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한 시간 반부터 바닥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시작하기 10분 전, 히잡을 쓴 여인이 엘라 옆 쇼핑백 둔 곳을 가리키며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대체로 뒤늦게 온 사람들은 뒷자리로 가서 서서 보는 편) 불편하게 보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승낙했다. 그런데 뒤에 딸, 아들까지 (어디선가) 데리고 와 바닥에 앉히자 엘라 자리가 반으로 줄어들었다(가부좌 자세로 앉다가 무릎을 불편하게 세워야 겨우 앉을 수 있는 상황).
거기까진 그래도 오케이, 그런데 그 여자가 몸을 앞으로 쭉 빼서 퍼레이드 동영상을 찍으니 엘라와 나의 시야가 다 가려졌다. 정중하게 여러 번 부탁해도 '알겠다'라고 하고서는 같은 행동 반복, 더 심하게 머리와 손으로 카메라를 가린다. 다른 자리로 옮길 곳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빼곡하게 찬 공간, 퍼레이드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맞서느냐 두 가지 선택뿐이 없다.
결국 엘라와 내가 자리를 바꿨고, 똑같이 어글리 하게 행동을 취했더니 그제야 그 행동을 멈췄다. 여기서 어글리란 우리 모녀 전체 시야를 가린 것처럼 나도 똑같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손을 더 뻗어 그녀가 찍고 있는 카메라 앞 시야를 전부 가렸고, 그 상황은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는 장면이었다.
한 시간 반부터 기다린 우리는 십분 전에 나타난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되려 우리 자리가 없어졌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꼴이었다. 기다리던 퍼레이드를 망친 것도 속상한데 애써 괜찮은 척하다 눈물 뚝뚝 흘리는 딸을 바라보니 이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속이 뭉그러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퍼레이드를 봤는지 기억은 안 나고, 내 행동은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오더니
Everything is ok?..... She is so crazy.
저녁에는 일루미내이션(불꽃축제)을 보기 위해 1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는다. 역시나 시작하기 10분 전, 어떤 커플이 오더니 '여기 앉아도 되냐고 묻지도 않고’ 좁은 틈을 비집고 철퍼덕 앉아 버린다. 낮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앞으로는 ‘투명인간 취급을 하자'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쉰내' (한국 출퇴근 지하철에서 쉰내? 그건 이것에 비하면 향수 냄새) 범인은 묻지도 않고 바로 옆에 앉은 커플.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이후에도 불쾌한 경험은 여러 번 지속되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얌체 행동하는 사람들 중 (명품 휘두른) 히잡 쓴 여인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날 이후 이슬람 혐오가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한국에 살 때는 이슬람교와 관련된 이슈에 이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나와 직접 관련된 경험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영국 엄마보다 무슬림 엄마가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다. (같은 아시아인이면 좋겠는데, 주변에 아. 무. 도 없었다.) 그래서 좀 친해져 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대화해보면 집에 3-4명의 아이가 더 있었다. (기왕이면 외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형제자매가 많은 것보다 같은 외동이면 더 많은 시간을 놀 수 있으니까)
“둘째를 낳고 싶지만 한 명도 힘들어서 못 낳겠어. 비법 좀 알려줄래?”
… 내 편이 많아지는데 더 이상 뭘 고민해?
대부분의 무슬림 엄마들은 4-5명의 자녀가 있다. 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영국 정부는 집세 보조금, 임금 보조금, 자녀 보조금을 준다. 영국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세금으로 낸 돈이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흘러간다.
언젠가 아이 학교 급식에서 할랄 메뉴를 따로 만들어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결국 그 의견은 많은 무슬림들의 투표로 정착되었다. 심지어 교장 선생님(영국인)은 라마단주를 기념해 단체 메시지를 보낸다. 솔직히 이민자들을 위해 영국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갔다. 할랄 메뉴를 따로 만드는 것은 추가 비용이 안 든다고 설문 내용에는 나와 있었지만, 어떻게 추가 비용이 안 들 수 있으며 역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무슬림에 대한 관심은 이후 여러 가지 미디어로 이어졌다.
다음은 '비정상회담'에 이집트 대표로 출연 중인 새미가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소개한 인터뷰 내용의 일부이다.
