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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미 Oct 25. 2020

하얀 농부, 황준수

READ YOU 인터뷰 #1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책을 한 권 읽는 것과 같다.
우리와 비슷한,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 용기를 나누고 싶다.




READ YOU : Interview
#1. 황 준 수


황준수씨는 농업인이 꿈이다. 20살이 되자마자 전국을 돌면서 농업을 배우겠다며 자전거 한 대, 가방 하나만 가지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무계획, 무자본, 무보수. 이 세 가지가 그의 여행 원칙이었다. 그렇게 농사를 배우고, 얻어먹고, 얻어자며 여행을 이어나갔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틈틈이 기록한 것들을 엮어 「하얀농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또래들은 입시와 취업에 매달려있을 때 황준수씨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다. 20대, 여전히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지만 내가 만난 그는 의욕이 넘쳤다. 어찌보면 무모해 보이는 이 길을 가게 된 힘에 대해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무식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ㅣ여행을 떠나기 전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는 어려서부터 관심있는 분야가 많아서 '하고잽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근데 그때는 의지에 비해서 실행력이 좀 부족했어요. 관심을 두다가 이내 포기하고, 그런 걸 반복했어요. 처음 꾸준함을 가지고 시도한 게 19살 때였어요. 그게 해외 자원봉사였죠. 6개월간 필리핀에서 농업분야, 교육분야 봉사를 수행했어요. 농업분야에서 우리 주업무는 양계장을 짓고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귀국한 뒤에는 농업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안목을 넓히기 위해 세 달간 국내 농촌무전여행을 기획해서 떠났어요.

ㅣ굳이 무전으로 여행을 떠난 이유가 있나요?

첫째는 돈이 없어서. 책에도 적혀 있지만 당시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뭔가 부모님께 손을 벌려서까지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돈을 벌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어요. 빨리 여행가고 싶었으니까. (웃음) 그리고 무전여행이 어릴 때 로망이기도 했어요. 20살에 딱 해보고 싶다.

ㅣ목적지 없는 여행이 되게 막연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막연했죠. 저도 처음 여행 떠날 때는 길에서 자기도 하고 아무도 못 만나기도 하고 밤에 혼자 자면서 울기도 하고.(웃음) 그런 것까지 상상을 하고 갔어요. 그래서 1인용 텐트랑 코펠까지 챙겼거든요. 근데 여행 중에 만난 농부님들이 제가 갈 곳들을 계속 연결해 주셨어요. 그렇게 연결에 연결을 통해 전국을 한 바퀴 돌았어요. 떠나기 전엔 상상도 못 했죠.
텐트랑 코펠 둘 다 한번도 안 썼어요. 그래서 후반에는 ‘나 이러다 밖에서 야영 한번 못 해보고 끝나는 거 아니야? 이렇게 챙겼는데?’ 이런 생각도 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배부르니까 ‘굳이 왜 사서 고생을 하냐’이런 생각으로. 잘 곳이 널려 있으니까.(웃음) 결국 텐트 한 번도 못 폈어요.

ㅣ중간에 그 연결이 끊어진 적은 없었어요?

한 번 있었어요. 그 때 되게 막막했는데... 그래도 성주에서 만났던 선생님 한 분이 갈 곳 없어지면 연락하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 선생님이 한살림활동이랑 농민회 활동을 하시면서 전국 각지의 생산자들과 인연이 있으셨거든요. 그랬더니 그때부터 진짜 또 연결이 계속 되고 풀리더라고요.



ㅣ 무전여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얘기해 주세요.

김천 복숭아 농장. 복숭아 나무 아래서 기타 연주를 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기타를 칠 줄 안다고 말씀드리니까 농부님께서 예쁘게 자라난 복숭아들의 노고를 달래주자며 연주해 달라고 하셨어요. 주황색 조명을 켜 놓았는데 너무 포근하고 예뻤어요. 비닐하우스는 항상 회색빛을 생각하는데 주황빛이니까. 노을빛이랑 똑같았거든요. 처음보는 풍경이었어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은은한 복숭아향도 좋았고. 낮에 일할 때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인 거예요.

연주를 들어주신 농부님들께서 살면서 기타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되게 좋았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때.

ㅣ무전여행의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

자기 PR을 잘 해야 돼요. 내가 무전여행 한다는 것을 대대로 알려라. 그래야 잘 곳이 생긴다. 없는 떡이라도 떨어진다. 그게 제 여행의 전부였습니다.(웃음)


ㅣ책 이야기를 해 볼게요. 우선 책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하얀농부」는 성장에세이면서 동시에 여행기입니다. 제가 세 달 동안 농촌무전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것들, 봤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담았어요.

