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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ug 06. 2023

만년부장이 되는 꿈

학창 시절 난 낮동안 세상이 조용할 줄 알았다.


졸음이 쏟아지는 5교시 윤리시간. 교실 안은 고요했다. 체육 하는 다른 반 아이들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도 삑삑 거리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만 아득하게 전해 졌다.

그래서 막연히 세상 사람들 모두 어딘가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같다.

회사를 가거나, 나처럼 공부를 하거나, 뭐 그런.

딱히 그들이 뭘 할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그저 세상이 조용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조퇴를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평일 낯의 세상을 만났다. 그리고 놀랐다.

그날따라 체육 하는 반도 없는 고요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교문을 나서 학교 담벼락 끝 모퉁이를 돌자, 학교 밖 세상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화를 하며 바쁘게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오토바이가 부릉부릉 거렸다.

버스를 환승하는 동안 떠들썩한 시장의 소음도 스쳤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목소리가 엉켰다.

골목에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걷는 젊은 이들의 웃음소리와 티브이로 스포츠 중계를 틀어놓은 동네 아저씨들의 이야기 소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학교에 머무는 동안에도 세상을 활기차고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당연한 광경인데, 낯설어서 한참을 멍- 하게 서있었다.

배가 아픈 탓인지, 머리가 조금 울렸다.




"만년 부장? 만년 부장이 꿈이라고?"

내 목소리가 조금 커진 것 같아 움찔했다.

"응. 난 스트레스받기도 싫고 뭔가 되기도 싫어. 그냥 적당히 월급 받으면서 오래오래 회사 다니는 게 꿈이야."

당황한 기색도 없이 조금은 귀찮은 말투로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실패'의 동의어 같은 '만년'이란 단어를 꿈에 이어 붙였다.

실패하는 꿈이라니. 내겐 너무 낯설다.

"그런데 넌 그러기엔 회사 너무 열심히 다니잖아. 회식도 꼬박꼬박 다 가고."

"부장까지는 안 뒤처지고 달아야지. 뒤처지기는 싫어. 그냥 이 텐션으로 오래오래 다닐 거야. 너무 성공하지는 않으려고."

아까보다는 훨씬 야무진 말투였다. 난 갈수록 머리가 아득해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납득되지 않았다.


'목표는 더 높게, 꿈은 더 크게' 가지라고 평생을 들었다. 그리고 충실하게 따랐다.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학교에서는 더 높은 점수를 취득하려고 애쓰고, 회사에서는 더 빠르게 승진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어지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발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심지어 우리 회사는 경쟁의 문화로 유명했다. 다들 야망으로 이글대며 그 평가에 앞서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평일 교실 밖이 고요하다고 믿었던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결론이었다.

내 눈으로 본 적 없다고 멋대로 상상해 버린 거지.

그 빌딩에 모인 머리가 몇인데, 설마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표일까?


회사에서 만난 이들은 정말 각양각색의 꿈을 꾸고 있었다.


우선 눈에 뜨이는 건, 입사 1년 안에 퇴사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이 섣부른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분명한 어조로 다른 꿈을 이야기했다.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했다거나, 전혀 다른 수험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다. 공부 하나는 자신 있었다며, 치의대나 로스쿨로도 많이 떠났다. 파일럿이 되겠다며 미국으로 날아간 이도 있었다.

알고 지낸 기간이 짧은 만큼,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꿈만큼이나 확고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출신 지방에 3층짜리 건물 딱 하나만 사는 게 회사를 다니는 목표라는 이도 있었다. 그는 엄마 집에서 지내면서 2층, 3층은 세를 주고, 1층에서 편의점 하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 세상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편안한 삶'이 좋다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만년 부장보다 조금 더 기운을 뺀 꿈이라고 생각했다.


파격적으로는 퇴사 후, 태국의 파티 DJ가 된 분도 있었다. 건너 건너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엄청난 행보는 회사를 떠들썩하게 했다. 몇 년 뒤 같은 팀 동기가 '결국 우리 회사 태국 거점에 다시 입사했다더라'며 냉소 섞인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물론 뜨겁게 타오르는 이들도 많았다.


회사의 일원이 되어 뿌듯한 나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이 회사에 들어온 게 대단한 건 아니잖아?"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형님은 NASA를 갔다던가, 의사라던가 했다. 친구들은 포닥을 가고, 탑 쓰리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며, 본인의 오늘을 꽤 초라하게 평가하는 뉘앙스였다. 그래서 회사에 아쉬울 것도 없어 보였지만, 회사 안에서 무언가를 달성해 내 증명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만년 부장이 꿈인 친구와 바로 옆자리에서 파티션을 나눠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매년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며 초고속 승진을 이어가는 동기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새 도전을 축하하며,

"그래서 오빠는 이직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야? 연봉? 직함?" 했더니, 위인전에서 봤던 것 같은 명언을 남겼다.

"나의 가치를 더 인정해 주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그게 제일 중요해" 했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크기와 방향의 꿈이 있었다.


난 그 빼곡한 꿈들 중 어디쯤에 서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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