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S2 #4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즐겁게 보고 있다.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와 행복한 철학자, 파콘, 귀염둥이 짠이 그리고 펀자이씨 툰(@punj_toon)을 그려내는 매력 만점 엄유진 작가님의 이야기다. 종이에 연필로 그린 귀여운 그림으로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것 같지만 그 내용이 평범하지 않다. 어쩜 가족 구성원 한 분 한 분 다들 그렇게 매력이 있는 걸까.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시지만 위트가 넘치는 어머니, 철학자이자 로맨티스트인 아버지, 장인어른의 친구가 된 남편 파콘, 그리고 작가님의 오빠와 동생도, 귀염둥이 짠이도 작가님의 연필을 거치면 곧 멋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어느새 펀자이씨툰의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내 모습이란.
엄유진 작가님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책, <행복한 철학자>를 읽었다. 이 책은 원래 2007년 출간되었다 절판된 어머니 우애령 작가님의 에세이에 엄유진 작가님의 펀자이씨툰, 아버님 엄정식 교수님의 편지를 더한 개정증보판이다. 제목인 <행복한 철학자>는 우애령 작가님이 관찰한 남편 엄정식 교수님이다. 행복한 철학자를 보고 사랑과 존경을 담아 쓴 뒷담화(?)에 유머를 더한 그런 재미있는 글이다. 펀자이씨툰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내 가족 이야기처럼 빠져들어 읽게 된다.
책은 오리와 철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해 철학자를 소개한다. 그리고 행복한 철학자의 가족 이야기, 유학 시절 이야기, 제자들 이야기, 그리고 시골에 마련한 작은 집 이야기까지 미니멀리스트 아내가 관찰하는 맥시멀리스트 철학자의 행동은 귀엽고 엉뚱하다. 아파트에서 키우는 오리라니! 가만히 읽다 보니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렇게 오래도록 지켜보며 이야기를 써오시니 그 글에서 행복한 철학자를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행복한 철학자는 유쾌한 책이기도 하지만 감동과 철학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부가 주고받는 대화가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가끔 책장 넘기기를 멈추고 생각하게 만든다.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인생에 한 선을 그어 칠십이라고 한다면 십 년 살면 십 년을 죽은 것이요 이십 년을 살면 이십 년을 죽은 것이니,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P.156
소비가 미덕인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린 적도 없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외로워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욕망이란 채워 질 수록 더 크고 강해져 실로 막강한 힘으로 우리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일 것이다. p.251
책에서 핵심을 잘 뽑아 내용에 매력을 더하는 게 바로 그림이다. 연필로 쓱쓱 그려낸 그림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좋은 걸까. 나도 이런 일상의 순간을, 책의 핵심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이렇게 그려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만 같다.
주변을 더 관찰해야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의지하는 친구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조금 더 가까이, 자세히, 오래 보고 마음을 담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