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윙 보트(swing vote)'
'나와 가족을 위해 투표하세요' '당신의 한 표는 소중합니다'
선거 때마다 볼 수있는 문구들. 딱히 가슴에 와 닿진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
흔히들 말한다. 선거에서 국민의 권리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에 있고, 그 한 표 한 표는 매우 소중하다고.
나는 궁금하다. 내 한 표가 정말 그렇게 중요할까?
이 영화는 그 의문에 "응 당연히 중요하지"라고 말한다. 이어 "왜 중요한 건데?"라는 반문에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도 명확하다. 국민의 정치의식 부재는 곧 국가의 적이며, 투표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스윙보터란? swing voter
선거 등의 투표행위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윙보터들은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게 된다.
정치엔 전혀 관심 없는 싱글대디 버드. 그의 12살 딸 몰리는 매우 똑똑하다. 딸이 아빠를 키우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들은 미국의 작은 도시 텍시코에 산다. 버드는 별다른 직업 없이 낚시와 맥주를 즐기며 빈둥거리는, 한량과도 같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어떻게 미국을 뒤흔들 인물이 됐을까?
바로 대통령 선거일, 몰리는 학교 숙제로 투표용지를 내야 했다. 아빠에게 투표를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지만, 버드는 술에 취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몰리는 선거장에 몰래 들어가 투표를 하려 한다. 하지만, 선거시스템의 오류로 무효표가 되고. 선거법에 따라 버드에게만 10일 안에 재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게 된다. 바로 그 한 표가 공화당 소속 현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게 되는 마지막 표가 된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딸 몰리의 에세이 발표를 들어보자.
똑 부러지는 몰리의 발표. 내가 태어난 건 1987년.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한 시기다. 나의 엄마·아빠, 그 윗세대의 희생과 용기로 이루어낸 자유의 시대. 우리 세대는 그 속에서 풍요롭게 잘 자라났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자마자 '신자유주의'라는 유례없는 경쟁체제 속에 내던져진 불운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삼포세대, 청년실업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더니 자조를 넘어 자학의 뉘앙스가 풍기는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말이 뉴스에서도 나온다. 몰리의 말처럼 우리 시대가 "풍요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다시 속박으로 향해가는 것 같다.
다시, 영화 줄거리로 돌아가 보자. 차기 대통령 결정권을 쥐게 된 버드, 처음에는 그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어리둥절해한다. 언론매체들은 그의 집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일거수 일투족을 속보로 내보내기 바쁘다. 피자를 배달하고 나오는 배달원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배고파 보였다는" 대답이 breaking news로 전해질 지경이다. (유대균이 몰래 숨어 지내는동안 치킨을 시켜먹었었다는 한 매체의 단독기사가 떠오른다.) 거기에 양당의 대선 캠프 사람들은 오직 버드를 위한 캠페인을 시작하고, 대통령 후보들까지 직접 나서 달콤한 유혹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좀처럼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결정권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던 버디. 우연히 미국 전역에서 그의 집으로 날아온 편지들을 읽게 된다. 불법 이민자 문제, 동성애 문제, 생활고 문제 등 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왜 자신의 한 표가 중요한지 깨닫게 되고, 각 이슈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막바지, 버드는 재투표를 하기 전, 대통령 후보 초정 토론회를 제의한다. 사회자로 나선 그는 천천히 힘주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희망과 꿈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알코올중독에 빠진 부인, 밀려오는 멕시코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등 어느 날부턴가 뒤쳐지고, 삶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정치에도 무관심해졌다며 고백한다.
"평생 그다지 대단한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 어긋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꿈이 없진 않았습니다. 저도 한때 믿음이라든가 희망처럼 인생을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 밤 저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아버지이자 시민입니다. 봉사도 희생도 할 줄 몰랐고, 가장 큰 의무라고 해봐야 관심 갖고 투표에 참여하라는 것뿐이었지요. 미국에 진짜 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저일 겁니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버디는 누구에게 투표할까. 공화당? 민주당? 아쉽지만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보여주지 않는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 같지만,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다 했다. 바로, '시민 의식'과 대통령의 의미.
감독은 극적인 상황을 가정해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 친절하고 재미있게 설득한다. 하지만 버드의 입을 빌려 나랏일에 무관심한 시민은 한 나라의 적이 된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덧붙여, 시민 의식을 지닌 그가 원하는 대통령 상에 대해서 말하는 마지막 부분은 가슴이 뜨거워 지리만큼 공감 간다. 개인의 욕망과 이익이 아닌 나라의 안녕을 위하는 대통령, 큰 재난과 재해로부터 빠른 판단력과 지휘력으로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대통령, 혜안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며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있는 그런 '거인 같은 대통령'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 절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