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반대로 해가 드는 호주는 남향집이 아닌, 북향집이 인기다. 북향으로 잘 난 집을 사면, 앞마당은 최소로 줄여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게 하고, 넓고 큰 뒷마당을 낸다. 거실에 큰 창을 두고 그 뒷마당으로 드는 볕을 하나 가득 집안으로 받아내는 게 가장 이상적인 집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남향이다.
어차피 뒷마당 볕을 즐길 수 없기에 뒷마당을 최소로 줄였고, 거실을 거리 쪽으로 내면서 앞마당을 넓혔다. 그럼에도 앞마당도 자그마했다. 그 작은 마당이 이내 아쉬웠다. 그림 같은 커비하우스도 두고, 트럼폴린도 두고, 이것저것 꽃나무도 키우는 상상을 했는데 못하게 됐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작던 크던 마당이 있다는 건 사소하지만 매일 마주할 수 있는 행복을 지척에 두는 일이었다.
창문 밖으로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취향껏 가꿔 감상할 수 있다. 봄이면 프리지어와 튤립이, 여름이면 수국과 메리골드가, 그리고 사계절 내내 국화와 라벤더가 마당에 피어있다.
딸이 좋아하는 옥수수, 오이, 토마토 같은 것들을 심어 무르익는 걸 함께 바라볼 수 있고, 상추나 깻잎, 파 같은 것들을 무수히 수확해 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코로나 직후로 이사를 왔다. 코로나 시기 내내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실내는 답답하고, 실외에선 마스크를 써야 해서 더 답답했다. 그러다 완벽하게 내 소유인 실외 공간이 있다는 건, 마스크 없이 바깥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다는 건 짜릿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행복의 해당화를 꺾으려면 가시가 손 찌르는 줄 비로소 알았도다.
현진건 선생님은 사랑의 아픔을 해당화에 비유했지만, 내겐 마당이 바로 그 해당화다. 마당 있는 집의 소소한 즐거움을 즐기려면 이렇게 많은 희생이 뒤따른다는 걸 살아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우선 잔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셨다. 공원묘지가 아닌, 그야말로 동네에 있는 선산이었다. 봉긋하게 할아버지 묘를 세우고, 음식을 차려 그 앞에 둘러앉으면서 어른들은 모두 걱정을 한 마디씩 뱉어냈다.
"잔디가 뿌리를 잘 내려야 할 텐데"
과연 잔디는 참 지독하게도 자리잡지 않았다. 첫 해에는 빛이 덜 드는 뒤쪽이 휑하게 비었다가 그다음 해에는 앞쪽 녀석들이 싹 죽어버렸다. 어느 정도 푸른빛이 도는가 싶다가도 조금이라도 찬 바람이 스치면 그새 노릇노릇한 색으로 그 빛을 바꿨다. 서너 해가 지나고서야, 할아버지의 봉긋한 묘지는 제법 푸릇한 기운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호주의 잔디는 격이 달랐다. 이건 거의 물 먹은 콩나물 수준이었다. 처음 잔디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게 된 건, 주변 기차역 공사를 하면서였다. 배수로를 파헤치면서 엉망이 된 잔디에 공사 관계자들은 성의 없이 잔디씨를 흩뿌려 놓았다. 동네 새들이 잔치라도 난 양, 그 위에 모여들어 잔디씨를 주워 먹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해서 잔디가 자란다고?"
우리나라에서 봐온 잔디는 모두 롤이나, 판으로 흙 채로 들어내 옮겨와 심는 게 일반적이었다.
흙을 통째로 옮겨 심다 보니, 무거워 배송도 힘들었고 그렇게 힘들게 옮긴 경우에도 대부분 할아버지의 묘지처럼 뿌리를 내리기도 어려웠다.
[잔디를 밟지 마시오]
그 딱딱한 문구가 한 번이라도 잔디를 키워보려 애써봤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공사 관계자들이 성의 없이 흩뿌리고 간 저 새 모이 같은 잔디씨가 진짜 잔디가 되리란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설마 - 하면서 지나쳤는데, 며칠 뒤 동네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그 잔디 씨들을 마주쳤다.
단돈 8천 원.
어느 슈퍼에나 있었고, 무엇보다 저렴했다.
남편과 나는 갑작스레 마주친 이 거짓말 같은 잔디씨를 손에 들고 속는 셈 치고 사다가 앞마당에 뿌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우리 집 앞마당도 인테리어 공사동안 관리되지 않은 잡초와 잔디가 뭉텅이로 자라나 있었다.
"그래. 싹 다 뽑아버리고 시원하게 다시 시작하자."
삽 두 자루를 구해와, 있는 힘껏 앞마당을 다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레기로 바닥을 평평하게 골랐다.
바닥이 준비되자 8천 원짜리 잔디씨를 투팩 사와 흙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소복하게 씨앗을 뿌렸다. 동네 새들이 곧 잔치를 열 예정이므로 그들에게 고수레를 줄 양까지 충분히 여유를 두었다. 그리고 그 위로 흠뻑 젖도록 물도줬다. 그때까지도 우린 반신반의했었다.
