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내 인생에 유학이라니
(유학 일기는 매주 목요일 아침 연재합니다)
- 내 인생에 유학이라니 -
(1편) '유학' 가고 싶던 아나운서
ㅡ 사진으로 담아보는 유학 준비 스토리
(2편) 틈새시간, 나처럼 지내봤니?
ㅡ 방송+유학, 두 마리 토끼 잡기
ㅡ 공부 잘되는 카페 명소 TOP 7
(3편) 막상 유학 와보니 말입니다!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던 중, 종종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지금이 진절머리 나게 싫은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상태를 자꾸 그리워할 때가 생기는 거다. 이를테면 "나 예전 몸매가 너무 그리웠는데..."처럼 가벼운 한숨 섞인 체중 투정. "내 나이가 벌써 몇이야? 생일 초 좀 덜 꽂고 싶다"와 같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또 한 가지. 유학을 온 뒤 오히려 '유학 준비 중'이던 그 시절을 간간이 그리워하게 되는 아이러니. 영어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유학 '전'이 더 그립다. 때때로 그 시절이 보고 싶다.
막상 유학와보니, 하나
유학 전에 오히려
영어공부 더했던 것 같잖아.
막상 유학을 와보니 '유학 준비 중'일 때보다 영어 공부량이 확 줄었다. 정말이지 예상 밖이다. 생활 속에서 영어에 노출되는 양이야 훨씬 늘었겠으나 타지의 낯선 기운들을 당차게 이겨내며 이래저래 일상에 적응해가다 보면 책상에 엉덩이를 굳게 붙이고 앉아서 영어를 차근차근 소화시켜나가는 절대량이 감소할 수밖에. 오히려 스트레스받아서 한국드라마, 한국소설 몰아본다는 이야기들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
일단 출국해서 낯선 땅에 발을 딛고 서있다 보면 외국어 흡수량도 쑥쑥 늘어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진짜 영어공부는 한국에서 더 치열하게 많이 했던 기억만 맴돌 뿐이니, 이것 참...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외국 친구들과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과 반비례하는 영어공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외국 친구들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귀신같이 생기고 타지 적응력도 찰떡같이 늘어만 간다. 때론 여기 오기 전에 영어를 더 잘했던 것만 같다? 나 공부하러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공부의 정의가 각자 다를 수 있겠으나, 내 경우 여기오기 전에 오히려 더 어렵고 다양한 표현과 단어를 많이 외우려 노력했던 것 같다)
막상 유학와보니, 둘
확실히 나는
옛날 사람인가 봐.
아나운서가 빨리 되고 싶다는 열망에 난 스무 살 때부터 마냥 달리기만 했다. 졸업예정자 공채를 빨리 치르고 싶어서 휴학 한 번을 안 했고 혜택 좋기로 소문난 우리 학교 교환학생 제도도 활용하지 못했다. 취업은 빨랐으나 그 덕분에(?) 한 달간의 배낭여행 정도 빼고는 제대로 된 해외 경험 한 번이 없는 '우물 안 개구리'. 우리나라 안쪽에서의 삶에 만족했고 그 안에 머무는 게 편안하기만 했던 나날들.
뒤늦게 해외에 나와보니 확실히 내가 '늦긴 늦었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인생의 시계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시침 분침을 돌리면 될 일이니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건 비교에 의한 자괴감 섞인 문장이 아니라 심플한 ‘팩트’다. 조금이라도 일찍 이 세계를 경험해봤다면 20대가 좀 더 풍성한 추억으로 물들었을 텐데 말이지. 이토록 넓고 다양한 세상이 세계 어디에나 열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20대 중반과 후반을 맞이했다면 아주 조금은 더 여유 있고 리듬감 있게 나의 시절들을 살아냈을 것 같다.
