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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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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울미예쁠연 Jul 30. 2021

객기 혹은 진상

#마흔살에 굳이 혼자 유럽여행 #3


 예전부터 해외 여행은 자주 했지만, 영어 잘하는 남편이 모든 숙소며 이동편을 예약해 주었었다.

하지만 나만의 마흔여행 만큼은 꼭 내가 다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그 모든 여행이 오롯이 내것이 될 것 만 같은 이상한 객기가 생겼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jtb방송의 ’비긴어게인’.


노랗게 물들인 삭발에 가까운 모습을 했던 가수 이소라.

그녀는 달달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더블린의 어느 거리에서 노래를 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더블린의 어느 거리에서 그녀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했고,

 한때 나의 영웅이었던 윤도현, 유희열과 함께 그들은 나를 단번에 스무살의 어느 날로 데려다 놓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나간 날들에 애틋한 나뿐만 아니라, 그곳의 파란 눈의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었지.

 마치 나는 일행이 된 것 마냥 그들의 여행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샌가, 더블린을 꿈꾸고 있었고, 정확히 말하면 더블린이 아닌 골웨이라는 곳이었지만,

부천이나 인천이나 시골에 살던 나에게는 다 서울이었던 것처럼,

골웨이나 더블린이나. 아일랜드 그곳은 뭔가 그냥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야기와 음악이 만나는 영화, 원스(once)의 촬영지.

윤도현, 유희열, 이소라의 버스킹. 비긴어게인.

게다가,내 마흔여행의  In-Out인 런던에서 한시간. 비행기표가 겨우 4만원정도?


첫 혼자여행에 어울릴 법한 그야말로 갬성이 가득한 곳. 거기에 가성비 갑!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는가!

더블린.


나의 두번째 이십대에 걸맞는 곳.

괜시리 나도 자유로운 영혼이 된 듯한 분위기가 있는 곳.

 자연스레 나의 첫번째 목적지는 더블린으로 정해졌다.


저가 항공으로 영국에서 더블린까지 가는 길은 고작 1시간정도.

미리 예약하는 부지런을 떨면 고속버스 타고 서울근교 놀러가는 정도의 돈으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다니, 신기하구나.


 캘거리를 떠나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바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이동시간을 고려하여 넉넉한 스케줄로 예약했음에도 시간은 광속이다.

잠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나니,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바짝 다가왔기에, 빠른 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다.


내가 타야할 항공사를 찾아 헤메느라 잠시 시간을 버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혼자 여행의 운치 아니겠나.

 게다가 아이들 없이 혼자서 움직이니, 이건 마치2 G 폰쓰다가 갑자기 스마트 폰으로 갈아탄 기분이었다.

 나름 수월하게, 더블린행 비행기 수속 데스크를 찾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역시, 혼자 여행은 이게 맛이지.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그러나 드디어 찾아온 첫번째 관문.

어라…

 온라인 수속이 아닌,현장 수속을 하게 되면 추가 되는 금액이 있는데다가, 가지고 탈 수 있는 짐가방의 크기가 고작 학교 배낭 정도!

인생의 첫 마흔 여행인데 설마 내가 학교 배낭 하나 달랑 들고 왔을리가 없지 않는가.

짐을 추가하면 비행기 가격의 몇배나 되는 돈을 내게 생겼으니 배꼽이 배를 뚫고 나올 판이다.


덜렁대는 나는, 비행기표를 끊고 나서 날아온 설명서를 대충대충 읽어 넘겼기에, 또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 도착한 후, 혼자여행을 만끽한답시고 커피나 홀짝 거리며 여유를 부렸던 터라 비행기 탑승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맘이 초조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1000원 2000원에 민감한 생존형 아줌마 아닌가!

수능때보다도 초집중한 상태로 뇌세포를 총동원하여, 온라인 짐 추가를 그나마 납득이 되는 금액으로 해결했다.

그것은 마치, 테트리스stage 5정도 해결한듯한 쾌감이다.


이젠 당당하게 탑승을 좀 해야겠다며 비자를 받기위해 여권을 내밀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조금은 지켜올라갔지만 귀여운 눈매. 윤기있게 곱슬거리는 머리칼의 항공사 직원언니.