ㅣ왜 제목이 '하얀 농부'인가요?

두 가지 뜻이 있는데요. 우선 '하얀색'하면 뭔가 아무것도 없는 바탕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도화지처럼 하얀 아무것도 없는 초심자의 마음을 하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농업인의 정형화된 이미지에 변화를 좀 주고 싶었어요. 까무잡잡하고, 투박하고, 몸빼바지 입고 그런 농부만 있는 게 아니라 좀 다른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피부가 하얀 농부라던가. 제가 농사를 지으러 다니면서 피부가 하얗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거의 새로운 사람 만날 때마다 들었거든요. 실제로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피부가 하얀 편이긴 합니다.(웃음) 그런 생각에 또 '하얀 농부'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ㅣ책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쓰기 시작해서 출판하기까지 1년하고 한 2개월? 처음 글 쓸 때 군입대 전까지 3개월 남아서 그 때까지 완성해야지 생각했는데 초고쓰는 데만 꼬박 3개월이 걸렸어요.(웃음) 그래도 뿌듯했어요. 초고라도 다 썼으니까.

ㅣ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요?

여행 끝나고 나서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는 거기까지 생각은 못 했어요. 그래도 혹시 만약 이 기억을 들춰낼 일이 있지 않을까해서 메모는 많이 남겼어요. 일기처럼. 여행이 끝나고 여행에서 만난 분들이 많이 생각났어요. 그분들을 다시 뵙고 싶은데 빈손으로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여행으로 처음 만났을 때 빈손으로 얻어 먹고 얻어 잤으니까. 그래서 뭐라도 챙겨가고 싶은 거죠. 선물 세트 이런 거 말고 좀 특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책을 썼어요.

ㅣ책을 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자괴감이지 않았나. 내 글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글을 수정할수록 우울해졌어요. 글이 왜 이것밖에 안 되지? 그래서 진짜 쉽지 않은 일이구나 느꼈어요. 그런 순간들이 되게 힘들었지 싶네요.

ㅣ농업의 매력이 뭔가요? 작가님을 농업에 빠뜨린 매력.

성취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는 것. 일을 하면 그 결과물이 빨리빨리 확인되는 것. 물론 거기까지의 시간이 정말 고난일 수도 있어요. 근데 딱 끝났을 때 내가 했던 것들이 보이는 거죠. 매일 병주고 약주고 그런 느낌? 자주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건 홍성에서 들은 이야긴데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 2개가 있대요. 의사랑 농부.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사람이고 농부는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사람이래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이런 게 농사의 매력이죠.



ㅣ공통 질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곁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만족감이 낮은 거죠. 상대적으로.(웃음) 예를 들어 좋아하는 친구와 국밥에 소주를 먹을 때,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날씨가 좋을 때 그냥 단순히 행복하다고 느껴요. 이처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늙어서도 영위할 수 있으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하고 사랑받는 그런 삶인 것 같아요. 늙어서도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ㅣ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지금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시기인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뭘 먼저 할지 계속 고민중이고. 일단은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요. 어떤 공부를 정확히 하고 싶은지 분야를 하나 정해야 할 것 같지만요.

ㅣ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문학책들이 영향을 많이 준 거 같은데. 그 중에 박완서 작가를 제일 좋아해요.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작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그말이 그말인가 싶기도 한데. 박완서 작가 같은 경우는 젊을 때 작가가 꿈이어서 여성의 몸으로 대학 입학해서 문학전공을 했어요. 그 당시면 대단한 거죠. 근데 한국전쟁을 겪고, 복학도 못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격변기를 넘기고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을 계속 살았어요. 그래도 꿈을 잃지 않았어요. 자신의 아픔을 문학으로 꼭 써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40살이 넘어서 등단을 했어요. 그런 모습이 되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계속 가져간다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런 마음?

ㅣ박완서 작가의 책 중 하나를 추천하자면?

다 좋아하는데. 「그 남자네 집」을 제일 좋아합니다. 첫사랑에 대한 얘기예요. 소설이고.

ㅣ마지막 질문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책으로 쓴다면, 그 책의 첫 문장

    을 뭐라고 쓸 것 같으세요?

이 책을 펼친 순간 당신의 인생은 다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웃음) 뭔가 이런 강렬한 문장을 하고 싶은데... 아!

첫 삽을 떴다




우리는 스무 살에 다시 태어난다. 20년이란 시간을 살았지만 스무 살에 펼쳐지는 세상은 여태까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없고,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없다. 내가 알던 세상과 현실 세상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면 눈 앞이 캄캄해진다.

시작은 늘 그렇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뭐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남들은 다 앞서나가는 것 같고, 나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막막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괜찮다.

20대. 이제 첫 삽을 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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