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모든 것이 이유였다

나를 나로 만들기 위한 길이었음을 받아들이는 맑은 순간, 운명.

by 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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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필사를 하다보니, 문득 지금까지의 내 삶이 떠올랐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살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중학교때부터 혼자 살았던 나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불편함을 느꼈고,

그래서 나는 혼자가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을 했다.

스스로의 리듬대로 살고, 스스로의 속도로 걸어가는 삶이 가장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식 중에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연락을 받은 부장교사가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다고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나가려는 순간,

"선생님만 애 있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싱글인 그 교장선생님은 주말마다 부장교사들을 불러 등산을 했다. 결혼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교장선생님을 만나면서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 질문은 결국 나를 결혼이라는 선택으로 이끌었다.





나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삶과 일이 거의 구분되지 않을 만큼, 나는 나를 태우며 달렸다.

그러다 이유없이 손가락이 붓고, 엑스레이를 찍으면 폐 한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고,

유산이라는 깊고도 쓰라린 사건을 겪으며 깨달았다.

직장은 내가 없으면 조금의 불편함은 있지만,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이고,

나는 그 안의 작은 부품이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미끄러지듯 나를 멈춰 세웠다.

그제야 비로소 나와, 나의 가족을 돌아보게 되었다.

오래 바라보지 못한 얼굴들, 미뤄두었던 온기들, 놓쳐버린 마음들.

그 모든 것들이 뒤늦게 손에 잡히듯 다가왔다.

결혼 이후 남편을 따라 이곳저곳 생활 근거지를 옮겨 다니며,

낯선 풍경 속에서 나는 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꼈다.

처음 마주한 공간의 서늘한 낯설음과, 그 낯설음이 가져오는 알 수 없는 설렘.

그 모순된 감정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변했고, 자라났고, 조금씩 지금의 나에 가까워졌다.




돌아보면, 이 모든 순간이 한데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혼자 살겠다고 믿던 마음까지도,

일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날들까지도,

가슴 저리게 아팠던 시간까지도,

떠나고 머무는 모든 공간까지도.

어쩌면 나는 운명의 손길에 떠밀린 것이 아니라,

그 손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억울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운명인가 보다’ 하고 툭 털어내는 체념이 아니라,

나를 나로 만들기 위한 길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어떤 맑은 순간.

오늘 필사한 문장이 내 마음에 길게 남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나는 작은 인간일 뿐이지만,

그 작은 인간의 하루하루가 나의 운명을 짓고 있었다는 사실.

받아들이고, 나아가며, 다시 나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결국 삶이라는 것.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조용히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혜롭게, 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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