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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ug 01. 2023

연봉 사천

"연봉이 사천만 원이래!"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가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무던하고 조용한 같은 과선배였다. 나와는 퍽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친구의 남자친구였기에 같이 밥도 몇 번 먹었다. 그 밖에 추억이라고는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5분쯤 수다를 떨다 헤어지게 전부였다. 그때도 매번 활발한 친구들 사이에서 묵묵히 있다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씩- 웃어주고는 했다. '웃을 때 보조개가 깊게 파이는 타입이네'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던 선배가 과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굴지의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단다. 취업시즌이 찾아오고 첫 번째로 들려온 합격 소식이었다. 그 후광은 대단했다. 어딜 가나 선배를 반겼고, 누구나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로 연봉과 함께 신입사원에게 제공된다는 패키지 같은 것들이 소문으로 떠돌았다. 난 사천만 원이란 돈을 일 년에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감이 없어서 막연히 우러러 보였다. 오며 가며 만난 그의 보조개가 한층 깊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내 앞에 거센 바람이 훅 느껴졌다. 난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유토피아 안에서 한 톨의 부유먼지처럼 유영하던 내 대학생활이 위기를 맞이하며 얼어붙었다. 꽃 향기에 취해 보송보송하던 시간 동안 주변 누군가는 부리나케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난 토익점수도 없었고, 학점은 그저 그랬으며, 어떤 직업을 가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결국 보기 좋게 취업에 낙방했다.

한 학기 동안 이력서를 100개쯤 넣었는데, 달랑 두 군데 서류 합격했다. 그중 한 군데는 인적성 시험에서 떨어졌고, 나머지 한 군데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계단 마냥 차근차근 한 단계씩 희망이 꺾였다. 그렇게 더 이상 대졸 공채를 모집하는 회사가 없어진 11월 말, 지난 한 학기 동안 분투했던 취업이 물 건너가 버렸다.


낙방 소식을 접한 아빠는 "괜찮아. 한 번쯤 실패할 때도 됐지. 인생에 가끔은 그렇게 실패하는 경험도 필요하다" 며 토닥였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난 쭈그러들었다.  짜서 물기 하나 없이 말라 비트러 진 느낌이었다. 초라했다.


슬프게도, 한가하게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다.

당장 이력서에 졸업생이 아닌 졸업 예정자로 남기 위해서는 한 학기만큼 졸업을 유예해야 했다.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은 그날, 은행으로 달려갔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만들기 위해 알바로 벌어놓은 얼마간의 돈을 펀드에서 빼 저축 계좌로 옮겼다.

졸업 학점을 맞추면 강제로 졸업이 된다. 그래서 일부러 2학점 짜리 영어 수업에 마지막 기말 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 기말 시험날, 학교에 머무는 게 어쩐지 못 견디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 칼바람이 부는 남산을 올랐다. 남산은 촌에서 온 내가 그 당시까지 가본 거의 유일한 산이었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케이블카도 타지 않고, 혼자 자박자박 어둑한 산을 걸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미 깜깜해진 서울을 배경으로 하나 둘 불이 켜졌다. 곧  끝도 없이 켜진 회사의 불빛이 잔치처럼 흩어다. 난시 덕에 빛이 더욱 퍼져서 펼쳐진 서울의 야경은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그 야경을 하염없이 보다가 다시 한번 치킨을 양손에 들고 울던 어느 날처럼, 뚝뚝 울었다. 이 수많은 불빛 속 수많은 책상들 가운데 내 자리가 하나 없다는 게 섬뜩했다.


그때부터 다시 취업시즌이 시작되는 3월까지 해야 할 일들은 선명했다.

토익 점수 / 기사 자격증 취득 / 면접 스터디 / 영어 회화 공부 /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 / 눈에 띄는 증명사진을 찍기 / 직종 별 자기소개서 만들기 / 각 회사의 비즈니스 공부하기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아니, 취준생이 되었다.

모든 유희를 희생하는 게 당연한 안타까운 시기.



그 대부분이 유토피아 이전의 고3으로 되돌아갔지만, 다른  하나 있었다.

난 더 이상 막연히 사원증을 목에 걸고, 정장을 입은 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내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았다. 그런 이미지 대신 내게는 친구 남자친구에게서 가져온 구체적인 숫자가 자리했다. 그 선배 정도의 연봉이면, 취업재수라는 초라한 타이틀은 잊힌 채 나 자신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하던 수필 대신

"연봉사천"이라는 글자를 포스트잇에 써 고시원 책상 머리맡에 붙였다.


숫자로 쓰인 목표가 꿈을 완전히 압도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 피천득, 은전 한 잎

목표를 이루는 데는 여섯 달이 더 걸렸다.

그저 연봉 사천이 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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