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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Oct 14. 2022

영국살이를 통해 배운 것

약자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영국인들

노팅힐 촬영장소 켄우드 하우스(Kenwood House)


‘노팅힐’의 촬영 장소를 다니다 셋이서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국살이를 하고서야 보였던 부분은 사보이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애나(줄리아 로버츠)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었다.

윌리엄(휴 그랜트): “기자회견 장소는 어디인가요?”

호텔 측: “입장 허가받은 기자분인가요?”

(허가증이 없으니 다른 아무 카드를 내미는 윌리엄에게 호텔 측은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하던 찰나)

윌리엄 장애인 친구: “런던 호텔들이 휠체어 탄 사람을 어떻게 다루나 기사를 쓰고 있어요.”

호텔 측: “그러시군요, 부인. 랭커스터 룸에서 열립니다.” (라고 말하며 입장시켜준다.)


장애인과 아이를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엘라 드라마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겨우 겨우 통화가 되었다. (보통 전화 연결하고 상담원 연결되기까지 1-2시간 기다리는 것 기본이다.) 얼마나 기다리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오전 10시에 불렀는데 저녁에 온다고 한다.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른 신랑, ‘딸이 배고프다고 엄청 보채고 있는데 꼼짝할 수가 없네요. 더 빨리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올 생각도 전혀 없었으면서 아이가 기다린다는 말에 갑자기


아이가 기다리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이제 이야기하면 어떡해요.
금방 도착할 거예요.


어쩌면 8-10시간 걸렸을 것을 엘라 덕분에 몇 시간이 절약되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엘라와 둘이 공연을 보고 나왔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7-800명이 넘는 인파가 공연장에서 나와 하나같이 들어가는 곳은 비를 피하면서 앉을 수 있는 곳. 다 같이 우르르 몰려 가는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비를 피했다.

한쪽 테이블에 좌석이 많아서 물어봤더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비가 안 올 때는 그늘에 쉬면 되지만 비가 오니 바닥은 다 젖었고, 하필이면 오늘은 유모차도 안 갖고 와서 망했다 싶었다. (의자 배려석이 필요한 만 5세 아이 엘라)


그런데 테이블 두 개를 사용하고 있던 무리가 한쪽 테이블로 좁게 앉더니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를 우리에게 양보해준다. 너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엘라한테 영어로 ‘엄마 바로 앞 이탈리아 가게에서 피자 사 올게, 어디 가지 말고 앉아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그 무리들이 ‘걱정 마. 우리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라고 한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피자가게

엘라가 어려서 어디든 항상 같이 다니는데 이번에는 예외상황이기에. (여행 중 납치된 딸을 찾으러 온 영화 ‘테이큰’을 찍은 곳이 파리 아닌가?) 주문을 기다리면서도 잘 있는지 초조하게 지켜본다. 무리들은 잘 있다며 오케이 사인을 해 준다.


주문한 피자를 갖고 겨우 숨을 돌리던 찰나, 그 무리들 중 한 명이 의자가 없이 서 있다. ‘네 의자 어디 갔어?’라고 물어봤더니 ‘계속 앉아 있어서 서 있고 싶어.’라고 이야기한다. (생색내지 않고 돌려서 이야기하는 영국인)


영국인 대학생들이 떠나고 비가 그친 후의 모습

엘라랑 둘이서 디즈니랜드에 머무른 지 4일째, 무개념 사람들이 자꾸 우리 영역을 침범해 북유럽의 공기마저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던 타이밍에 이런 감동을 주다니… 잠시 앉아있었지만 불편한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저 멀리 비어 보이는 의자가 있어 얼른 뛰어가 전해주었다. ‘정말 괜찮은데…’라고 말하며 앉더니 나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이야기 나눠보니 (20대?) 영국 대학생들.


영국에서 출발한 영화 ‘타이타닉’이 떠오른다. 여성과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먼저 태우고 본인은 배에서 운명을 맞이한 스미스 선장의 영국 기사도 정신.

영국인답게 처신하라.
(Be British)

디즈니랜드에서 영국인으로부터 받은 호의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 그래서 문득문득 그날이 생각난다는 마음을 텔레파시로 보내고 싶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함의 행복 호르몬이 흘러넘치는 기분이다. 다만 나의 20대 대학생 때는 그들처럼 낯선 이에게 의자를 양보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영국은 어렸을 때부터 매너교육을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다. 우리도 국영수보다 배려교육이 더 중시되면 좋겠다.) 각박한 세상에서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푼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훈훈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건물로 들어갈 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것, 운전할 때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을 위해 멈추는 것, 반대로 보행자로서 그런 경험을 받으면 엄지척 혹은 다른 방법으로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출퇴근 시간에 만난 이웃에게 다정한 미소와 인사 같은 작은 행동들이 서로의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친절한 말,
당신은 내일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생 동안 그것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다."
-데일 카네기-


우리에게 베풀어준 호의, 감사합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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