸다 전화를 걸어 결근을 알렸다. 그렇게 도착한 몬타우크 해변.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오렌지색 후드티에 파란색 머리 여자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식당에서도 되돌아오는 열차에서도.


'기억을 지울 수는 있어도 사랑은 지울 수 없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법한 무모한 상상을 그린다. 충동적인 성격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조엘(짐 캐리)과의 심한 말다툼에 기억을 지우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엘 역시 기억을 지우기 위해 그 병원을 찾는다.


영화는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연애시절을 되짚는다.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을 모조리 모아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읊으면, 뇌파를 추적해 일종의 '기억 회로'를 저장한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난 밤, 조엘이 잠든 사이 병원 직원이 집으로 찾아가 그 회로대로 기억을 지우는 것.



하지만 조엘은 기억을 지우기 시작하자마자 이 모든 것을 후회하게 되고, 기억 속의 클레멘타인과 함께 ‘추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도망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점점 허물어지는 추억의 벽 앞에 속수무책이다.



Remember me. Try your best.

기억이 모두 지워지던 그 순간 클레멘타인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몬타우크 해변에서 다시 만나자고 속삭인다. 결국 그녀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된 조엘. 하지만 바로 그 아침.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났던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은 추억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당장 내가 사랑한 사람과의 기억이 한 순간에 몽땅 사라진다면, 다시 그 사람과 사랑하게 될까? 그런 본능적, 운명적인 끌림이 정말 존재할까? 이 명제에 대해 감독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운명처럼 두 사람을 끌어 당기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고.



이 영화를 처음 본건 2009년. 추천을 받아 DVD로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야기 순서를 맞춰보느라 정신없었다.

두 번째 봤을 땐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엉엉 울면서 봤다. 그리고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그 사람을 왜 만났을까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가득 찼던 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뜨겁게 날 찌르던 상처도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몽상가'인 감독 미셀 공드리의 환상적인 영화적 기법과 그가 숨겨놓은 이야기 퍼즐들을 찾으며 봤다. 기억이 지워진 클레멘타인에게 무시당하며 걸어나와 친구의 집 계단에 털썩 앉는 원테이크로 찍힌 장면, 때때로 바뀌었던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 어린 시절 묻어두었던 상처를 도닥이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장면…. 언제 봐도 뭉클한 행복한 영화였다.


그렇게 가슴속에 꽁꽁 숨겨둔 보물 같은 영화가 2015년 11월 5일. 개봉 10년 만에 재개봉한단다. 가슴이 부르르 떨렸다.


나만 알고 싶은 사랑스러운 영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영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설렜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 이번엔 꼭 스크린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