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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an 12. 2022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자, 우리 같이

집 밖에는 심장 떨리도록 멋진 풍경이 있으니까

항상 모험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건 어쩐지 어딘가 나와 먼 곳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모험이니까 으레 그래야 할 것처럼

나의 첫 백패킹은 내가 늘 있던 곳에서 가장 먼 곳에서, 갑자기 시작되었다.


북미 대륙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미 대륙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배낭 하나를 메고 떠돌다가 지구 반대편인 남미 파타고니아로 내려왔을 때였다.


마침 도착한 곳이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라는 말은 여기까지 왔다면 꼭 와봐야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트레킹이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낯선 백패킹 장비들을 빌려서 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며칠 동안 내가 입고, 먹고, 자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 몸에 짊어진 채 이동마저 온전히 내 두 발로만 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진짜 모험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자유로움은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걸을 수록 어깨의 짓눌림은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렇게 걷다가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야 비로소 빙하가 빚어낸 이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눈에 보이는 산 꼭대기의 빙하가 녹아 흐르는 싱싱한 물을 그대로 길어 목을 축였다. 고통과 갈증의 깊이만큼 시원한 물과 휴식이 주는 행복은 컸다.


며칠 동안 걸어도 계속 길은 새로웠다. 이 거대한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어딘가 나의 비었던 구석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전날 나의 잠자리를 치우고 다시 빈 땅 위에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무리 덥거나 힘들어도 길에서 마주치는 길 위의 얼굴들은 웃음을 가득 머금고 인사를 건넸다. 그 미소 뒤에 소리 없는 응원과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가끔은 함께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각자가 가진 재료를 잘 조합한 덕에 쌀밥에 소세지 뿐이었던 식사는 다채로워졌다. 내내 같이 걷지는 않더라도 나의 앞에서, 뒤에서 걷고 있는 다른 이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꼭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하염없이 걷는 것이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모험은 계속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공평하고 냉정해서 딱 내가 질 수 있는 무게만큼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강해지고 싶었다. 더 자유롭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밖에서 본 땅은 이렇게나 넓은데 사회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나에게 허락된 땅은 너무 좁았다. 무엇을 하려고 하든 무거운 시선이 먼저 나를 따라왔다.


여성이기에 나는 연약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것 같았다.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로 나를 가로막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모험은 더 다양한 것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자꾸만 되돌아와 작은 수정만 반복하는 문서를 붙잡고 하염없이 앉아 있노라면 탁트인 자연으로 나가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들끓었다.


 새로운 땅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조금은 두렵지만 또 그만큼 설레니까. 적어도 살아있는 한은 나는 제대로 살아있고 싶었다.


나보다 훨씬 힘이 센 것 같은 세상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작디 작은 나에겐 증거가 필요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싶었다. 언제 무엇이 나타날 지, 어떤 위험이 나에게 닥칠 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으로 계속 거침없이 내딛을 수 있으려면 동료가 필요했다.

 

각자가 가진 무기로 스스로를 지키면서,
자신의 걸음과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충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은 여성들을

이 모험의 세계에 초대하고 싶다.

낯선 세계로 향하는 문이 어쩐지 너무 커보여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손을 맞잡고 문을 열고 싶다.


이불 밖에는 심장 떨리도록 멋진 풍경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 풍경은 걸을수록
계속해서 새롭게
너를 설레게 할테니까.

나와서,
함께 걷자고.
15불 주고 산 물을 흡수하는 짝퉁 노스페이스 자켓에 빌린 장비, 그래도 탁 트인 자연 앞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아 쉴 때의 그 기분, 지금 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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