이집트, 새미: 한국인 한 명이 다른 나라에 가서 실수를 했다고 해서, 한국인 모두가 그 사람처럼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은 그런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일반화하면 억울하지 않겠나. 미국에서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 폭행행위를 하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개인 그 자체의 문제로 보지만, 무슬림이 폭행행위를 하면 ‘테러리스트’라고 보며 이슬람교의 문제라고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왜 그들의 행동으로 나까지 욕을 먹어야 하나’하는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출처: 김유진 기자 "IS 테러, 종교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 봐달라" 중앙일보 2015년 12월 30일 https://m.news.zum.com/articles/27670750
다음은 '비정상회담 난민 정책에 대한 독일의 의견은?'이라는 제목에 각국의 대표들이 의견을 내놓은 것 중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다.
한국, 진중권: 솔직히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반테러법을 도입한다고 테러가 안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장기적으로 걱정되는 한 가지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라고 하나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극도의 공포와 증오감을 느끼는 것,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같은. 근데 문제는 뭐냐면 그게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거거든요. 급진화된 폭력에 의존하는 테러리스트는 극소수인데 이 사람들이 전체 무슬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원해요. 저쪽에서 적으로 만들어주면 더 똘똘 뭉칠 수밖에 없죠. 이슬람을 증오하면 할수록 이슬람의 급진화를 초래할 것. 그래서 가장 해야 할 것은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를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테러 대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로빈: 프랑스 테러 사건이 일어난 후에 SNS에 피해자 남편이 글을 올렸어요.
"당신은 나의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의 인생에서 너무나 특별했던 한 사람을 앗아갔다. 내 인생의 사랑이자 내 아들의 어머니. 하지만 당신은 나의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증오하길 바라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19개월 된 내 아들과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먹고 함께 놀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절대 우리의 증오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I will not hate you
한국, 전현무: 쉽지 않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들이 원하는 거랑 정반대의 모습이잖아요. 슬퍼하는 건 그들이 원하는 바니까.
출처: JTBC Voyage "[비정상회담 75-5] 난민 정책에 대한 독일의 의견은?" 유튜브. 2019년 9월 3일 https://www.youtube.com/watch?v=xCDqEq42saQ
독일, 다니엘: "독일 내에 약 427명 정도가 테러리스트 일 확률이 높다고 해요. 그 사람들 대다수가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민 2세들(이라크, 시리아)이죠. 2009년 알카에다의 테러 협박 동영상에 등장한 남자는 완벽한 독일어를 구사했는데 이후 독일 본에서 자란 것으로 밝혀졌죠. 탈레반과 IS(이슬람 극단주의: Islamic extremism)는 완전히 달라요. IS 상당수가 서유럽 출신에, 첨단기술과 미적 감각을 갖고 있죠. 유명 게임을 활용하여 조직 가입을 권유하는 영상을 제작해요. '너네들이 게임에서 하는 것을 현실로 하게 해 줄게'라고요. 그들이 제작한 영상 중에 FPS(1인칭 슈팅게임)처럼 찍은 것도 있어요.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모습까지요. 즉 전쟁을 게임처럼 여기게 하여 지지 세력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하고 있는 거죠."
최근 테러가 잦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일 내에 이민 2세들 위험성 크다고 말했잖아요. 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 인종차별, 취업이 안되니까 극단적인 조직으로 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옛날 동독 지역에도 경제적인 문제 많으니까 극단적으로 신나치주의에 빠지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요. 경제적 어려움, 사회에 대한 불만 줄일 수 있는 대책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적응을 어려워하고, 그게 한으로 쌓이니 그것을 풀어주는 조직에 끌리게 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쉽게 그 주장에 동조하게 되니깐요. 그러니 우리는 그 사람들이 테러집단에 가입하기 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해요."
영화 '쁘띠 아만다'는 파리 테러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 IS에 의해 테러 및 총격을 입은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를 견뎌내고자 하는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내가 만일 경험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를 '엘비스는 건물을 떠났다(Elvis has left the building, 공연이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표현으로 보여준다. 끝났지만 남은 자의 삶은 지속되기에.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지금 상황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고.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혐오증)에 대한 경고를 어린 아만다의 시선으로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