 딱봐도 건강해 보이는 라틴계의 그녀는, 내게 미안한듯한 말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너는..north korean 이어서, 아일랜드는 너의 나라에게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너는 오늘 이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고.


 순간, 복식호흡으로 발성연습하던 연극부 시절을 떠올리며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싶던 것을 꾹 참으며, 차분하게 조곤조곤 물어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안그래도, 수월하게 비행기를 탈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갑자기 짐 추가며 온라인 수속이며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north Korean.이라니..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캐나다에 이민가서 잘먹고 잘살고 있는, 나름 배운 여자 인데..south 와 north 를 구분 못하고, 설마 북한국적을 선택 했을까??

내 여권을 보여주며 나의 국적을 확인 시켜줬지만, 미안하다고 자기는 어쩔 수가 없덴다.

 이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네.


다시 한번 확인을 원한 나는, 내 눈으로, 나의 비행기 티켓의 국적에 north korea라고 써있는 걸 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 걸까. 난 오늘 이렇게 더블린 가는 비행기를 눈앞에서 보내야만 하는 걸까.


하아. 또 갑자기 내 눈앞에 보이는 카드값.

갑자기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나는 오늘 이걸 타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꼭 가야한다!


내 여권을 보여주며 ”내 국적은 대한민국, south korea라고, 나 이거 타야한다”고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열정적인 진상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나도 모르지만 난 분명 너네 홈페이지에서 국적 선택하라고 할때 korea를 선택했다”고 말하면서, 월드컵이 지난지가 언젠데, 그렇게도 열심히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젊고 탱탱한 피부의 건강한 곱슬머리 라틴계 언니는, 결국 대한민국 아줌마 진상에 무릎을 꿇었고, 나를 south korea로 국적수정을 해준 뒤, 그 비행기를 타도록 해주었다.


부끄럽지 않다. 부끄럽지 않다. 내 뒤에 사람들이 진상 한국 아줌마때문에 탑승수속이 늦어지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지어 있어도 나는 부끄럽지 않다

어쩌겠나. 나도 살아야지.

 '미안합니다’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그 자리를 애써 당당히 떠났다.


그렇게, 혼자 여행의 첫날부터 톡톡히 신고식을 치루며 도착한 아일랜드. 더블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밖은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짐도 풀기전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사십평생 낮잠을 자본적이 없었다.

자고 나면 머리가 아파오기 때문에 낮잠을 잔다는 게 이해가 안됐던 사람이다.

그런데 몸도 마음도 지쳤었나보다.


뭐하나 쉬운 일이 없구나.

한시간 정도 꿀처럼 단 잠을 자고 일어났다.

 멍하니 혼자 침대에 앉아서 잠시, 지난 몇시간을 돌이켜 봤다.

어찌됐든, 난 지금 내가 원하던 곳에 와있구나.

그때 그 시간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더니, 결국은 하나하나 잘 걸어왔구나.


그래.

어쩌면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걸으려면, 걷고 싶으면,

직접 일어서서 걸어야 해.

 때론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겠지만 가만히 앉아서는 결코 걸을 수 없어.

하지만,

기지도 못하는데, 맘만 앞서서 걷는것도 문제라는 걸 알게됬다.


나중에 알게 된, 내 이중국적의 문제는 이거다.

 “Korea(PRK)” 나는 코리안이니까, 아무 의심없이 KOREA(PRK) 를 선택했던 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Republic of Korea (KOR) 이게 맞는데,

정말 아무 생각없이, KOREA 만 보고, 뒤에 따라오는 (PR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를 보지 못한 거지.


그러하다.

걸음마 배우기 전에도 잠시 찬찬히 생각을 좀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네.

인생 고달파지기 전에.


어찌됐건 나는,나의 스무살 갬성을 가득 채워줄 더블린에 왔고 이젠 부드럽게 이곳을 누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지.


지난 일은 잊으려는듯 새로운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나름 한껏 멋을 부린 후 ‘나의 더블린”으로 한걸음을 내 딛는다.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북한 사람으로 오해 받아, 비행기를 안 태워 준다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예쁜척하면서 감성 가득한 더블린의 낯선 거리를 혼자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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