'저딴 씨앗들이 진짜로 잔디로 자란다고?'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푸릇푸릇한 잔디 머리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어린 시절, 잔디 인형에 쑥쑥 자라나던 머리카락처럼 앞마당 전체가 쭈볏쭈볏한 잔디싹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었다. 잔디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렸고, 안정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더 놀란 건, 뿌리를 빨리 내리는 그 속도만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무서운 속도로 잔디가 끝도 없이 자라난다는 점이었다. 잔디는 정말 쉬지 않고 자랐다. 멜버른은 겨울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다 보니, 겨울이라고 쉬는 것도 없었다. 무수히 머리채를 잘라내도 돌아서면 발목만큼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너희 말이야, 도로에 있는 저 잔디들 안 깎으면 신고당할 수 있어. 그러면 벌금 내야 해."
뒷집 할머니는 새침한 듯 다정하게 경고했다. 집 문 밖 도로에 있는 잔디들도 우리 책임이라고 한다. 마침 여름이 오고 있었고, 잔디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2-3주에 한번. 남편은 1년에 두어 번이나 하던 벌초를 하는데 꾸준히 한 시간씩을 할애하고 있다.
[제발 우리 잔디를 밟아주세요.]
물론 잔디보다 더 한 놈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잡초.
"키우려고 하는 건, 안 자라고 키울 생각이 없는 건 잘 자라요."
마당 있는 집을 사는 친구들은 입을 모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잡초는 정말 아주 조금만 방심해도 상상하지도 못한 곳까지 뿌리를 내렸다. 아스팔트 사이, 벽과 벽 사이, 심지어는 지붕 위에도 내려앉았다.
지붕 위 민들레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다.
잡초도 각자 다 나름의 생존 방식이 있어, 잘 뽑아내기도 어려웠다.
어떤 녀석들은 뿌리를 단단하고 깊게 두고, 가늘고 약한 이파리들만 세상으로 내놓는다. 이파리를 양손으로 쥐고 뜯어봤자, 풀잎싸귀 몇 개나 손에 쥘 뿐 녀석들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삽으로 주변의 흙을 다 들어내고서야 겨우 한두 놈을 뽑아낼 뿐이었다. 조금은 말미잘처럼 마당 곳곳에 땅을 단단하게 끼고 앉아 뿌리를 내리는데,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그러다 한인 마트에서 호미를 발견했다. 그날의 감동이란! 우리나라 농기구는 정말 목적에 따라 최고로 잘 디자인된 우수한 도구들이다. 저 가느다란 잡초의 이파리에는 손을 댈 일도 없이 호미로 콱 찍어내면 두말할 여지없이 뿌리를 모두 뽑아낼 수 있다.
콱! 팍! 콱! 팍!
몸은 힘은 들지만, 마치 여드름 짜는 유튜브 동영상을 멍 - 하게 볼 때 느끼는 희열에 호미질을 도무지 멈출 수가 없다.
잡초 중에 또 무서운 녀석들은 구근식물들이다. 이들은 능글능글하게도 위장술에 아주 능하다. 흙속에서 막 캐낸 모습이 동글동글한 돌인지 뿌리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래서 뿌리를 모두 골라냈다고 믿고 돌아서 봤자 번번이 놓치는 녀석들이 생겼고, 그 자리에서 끝도 없이 또 싹을 틔우고 또 싹을 틔운다.
구근식물은... 죽지 않는다.
정말 영원한 생명력을 가졌다.
물론 달팽이나 해충에 비하면 잡초는 귀여운 편이다. 얼마나 많고 다양한 종류의 땅속 친구들을 만났는지, 이제 초록의 통통한 애벌레쯤은 웃으면서 잡아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해충이 있고, 나무나 꽃마다 모두 다른 종류의 벌레가 꼬인다는 걸 몰랐다.
레몬나무를 특히 좋아한다는 집게벌레는 레몬 나무 가지 속에 통통하게 자리를 잡았다. 처음 이사와 손이 닿지 않는 레몬나무에 끝에서 난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집게벌레친구들과 조우했다.
"그래! 여기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결국 레몬나무를 기둥만 남기고 반토막으로 잘라냈다. 가위질할 때마다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벌레들의 기세에 눌려, 끝나고 샤워를 하면서도 몸서리를 쳤다.
요리만 해도 기본기가 탄탄한 셰프님의 꼼꼼한 잔소리 덕에 일취월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초보인 이 정원 가꾸기 만큼은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오늘도 조경용으로 깔아 뒀던 자갈 사이로 잡초가 너무 자라 손을 써야만 했다.
맨땅에 자갈만 두둑하게 깐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단다.
"그래! 이것도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울면서 깔아 둔 자갈을 모두 긁어내고 다시 잡초방지 매트를 까는 작업을 했다.
돌을 긁어서 퍼 옮기는 이 생고생 덕분에 지금도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웅웅 울린다.
그렇게 한참이나 마당을 정리하다 보면, 가끔 콩알만 하던 뒷마당이 광활하게 느껴지는 타이밍이 온다. 드넓은 대지에 홀로 선느낌. 외로운 바람이 휑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