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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Jan 12. 2022

여성들의 모험 커뮤니티를 만든다고?

그건 여성과 관계맺음이 서툴렀던 내게 자연이 선물한 또 하나의 모험이었다

우먼스베이스캠프(WBC)를 함께 꾸려보자고 제안받았을 때 나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벌여놓은 일들에 새로운 일을 얹을 여력이 분명 없었건만 어쩐지 나는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둘러 대고는 반나절이 되지 않아 덜컥 답을 해버렸다. 살다 보면 이건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드는 일이 있다. 내게 WBC는 꼭 그런 일이었다.


내게 여성은 늘 어려운 존재였다. 지나간 인연들 중 끝내 파국으로 치달았던 건 유독 또래 여성들과의 관계였다. 때론 너무 좋아해 버려서 때론 너무 미워해 버려서 또 때론 너무 가여워해 버려서. 갖은 이유로 몇몇의 또래 여자 친구들과 관계를 어그러뜨리곤 했는데 오래도록 반복된 갈등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밤낮으로 가슴을 앓았다. 나이가 들며 나를 조금은 더 알게 되면서 몇 가지 이유를 짐작하기도 했다. 어릴 적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 살갑지 않았다는 점, 남성성이 지배하는 집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점, 치열하게 이기며 살기 바빠 남과 비교하고 질투하는 데 익숙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나 스스로 여성으로서 내가 가진 여성성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아껴주지 못했던 나날들도 그중 하나의 이유였다. 복잡다단한 이유로 내게 여성은 늘 어려운 존재였는데 덕분에 내 세계는 줄곧 반쯤 닫혀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 내게 WBC는 희망이었다. 여성들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면 반틈의 내 세상도 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자연에서라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 보이고, 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려하고 텅 빈 말보다는 투박하고 진실되게 몸을 맞대며 여성들과 자연을 누비고 건강한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 그것은 내게 또 하나의 모험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바다수영과 철인 3종 경기, 백패킹과 배낭여행 등 나름의 모험을 즐겨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의 질서가 우세한 야생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약자였고 은근한 보살핌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남자 친구들과 캠핑을 갈 때면 늘 제일 가벼운 짐을 멨고 불을 붙이는 게 무서워 매번 버너를 넘기곤 했다. 그들과 함께일 때 나는 굳이 지도를 읽고 길을 찾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어느샌가 그들의 신발 뒤축만 보며 따라 걷곤 했다. 그렇게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를 컴포트 존에서 나는 늘 안온한 모험을 즐겨왔는데 이제 그 너머의 세상으로 훌쩍 뛰어넘어 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모험을 함께 할 든든한 동료들이 필요했다. 


스물, 나의 첫 바다수영 경기를 함께 해준 여자 친구들과


WBC에서 만난 모험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빛깔을 띠면서도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연과의 끈끈한 유대관계 속에서 스스로 충전한다. 새벽의 이슬을 품은 잎새처럼 그들은 특유의 마르지 않는 생명력으로 자연 속에서 스스로 피어난다. 둘째, 야생과 모험의 세계로 본능적으로 나아간다. 저마다의 키워드를 품고서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세계로 바지런히 나아가는데, 모험을 쫓는 이들의 얼굴엔 늘 아이와 같은 웃음이 걸려있다. 셋째, 몸을 움직이며 소통하고 연대한다. 백 마디 말보다 때론 한바탕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서로 공감하고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안다. WBC의 이름으로 처음 만난 하늬와 지영부터가 꼭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우리의 곁으로 모험하는 여성들이 하나 둘 모여들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우주가,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수많은 우연과 뜻밖의 행운을 믿는다. 때론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지금의 내게 꼭 필요했던 더 큰 무언가를 선물 받곤 했는데 WBC와 함께 하게 된 것도 내겐 또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 반쪽짜리였던 내 삶이 다정하고 호혜 로운 관계 속으로 성큼 뛰어들게 된 시작. 그리고 우리 함께라면 더 멋진 모험으로 뛰어들 수 있음을 고대하는 여성들과의 뜻밖의 행운을 위한 시작이 아니었을지. 그나저나 이렇게 멋진 여성들의 커뮤니티라니, 정말이지 너무 멋있단 말이지.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Women's Basecamp(WBC)는 여성들에게도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몸으로 연대하는 각종 밋업 및 라이프 리트릿에 함께하지 않으시겠어요? WBC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omensbasecamp를 팔로우하세요!






WBC 한국에서 활동할 커뮤니티 빌더들과 함께 떠난 첫 번째 라이프 리트릿, 덕적도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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