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50 #46
중국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학교 급식이 너무 향이 강하고 맛이 없었고, 심지어 현지에서 파는 라면조차도 먹기 힘들었다. 어느 날 급식에 계란 볶음이 나와서 이건 먹을 수 있겠다 하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거기 토마토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 나에게 토마토는 설탕을 뿌려 먹거나 사과나 다른 과일과 함께 갈아 주스로 만들어 먹는 과일 같은 거였다. 따뜻한 토마토는 파스타나 피자 소스 정도였달까. 하지만 뜨거운 기름에 계란과 함께 볶은 토마토가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처음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생소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식재료마다 다양한 조리법이 있다. 망고나 바나나가 디저트가 아닌 요리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다양한 식재료의 기원과 조리법을 경제학 이론에 접목했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으로 유명한 장하준 SOAS 런던대 교수가 쓴 새로운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원제: Edible Economics)에서 그는 식재료를 매개체로 다양한 경제적 현상과 이론을 접목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마늘이 한국 음식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지, 영국 음식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단조로웠는지, 시간이 지나며 얼마나 영국에서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얼마나 다양해졌는지 이야기한다. 이런 식문화의 다양화와 반대로 경제학 분야에서는 다양한 ‘학파’들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로 연결된다. 하지만 서문에서 이야기하듯, 이 책은 ‘음식의 경제학’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경제학 이야기를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음식 이야기를 곁들였을 뿐이다.
내 음식 이야기는 아이에게 채소를 먹이기 위해 엄마들이 뇌물로 쓰는 아이스크림과 약간 비슷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채소가 나온다는 것이다. (괜찮은 거래 아닌가!) p.40
예를 들면 그가 가족들과 자주 해 먹는 엘비스 샌드위치—구운 빵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바나나를 썰어 얹은 다음 꿀을 뿌린 샌드위치를 통해 부자 나라의 힘센 기업—다국적 기업 또는 초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투자를 받는 상대 국가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뜻하는 바나나 공화국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규제를 낮추고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신고전학파’와 반대로 예전 한국이나 대만 정부가 하이테크 산업 부문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투자에 대해 각종 규제를 가해 최대로 기술의 이전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런 정책들 덕분에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부문에서 세계 수준의 다국적 기업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물론 모든 식재료 - 경제 현상의 연결이 자연스럽거나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경제학은 사회에서 자원의 생산, 분배, 소비를 연구하며, 이를 통해 경제 현상과 경제 체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따분한 학문일 것 같지만 사실 경제학은 시장과 사회, 국가, 경제가 발달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현재 경제학계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신고전학파‘가 주류이다. 어쩌면 경제학이 곧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인식될 정도이지만 7~80년대까지만 해도 다양한 학파가 각자의 이론으로 활발한 교류를 했다. 한 가지 이론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이론이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가 몸담은 세상 전체를 뒤집어엎고 주물럭거리는 것을 “절망 어린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방식에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원칙과 정부의 철학이나 정책이 일치하는가? 세계적인 거대 기업과 평범한 노동자가 공평하고 정당하게 세금 부담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어린이가 잠재력을 100퍼센트 발휘해 가장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의 가치가 공동체, 공동의 책임,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를 향상시키는 방향과 일치한다고 믿는가? 독자들의 답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P39-40
저자는 이 책에서 도토리, 오크라, 코코넛을 통해 편견을 넘어서고, 멸치, 새우, 국수 그리고 당근을 통해 생산성 높이기, 소고기, 바나나, 코카콜라를 통해 전 세계가 더 잘 살기, 호밀, 닭고기 고추를 통해 함께 살아가기, 라임, 향신료, 딸기, 초콜릿을 통해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제학 이론을 소화하고, 섞고, 융합하면서 내가 얻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나의 지적 친구들인 독자들과 이 책을 통해 함께 누리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의견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며 늘 질문을 던지고 여러 가지 이론으로 답을 찾아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