다소 늦은 나이, 서른넷. 더 넓은 세상으로의 문을 삐그덕,,,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굳이 개인사를 공개하지 않고 살아가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소통 특성상 미처 몰랐다. 같이 수업듣는 동기들이 생각보다 많이어렸다는 걸. 내가 '너무도'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 마주하며 인사 주고받는 과 동기들과 자그마치 열 살 정도나 차이가 난다는 걸 개강하고 석 달이나 지난 뒤에야 깨닫고 말았다. 이거야 원.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야 태어난 동기들이 있다니... 한참은 언니, 누나였던 셈.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따져서 웃어른 대접받을 일은 아니지만 때때로 '세대 차'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면 기분 탓일까.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 서툴게 영어로 꼰대 본능을 드러낼 것 같아 아찔했던 순간들도 몇 있었이니... 서른넷에 시작한 유학 이야기. 직장생활 10년을 마치고 새롭게 내민 도전장인 만큼 호기로웠고 무서울 게 없을 만큼 당찼으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으니... 나 '나이 들었다'. (만약 좀 더 일찍 떠나봤더라면?)
막상 유학와보니, 셋
다 본인 나라에서
한 가닥씩들 하다 온 것 같은데?
소셜미디어에서 서로의 계정을 팔로우하며 '랜선 우정'도 쌓아가다 보니 알게 된 사실. 아무래도 유학생은 네이티브 학생들보다는 유학생들끼리 소통하며 자연스레 뭉치게 되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거 이거 다들 본인의 나라에서 한 가닥씩들 하다 온 것만 같다. 나도 방송생활만 10년을 이어온 직장경력이 있지만 어느 누군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패션잡지사의 태국지사에서 일하다가 공부하러 왔고, 또 어느 누군가는 대만에서 통역사로 활동하다가, 또 누군가는 중국에서 방송사 PD로 일하다가 유학을 왔다. 매일 다소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이방인'의 모습으로 얼굴을 맞대니 그냥 그 '피로감'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만 생각했다. 그 이면에, 그 이전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매력들을 처음엔 미처 놓쳤었더랬다.
소셜미디어 속 그들의 과거는 기대 이상 화려하고 찬란했다. 20대 초중반 시절부터, 아시아 권역의 나라에서 미국 동부로 어떤 단단한 결심을 하고 떠나온 자들. 다들 촘촘하게 짜임새 있게 살아온 어른들일 것이다. 매사 성실했을 것이며 어떤 탁월한 성취를 이뤄봤거나 그 이상 더 도약하고 싶어 나처럼 안달이 났을지도 모를 일. 한 가닥씩들 하다가 더 크게 뛰어보고자 옹골찬 꿈을 품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일상을 일궈가기. 그 에너지가 응축된 느낌이 매일 같이 좋더라. 단순히 외국어 소통능력을 늘리고 전공분야의 지식을 축적해 가는 것 이상으로 좋았다. 결연한 의지를 품고 한 가닥씩들 하다 온 젊은 기운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것. (나도 아직은 '젊은' 기운이라고 믿고 싶다.)
막상 유학을 와보니 그랬다. 미국에 유학을 오면 토종 국내파로서 '영어 늘리기'에만 잔뜩 더 힘을 주고 몰두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 얄팍한 심산이었던 것. 영어능력이 쌓이는 것, 그 이상의 것들을 하루하루 쌓으며 배워나간다. 나보다 YOUNG 한 자들의 응축된 에너지에서 더 팔딱거리는 열정으로 하루하루 더 애써보자고 다짐하고, 미국에 유학 오기 전 고국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서바이벌해나갔던 동기들로부터 건강한 자극을 받는다. 다시 돌아가면 조금 더 도약할 수 있을 거라고, 유학생으로서 장착한 어리바리함과 초조함, 특유의 긴장감을 다시금 벗어내고 산뜻하게 새 정체성을 입을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토닥이면서.
하루하루 예상치 못했던 요소들을 깨닫고 배워가면서 '유학생'의 하루를 살아나간다. 대부분은 버겁고 무겁다. 늘 긴장한 상태이며 항상 짓눌린 심장을 쓰다듬는 심정으로 버텨나간다.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의 일상, 매 순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또 그러다 보면 한 가닥씩 성장해나가는 거라고 희미하게 믿어본다. 예전의 방송일상보다 훨씬 초췌하며 흐트러진 구석이 허다하지만 이 또한 언제 또 그래 보겠냐며 '추억'이 될 거라고 짐짓 생각해두기로 한다. 막상 유학 와보니 이렇게 영어 그 이상 '다른 걸'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배움에 심취하며 하루를 이어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